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치광신] 그는 왜 방아쇠를 ‘정의’라 불렀나… 트럼프 암살 미수와 응징 정치의 괴물

“그는 범죄자를 처단한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자신이 민주주의를 공격한 범죄자가 되었다.”

정치 폭력이 폭발하는 순간은 상대를 싫어할 때가 아니다. 상대를 더 이상 정치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때다. 이번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에서 드러난 가장 섬뜩한 대목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용의자는 트럼프를 단순한 정적이나 논쟁적 지도자로 본 것이 아니었다. 그는 트럼프와 그 주변 인사들을 소아성애자, 강간범, 반역자 같은 특수 범죄자의 범주에 밀어 넣었고, 심지어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만찬 참석자들까지 공범의 그림자 아래 겹쳐 보았다. 이 순간 정치는 끝난다. 남는 것은 토론이 아니라 낙인이고, 선거가 아니라 처단의 상상이다.

더 위험한 것은 그 다음이다. 상대를 정치 대표가 아니라 공동체가 제거해야 할 괴물로 규정하는 순간, 범인은 더 이상 자신을 범죄자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대신 나선 시민, 늦게 도착한 정의, 행동하는 양심처럼 포장한다. 암살 기도는 그의 머릿속에서 테러가 아니라 응징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는 가장 깊게 훼손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핵심은 서로 싫어하는 사람들끼리도 총이 아니라 절차로 싸우는 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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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적으로 말하자면, 극단주의자의 세계에서는 자신이 곧 경찰이고 검사이며 판사이고 집행자다. 상대는 이미 유죄이고, 지지자는 공범이며, 방아쇠는 정의의 최종 문장부호가 된다. 이 얼마나 값싼 정의인가. 증거도 없고 판결도 없고, 오직 확신만 있다. 그러나 확신이 곧 정의가 되는 사회는 법치국가가 아니라 군중 재판의 정글일 뿐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한 명의 총격범이 아니라 하나의 사고방식이다. “저 사람은 더 이상 정치인이 아니다. 그러니 시민이 직접 나서도 된다.” 이 논리가 허용되는 순간, 모든 정치적 갈등은 잠재적 사적 응징으로 번역된다. 오늘은 트럼프가 표적이지만, 내일은 누구든 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절차를 잃는 순간, 시민은 유권자가 아니라 자칭 집행자로 변하고, 정치는 경쟁이 아니라 사냥이 된다.

문제의 성명서에서 가장 섬뜩한 대목은 범죄의 나열 그 자체가 아니다. “소아성애자, 강간범, 반역자”라는 극단적 단어를 던진 뒤, 그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함께한 사람들까지 공범의 범주 안에 넣어버리는 사고방식이다. 이것은 비판이 아니라 제거 논리다. 상대가 틀렸다는 주장을 넘어, 상대는 인간 사회에서 격리·처단되어야 할 악이라는 선언이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선거와 법정과 여론으로 심판받는다. 그러나 광신자는 그 과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검사이고 판사이고 집행자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총을 들고도 스스로를 범죄자가 아니라 ‘정의의 대리인’으로 부른다. 이 사건이 위험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총알보다 먼저 발사된 것은 언어였다. 상대를 악마로 부르는 말, 지지자를 공범으로 묶는 말, 참석자 전체를 처단 가능한 대상으로 만드는 말. 그런 언어가 쌓이면, 어느 순간 누군가는 그것을 은유가 아니라 명령으로 읽는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핵심 문장은 이것이다. 정치인을 범죄자로 비판하는 것과, 범죄자라며 죽이려 드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자는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논쟁의 영역에 있다. 후자는 법치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테러의 영역에 있다. 아무리 상대가 싫어도, 아무리 분노가 커도, 개인이 총을 들고 역사와 정의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비난하던 폭력의 얼굴을 그대로 닮아간다.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정치도 이미 비슷한 언어의 병을 앓고 있다. 상대를 ‘심판해야 할 악’으로 부르고, 지지층을 ‘정의의 군대’처럼 부추기며, 법정과 거리와 방송을 모두 전쟁터로 만드는 문화가 곳곳에서 보인다. 정치가 매일같이 적개심을 먹고 자라면, 어느 날 누군가는 그 적개심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때 “우리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말해도 늦다. 말은 총보다 가볍지만, 총을 들게 만드는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결국 이번 사건은 하나의 경고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제도가 아니다. 서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죽이지 않고, 법과 선거와 절차로 다투기 위해 만든 장치다. 그 장치를 우습게 여기고, 자신이 직접 악을 처단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그는 정의의 전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파괴자가 된다. 정치적 신념이 아무리 뜨거워도, 총구 앞에서는 모두 핑계가 된다. 그리고 어떤 핑계도 암살을 정의로 만들 수는 없다.

참고문헌

  • Reuters, Who is Cole Allen, the suspect in the White House Correspondents’ Dinner shooting?
  • The Washington Post, Suspect’s statement to family said he would target Trump officials, say authorities
  • The Guardian, White House press dinner shooting suspect’s motive investigated
  • CBS News, What we know about the White House Correspondents’ Dinner shooting suspect
  • AP News, Authorities investigate suspect and motive in Trump dinner shooting case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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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세계로, 세계를 한국으로- Socko is a Korean editorial writer analyzing geopolitics, economics, and power structures with clarity, depth, and a touch of refined satire. From local politics to global shifts, Socko delivers commentary that informs, questions, and challenges. Socko는 국제정치·경제·권력 구조를 깊이 있게 해석하는 한국의 에디토리얼 라이터로, 정교한 풍자와 분석을 통해 세상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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