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 “빛의 속도로 형소법 개정”…정말 빛의 속도라면, 지옥문도 빛의 속도로 열렸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한마디가 묘하게 오래 남는다. “이렇게 빛의 속도로 형사소송법이 개정된 것은 처음이다.” 8월 3일 신임 검사 임관식 뒤 기자들과 만난 정 장관은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권을 폐지한 형사소송법 개정을 이렇게 평가하면서, 시행 과정에서 부작용이 생기면 빨리 법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바로 그 ‘빛의 속도’다. 법은 한번 만들어지면 국민의 기본권과 형사사법 시스템을 장기간 지배한다. 그런데 그 법을 만든 주무 장관이 입법 속도 자체를 이례적으로 지적하면서 “부작용이 생기면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면 국민은 묻게 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서둘렀는가.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권 폐지는 단순한 조직개편이 아니다. 경찰의 1차 수사와 검찰의 기소 기능 사이에 놓여 있던 마지막 보완장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런데 이제 장관 스스로 ‘빛의 속도’를 말한다. 국민 입장에서는 마치 자동차를 최고속도로 몰고 가면서 “사고 나면 브레이크를 고치겠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 발언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정 장관은 지난 6월 보완수사권 폐지 논쟁이 한창일 때도 “검찰이 1차 수사에 대해 손을 대지 않으면 피해자 보호에 대한 대안은 있는지”라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더라도 피해자 보호와 수사 오류를 바로잡을 장치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민주당이 결국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를 당론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정 장관의 입장도 정부의 최종 결정에 맞춰졌다. 7월에는 정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정 장관은 “오래전부터” 사퇴 의사를 참모들을 통해 전달했다고 밝혔고, “더 이상 할 일도 없고 의지도 없다”고까지 말했다. 청와대와 법무부는 ‘공식적인 직접 사의 표명’ 여부를 두고 설명을 달리했지만, 적어도 법무부 수장이 검찰개혁의 속도와 방향을 놓고 심각한 부담을 느꼈다는 정치적 장면은 남았다.
그런데 이제 법은 통과됐다. 그렇다면 진짜 ‘지옥문’은 법 통과 그 자체가 아니라 시행 이후 책임의 소재다. 경찰이 수사를 종결했는데 피해자가 억울하다고 주장하면 누가 다시 들여다볼 것인가. 경찰 수사의 오류가 발견됐을 때 검찰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기소권을 가진 검사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추가 조사를 요구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특히 강력범죄나 경제범죄, 권력형 범죄처럼 수사의 전문성과 장기적 추적이 필요한 사건에서 수사와 기소를 지나치게 분절하면 오히려 국가 형사사법의 책임소재가 흐려질 가능성은 없는가. 정 장관 역시 7월 국회에서 보완수사권 폐지에 따른 우려를 인정하면서 경찰의 권한 남용을 막을 제도적 장치와 실효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법을 없애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법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세울지는 훨씬 어렵다.
더 심각한 것은 법무부 장관의 말과 입법의 속도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빛의 속도로 개정됐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작용이 생기면 빨리 고치자”고 한다. 이것은 사실상 입법자가 시행착오를 인정할 가능성을 전제로 법을 통과시킨 것 아니냐는 질문을 낳는다. 물론 모든 법은 시행하면서 보완할 수 있다. 문제는 형사사법 제도가 일반 행정제도와 다르다는 데 있다. 수사기관의 권한과 국민의 방어권, 피해자의 권리, 국가의 형벌권이 직접 연결된다. 한번 잘못 설계된 제도가 시행되면 그 피해는 사후 개정으로 소급해 복구할 수 없다. 억울하게 수사가 종결된 피해자에게 “법을 고쳤으니 다시 해드리겠다”고 할 수 없고, 잘못 기소된 피고인에게도 이미 지나간 시간을 돌려줄 수 없다. 그래서 형사사법 제도에서는 ‘빨리’보다 ‘정확하게’가 우선이어야 한다. 정 장관의 ‘빛의 속도’라는 표현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여기서 정치적 역설이 발생한다. 정성호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료이자 민주당 내 대표적인 친명계 인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인물이 법무부 장관으로 와서 검찰개혁의 브레이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와, 결국 정부·여당의 개혁 방향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이 연출됐다. 그리고 이제 그가 “빛의 속도”라는 표현으로 입법 과정의 속도를 스스로 기록해버렸다. 야권이 이를 ‘정권의 사법 장악’ 프레임으로 공격할 수도 있고, 여권은 오래된 검찰권력의 폐해를 청산하기 위한 불가피한 개혁이라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 놓쳐서는 안 되는 질문이 있다. 검찰이 과거 잘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검찰의 모든 보완 기능을 없애는 것이 정당화되는가? 반대로 경찰 수사권이 확대되는 만큼 경찰을 견제할 새로운 장치가 충분히 마련됐는가? 권력기관 개혁의 핵심은 누가 권력을 갖느냐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기관을 누가 견제하느냐다.
그래서 정성호 장관의 “빛의 속도”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이재명 정부의 검찰개혁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키워드가 됐다. 빛의 속도로 문을 열었다면 이제 국민이 확인해야 할 것은 그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다. 검찰권력의 정상화인가, 경찰권력의 비대화인가, 아니면 새로운 수사·기소 권력의 탄생인가. 정 장관이 말한 것처럼 부작용이 생기면 법을 고치면 된다. 하지만 형사사법 제도의 부작용은 실험실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눈물과 피고인의 인생, 국민의 안전이라는 현실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일단 통과시키고 문제가 생기면 고치자”가 아니라, 시행 첫날부터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지 공개적으로 검증하고 감시할 독립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빛의 속도로 개정된 법’은 역설적으로 대한민국 형사사법 체계에 빛의 속도로 열린 지옥문이라는 정치적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참고문헌
- 연합뉴스 — 정성호 “형소법 빛의 속도로 개정…부작용 땐 신속히 손질해야”
- 연합뉴스 — 정성호 사의 표명설 및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
- 서울신문 — 정성호 “오래전부터 사의 표명…더 이상 할 일도, 의지도 없다”
- 서울신문 — 정성호 사의설과 청와대·법무부의 입장
- 서울신문 — 정성호 “보완수사 없으면 피해자 보호 대안 있나”
- 연합뉴스 — 정점식·정성호 보완수사권 공방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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