서울대와 엔비디아, 서로 다른 시대가 한 강단에서 만나다
서울대와 엔비디아의 인재관은 왜 충돌하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서울대는 암기식, 엔비디아는 창의성” 같은 평면적 대비가 아니다. 문제는 두 기관이 서로 다른 시대의 시간성(time regime)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1. 서울대의 시간: 축적과 검증의 시간

대학은 본질적으로 느린 기관이다. 논문은 동료평가를 거치고, 학문은 축적되며, 지식은 검증된다. 이는 근대 학문의 강점이었다. 대학은 유행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공간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2. 엔비디아의 시간: 가속과 전환의 시간
반면 AI 산업은 극단적으로 빠른 시간 위에서 움직인다. 모델은 몇 달마다 바뀌고, 기술 우위는 순식간에 역전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지식이 아니라 빠른 실험과 적응이다. 따라서 두 기관의 충돌은 ‘창의성 대 암기’의 문제가 아니라, ‘느린 진리의 체제’와 ‘빠른 혁신의 체제’의 충돌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 사회는 이 두 체제 사이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교육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더 근본적인 문제가 보인다. 존 듀이(John Dewey)는 교육을 “삶의 준비가 아니라 삶 자체”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가 사회 변화와 단절되면 죽은 제도가 된다고 보았다. 반면 하이데거는 기술문명이 인간을 단순한 자원으로 전락시킬 위험을 경고했다. AI 시대의 대학은 지금 이 두 철학 사이에 놓여 있다.
듀이는 대학이 현실 변화에 응답하라고 말한다. 이데거는 대학이 기술의 속도에 휩쓸려 인간의 사유를 잃지 말라고 경고한다. 흥미롭게도 젠슨 황의 메시지는 이 두 흐름을 동시에 자극한다. 그는 기술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지만, 반복적으로 호기심, 탐구, 실패, 인간의 상상력을 말한다. 이는 기술결정론적 언어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 중심적 언어다. 따라서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3. AI 시대에 대학은 기술을 따라가야 하는가, 아니면 기술을 해석해야 하는가?

많은 대학이 지금 AI 교육 열풍 속에서 코딩, 프롬프트, 데이터 분석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대학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교육은 결국 플랫폼 기업이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고유한 역할은 기술 숙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사유하게 만드는 데 있다.
AI를 사용하는 법은 3개월 만에 배울 수 있다. 그러나 AI가 민주주의, 노동, 인간 정체성, 지식의 권위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는 오랜 학문적 훈련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학의 존재 이유가 다시 살아난다. 그렇다면 젠슨 황의 서울대 강연이 남긴 진짜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는 아마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질문을 남겼다.
4. 한국 대학은 아직도 산업화 시대의 선발 시스템에 머물러 있는가?

입시와 학벌 중심 구조는 여전히 “검증된 우수성”을 선발한다. 그러나 AI 시대는 “미검증의 가능성”을 요구한다. 대학은 지식을 전달하는 기관인가, 아니면 지식을 해석하는 기관인가? AI가 전달 기능을 대체하는 순간, 대학은 해석과 비판, 통합의 기능으로 이동해야 한다.
우리는 기술을 배우고 있는가, 기술 시대를 이해하고 있는가?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전자는 직업훈련이고, 후자는 문명 교육이다. 결국 인재론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AI 시대의 인재상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창의적 융합형 인재” 같은 익숙한 문장으로 마무리하는 순간 담론은 얕아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재상의 나열이 아니라, 대학이라는 제도가 어떤 문명적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산업화 시대의 대학
국가 발전을 위한 전문가 양성 기관
지식 전달과 선발의 중심
표준화된 우수성을 생산하는 체제
정보화 시대의 대학
연구 경쟁력과 글로벌 순위를 중시
산학협력과 기술 이전 확대
지식 생산의 허브 역할 강화
AI 시대의 대학
아직 정답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다. AI 시대의 대학은 더 이상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을 길러내는 곳만으로는 존속할 수 없다. 동시에 단순한 기술학원으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 대학은 오히려 인간이 기술문명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집단적으로 사유하는 마지막 공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
5. 서울대 강연을 그렇게 읽어야 한다

젠슨 황의 강연을 단순히 “AI를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 강연의 진짜 무게는, 한국 대학이 지금까지 성공해온 방식이 앞으로도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서울대 한복판에서 던졌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학생보다 대학, 대학보다 사회 전체가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다. 왜냐하면 AI가 바꾸는 것은 직업만이 아니라, 지식의 질서 자체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교육철학 · 대학의 미래
- John Dewey, Democracy and Education (1916)
- Wilhelm von Humboldt, The Sphere and Duties of Government
- Clark Kerr, The Uses of the University (1963)
- Martha Nussbaum, Not for Profit: Why Democracy Needs the Humanities (2010)
- Ronald Barnett, The Idea of Higher Education (1990)
기술철학 · AI 시대
- Martin Heidegger, The Question Concerning Technology (1954)
- Yuval Noah Harari,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2018)
- Shoshana Zuboff, The Age of Surveillance Capitalism (2019)
- Ethan Mollick, Co-Intelligence (2024)
미래교육
- OECD Learning Compass 2030
- UNESCO, Reimagining Our Futures Together (2021)
- World Economic Forum, Future of Jobs Report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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