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은 스타벅스의 단순한 마케팅 실수로 끝낼 일이 아니다. ‘탱크데이’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말은 이미 5·18, 광주, 이재명 정부, 그리고 광주를 한국 정치의 특정 진영으로 보는 시선까지 한꺼번에 끌어안은 정치적 기호가 됐다. 배재고 학생들의 응원 구호가 무엇을 직접 겨냥했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굳이 ‘스타벅스’와 ‘탱크데이’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이 단어들이 더 이상 커피 브랜드나 할인행사의 이름으로 소비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광주와 5·18을 둘러싼 오래된 반감, 민주당 정권과 광주 정치권력에 대한 불신, 그리고 특정 지역의 역사와 정치의식을 조롱하는 온라인 언어가 학교 스포츠 현장까지 스며든 장면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단순히 “고등학생들이 철없는 장난을 했다”는 식으로 축소해서도, 반대로 학생 몇 명의 행동을 한국 사회 전체의 결론처럼 과장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조롱의 언어가 왜 이렇게 쉽게 공유되고, 왜 광주를 향한 말이 곧바로 정치적 표식이 되는지 물어야 한다. 사과문은 사건을 정리할 수 있어도, 그 구호가 가능해진 한국 사회의 균열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이 사건을 단지 ‘고등학생들의 철없는 응원’으로 덮는 순간,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학생은 정치와 사회로부터 격리된 존재가 아니다. 학교 담장 밖에서 유통되는 언어, 지역을 향한 선입견, 역사적 기억에 대한 반감, 정권과 선거를 둘러싼 불신은 이미 온라인과 거리, 일상의 대화 속에서 세대를 가리지 않고 공유되고 있다.
광주제일고는 단지 야구 명문이 아니다. 그 전신인 광주고보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중심에 섰던 학교다. 한국 현대사에서 학생은 언제나 정치의 주변인이 아니었다. 3·15 부정선거에 항의한 중·고등학생들의 움직임은 4·19혁명의 불씨가 됐고, 학생들의 거리 진출과 희생은 결국 한 정권을 무너뜨린 민주주의의 역사로 남았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번 장면은 더 가볍게 볼 수 없다. 광주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와 ‘탱크데이’라는 구호가 울린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커피 브랜드나 일회성 마케팅 논란의 언어가 아니었다. 광주와 5·18을 특정 정치세력의 상징으로 환원하고, 그 역사와 지역의 정치의식을 조롱거리로 바꾸는 한국 사회의 언어가 고교야구 더그아웃까지 흘러들어간 장면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물론 몇몇 학생의 구호만으로 그들에게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나 조직적 배후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생이라는 이유로 그 언어의 정치성을 지워서도 안 된다. 오히려 이 사건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선거 불신, 정권 반감, 지역 정체성, 5·18의 역사적 의미가 서로 뒤엉키며 어떤 방식으로 희화화되고 재유통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경고 신호일 수 있다.
사과문은 한 경기의 논란을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이런 말이 광주일고를 향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는지, 왜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응원가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되는지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학생들의 정치성을 부정하는 교육이 아니라, 역사와 지역, 민주주의를 향한 조롱의 언어가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까지 번지고 있는지 직시하는 일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살펴볼 대목이 있다. 최근 선거관리 논란을 계기로 서울 올림픽공원과 홍대 일대에서 이어진 재선거 요구 움직임은 처음에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항의와 참정권 문제제기의 성격을 띠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부정선거’, 정권 비판, 이재명 탄핵 등 더 넓은 정치 구호가 뒤섞이는 양상을 보였다. 일부 온라인 공간에서는 ‘반국가세력’과 ‘멸공’ 같은 오래된 반공 언어까지 다시 호출된다. 그것이 이번 배재고 선수들의 구호와 직접 연결됐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이런 언어 환경 속에서 광주와 5·18, 민주당, 이재명 정부, 전남·광주의 정치 성향이 하나의 정치적 표적으로 뭉뚱그려 소비되고 있다면, 이번 장면은 그 정서가 학교 스포츠 현장에까지 번진 위험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이것은 10대와 20·30세대의 정치의식이나 반공·정권 비판 자체를 금기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불만과 이념적 충돌은 더 정면으로 토론되어야 한다. 문제는 역사적 비극과 특정 지역, 한 학교의 이름을 짧은 조롱의 암호로 압축해 버리는 방식이다. ‘스타벅스 가야지’와 ‘탱크데이’가 단순한 응원 구호가 아니라 광주를 향한 정치적 냉소와 반감의 표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 고교야구장은 경쟁의 공간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오래된 지역·역사 갈등이 재연되는 무대가 된다. 사과와 징계는 필요하지만, 더 큰 질문은 왜 이런 언어가 젊은 세대에게 쉽게 익숙한 농담과 응원가가 되었는가에 있다.
참고문헌
- MBC 뉴스데스크, 「“스타벅스 가야지”‥고교 야구 중 난데없는 지역 비하?」, 2026년 6월 29일. 경기 중 구호와 경기 중단 경위, 협회의 진상조사 착수 보도.
- MBC 뉴스, 「‘지역 비하’ 발언 피해 광주제일고 교장, 야구협회에 항의서한 전달」, 2026년 6월 30일. 광주제일고 교장의 항의서한 제출과 재발방지 요구 내용.
- 한겨레, 「‘5·18 참여’ 광주제일고 향해 “스벅 가야지” 조롱한 배재고…“적당히 해”」, 2026년 6월 30일. 광주제일고의 역사적 맥락과 현장 반응 확인용.
- MBC 뉴스데스크, 「“5·18에 ‘탱크데이·책상에 탁’?”‥스타벅스 결국 사과」, 2026년 5월 18일. 스타벅스 프로모션 논란, 문구 수정·삭제와 사과 경위.
- 한겨레, 「스타벅스 글로벌 본사 ‘탱크데이’ 사과…“철저히 조사해 재발 방지”」, 2026년 5월 21일. 글로벌 본사 차원의 사과와 재발방지 조치 관련 보도.
- 부산일보, 「광주일고, 배재고 야구부 ‘스타벅스 조롱’ 공식 항의…야구협회에 재발 방지 촉구」, 2026년 6월 30일. 광주제일고 측 항의문과 학교 측 입장 확인용.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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