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은 오르는데 배움은 사라진다? 대학과 학교의 AI 과의존 문제
성적은 오르는데 배움은 사라진다? – 대학가와 교실을 흔드는 AI 과의존의 딜레마
생성형 AI가 교육에 들어오면서 학생들의 공부는 분명 빨라졌습니다. 어려운 논문은 몇 초 만에 요약되고, 영어 문장은 자연스럽게 다듬어지며, 수학 문제의 풀이 과정도 쉽게 설명받을 수 있습니다. 보고서의 구조를 잡는 일도, 발표자료의 초안을 만드는 일도 예전보다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학습도 그만큼 좋아졌을까요? 여기에서 묘한 문제가 등장합니다. 성적과 결과물은 좋아졌는데, 정작 학생에게 남는 지식과 사고력은 얼마나 늘었는가? 최근 연구들을 보면 이 질문에는 단순히 “AI가 좋다” 또는 “AI가 나쁘다”라고 답하기 어렵습니다.
2025~2026년에 발표된 여러 메타분석에서는 생성형 AI가 학업성취, 학습 참여, 동기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반면 AI 사용이 학습자의 메타인지에 뚜렷한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는 연구도 있고, 특정 조건에서는 장기적인 지식 유지에 불리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도 나왔습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AI가 학생의 결과를 향상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학생의 학습을 향상시키고 있는가?

두 가지는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1. AI가 잘하는 것과 학생이 배워야 하는 것은 다르다
교육에서 가장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결과물을 만드는 능력’과 ‘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해보겠습니다. AI를 이용해 자료를 검색하고, 구조를 만들고, 문장을 작성하고, 참고자료까지 정리했다면 결과물은 훌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학생에게 이렇게 질문했을 때,
- “이 보고서에서 가장 중요한 주장은 무엇인가요?”
- “왜 이 자료를 근거로 사용했나요?”
- “반대되는 주장은 무엇인가요?”
- “AI가 제시한 내용 중 직접 확인한 것은 무엇인가요?”
학생이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보고서는 완성되었지만 학습은 완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AI 시대 교육이 마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딜레마 가운데 하나입니다.
2. 문제는 AI 사용이 아니라 ‘생각하기 전 AI 사용’이다
AI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앞으로는 AI를 잘 활용하는 능력도 중요한 역량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AI를 언제,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입니다.
학생이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생각 → 질문 → 탐색 → 검증 → AI 활용]의 과정을 거치는 것과 [문제 → AI → 답]으로 바로 넘어가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전자는 AI를 사고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후자는 AI에게 사고의 일부를 넘겨줍니다.
이 차이는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AI를 사용하면 훨씬 빠르게 결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습은 원래 어느 정도의 인지적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기억하려고 애쓰고, 틀리고, 다시 생각하고, 비교하고, 설명해보는 과정이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025년 무작위 대조 실험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관찰되었습니다. 학부생 12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chatGPT를 학습 보조로 사용한 집단은 학습 직후의 편리함과 별개로 45일 뒤 실시한 지식 유지 검사에서 전통적인 학습 집단보다 낮은 점수를 보였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인지적 외주화(cognitive offloading)와 학습에 필요한 노력의 감소 가능성과 연결해 해석했습니다.
다만 이 연구 하나만으로 “AI는 학습을 망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AI 사용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3. ‘AI 과의존’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AI 과의존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습관에서 시작됩니다.
- 첫 번째 단계 — 검색보다 AI가 편하다. 학생은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대신 AI에게 묻습니다.
- 두 번째 단계 — 생각보다 답을 보는 것이 빠르다. 문제를 스스로 풀기 전에 AI의 설명을 확인합니다.
- 세 번째 단계 — 답을 보고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아, 그렇구나”라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설명해보지는 않습니다.
- 네 번째 단계 — AI가 없으면 시작하기 어려워진다. 문제 해결의 첫 단계부터 AI를 찾게 됩니다.
- 다섯 번째 단계 — 자신의 생각보다 AI의 답을 신뢰한다. 결국 질문의 주체가 학생에서 AI로 이동합니다.
-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발생합니다. AI가 학습을 도와주는 도구에서 학습 과정을 대신하는 도구로 바뀌는 것입니다.
4. 가장 위험한 것은 ‘틀린 답’만이 아니다
AI 교육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위험은 환각(hallucination)입니다. AI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육적으로 더 근본적인 위험은 따로 있습니다. 학생이 AI의 답이 맞는지 판단할 능력 자체를 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AI가 틀린 답을 주었을 때 학생에게 판단 능력이 있다면 문제가 발견됩니다. 하지만 판단할 기준이 없다면 AI가 맞는지 틀리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단순한 정보 활용 능력보다 검증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학생은 AI에게 답을 얻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이 정보의 출처는 무엇인가?
- 다른 자료에서도 같은 내용이 확인되는가?
- 이 주장의 근거는 충분한가?
- 반대되는 증거는 없는가?
- AI가 생략한 것은 무엇인가?
- 이 답을 내가 직접 설명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AI 리터러시와 비판적 사고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UNESCO 역시 학생 AI 역량을 단순한 도구 사용에 한정하지 않고, 인간 중심적 사고, AI 윤리, AI 기술과 활용, AI 시스템 설계의 네 영역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AI 결과에 대한 비판적 판단과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합니다.

5. 그렇다면 AI를 사용하지 말아야 할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AI를 더 잘 사용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다만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AI를 사용했는가?”가 아니라 “AI를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보고서를 작성할 때 AI에게 처음부터 “이 주제로 보고서를 써줘.”라고 요청하는 것과 “내가 생각한 주장에 논리적 빈틈이 있는지 찾아줘.”라고 요청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첫 번째는 AI가 결과물을 생산합니다. 두 번째는 학생이 사고하고 AI가 피드백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AI가 작성자에 가까워집니다. 두 번째에서는 AI가 사고 파트너가 됩니다.
6. AI를 ‘해결사’에서 ‘사고 파트너’로 바꾸는 5단계
AI 시대의 학습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 ① 먼저 생각한다 – AI를 열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먼저 적습니다. 정답이 아니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의 출발점을 남기는 것입니다.
- ② 질문한다 – AI에게 바로 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생각에서 부족한 부분을 질문합니다. “내 주장에 반대되는 관점을 찾아줘.” “내 논리에서 빠진 전제가 있는지 확인해줘.” “이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질문을 만들어줘.”
- ③ 비교한다 – AI의 답을 정답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조사한 자료와 비교합니다. AI의 답 vs 원자료 vs 나의 판단이 세 가지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 ④ 검증한다 – 중요한 사실, 숫자, 인용, 연구 결과는 반드시 원출처를 확인합니다. AI가 제시한 참고자료를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자료가 존재하는지 확인합니다.
- ⑤ 다시 자신의 언어로 설명한다 – 가장 중요합니다. AI와 자료를 모두 확인한 뒤 화면을 닫고 학생 자신의 말로 설명해봅니다. “그래서 내가 이해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학습이 자신의 것이 됩니다.

7. 교사의 역할도 ‘AI 사용 감시자’에서 달라져야 한다
AI 시대에 교사가 학생의 AI 사용 여부만 감시하는 방식은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해도 자신의 사고 과정을 드러낼 수 있는 학습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과제 제출물을 단순한 완성본 하나로 받는 대신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습니다.
- ① 나의 최초 생각
- ② 조사한 자료
- ③ AI에게 던진 질문
- ④ AI의 답에서 채택한 것과 버린 것
- ⑤ 내가 직접 검증한 내용
- ⑥ 최종 결과물
- ⑦ 학습 후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이렇게 하면 AI 사용을 금지하지 않아도 학생의 사고 과정이 보입니다. 오히려 AI를 제대로 사용한 학생과 AI에게 과제를 맡긴 학생의 차이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8. 평가도 ‘정답’에서 ‘사고의 흔적’으로 이동해야 한다
여기에서 교육의 가장 큰 변화가 필요합니다. AI가 글을 쓰고 문제를 풀고 발표자료까지 만들어주는 시대에 과거와 동일한 방식으로 평가한다면, 교육은 계속해서 AI가 잘하는 것을 평가하게 됩니다. 그러면 학생은 자연스럽게 AI가 잘하는 일을 AI에게 맡기게 됩니다. 따라서 평가의 질문도 바뀌어야 합니다.
“무엇을 만들었는가?”에서 “어떻게 생각했는가?”로 이동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평가가 가능합니다.
- 기존 평가
- AI 시대 평가
- 완성된 보고서
- 문제를 어떻게 정의했는가
- 정답
- 왜 그렇게 판단했는가
- 암기한 내용
- 새로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가
- AI가 만든 글
- AI 결과를 어떻게 수정·검증했는가
- 발표자료
-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고 방어할 수 있는가
- 최종 결과물
- 사고 과정과 수정 과정은 무엇인가. 이렇게 되면 AI는 평가의 적이 아니라 학습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9. 부모가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AI로 했어?”라고 묻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 “AI를 어디에 사용했어?”
- “AI가 말한 것 중 네가 확인한 것은 뭐야?”
- “AI 답과 네 생각이 다른 부분은 없었어?”
- “그 답을 다른 사람에게 네 말로 설명할 수 있어?”
이 질문들은 AI 사용을 막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학생을 다시 학습의 주체로 돌려놓기 위한 질문입니다.
10.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AI 없는 공부’가 아니다
AI 시대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학생들이 AI를 사용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으로 잡는다면 현실과 점점 멀어질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미 AI와 함께 공부하고 있고, 앞으로 AI는 더욱 자연스러운 학습 도구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AI의 부재가 아닙니다. 인간의 사고 과정입니다. AI가 정보를 찾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결정하는 것은 학생이어야 합니다. AI가 여러 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답을 선택할지는 학생이 판단해야 합니다.
AI가 글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글이 정말 자신의 생각인지 책임지는 것은 학생이어야 합니다.
AI가 문제를 풀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중요한 문제인지 발견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 있어야 합니다.

11. AI 시대의 진짜 학습은 ‘AI를 잘 쓰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
AI 시대에 필요한 학습의 흐름은 어쩌면 아주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해 → 질문 → 검증 → 판단 → 활용 → 책임] 먼저 이해합니다. 그다음 질문합니다. AI의 답을 확인합니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부할지 판단합니다. 필요한 부분을 활용합니다. 그리고 최종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집니다.
이 과정에서 AI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습의 주인은 될 수 없습니다. UNESCO도 생성형 AI의 교육적 활용에서 인간의 주체성과 책임성을 중심에 두고, AI와 인간의 상호작용이 학습자의 고차적 사고와 적극적 참여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마무리 — 성적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
어쩌면 앞으로 학교와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학생은 AI를 사용해서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이 학생은 AI를 사용하면서 무엇을 배웠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AI가 만들어준 답으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AI의 도움으로 훌륭한 보고서를 제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배움의 증거는 아닙니다. 진짜 학습은 결과물이 사라진 뒤에도 남습니다. 시험이 끝난 뒤에도 기억되고, 다른 문제를 만났을 때 다시 활용할 수 있고, 누군가 질문했을 때 자신의 말로 설명할 수 있으며,
AI가 틀렸을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AI 시대의 교육이 지켜야 할 것은 ‘AI를 쓰지 않는 학생’이 아니라 ‘AI를 사용해도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 학생’입니다. AI를 금지하는 교육에서 AI를 잘 활용하는 교육으로. 그리고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AI를 활용하면서도 자신의 질문과 판단과 책임을 잃지 않는 교육으로. 성적을 올리는 AI보다 중요한 것은 배움을 남기는 AI 활용법일 것입니다.
참고자료
- UNESCO, AI Competency Framework for Students
- UNESCO, Guidance for Generative AI in Education and Research
- Generative AI and education 관련 최근 학술 연구 및 메타분석
- 생성형 AI와 학습성과·인지적 외주화(cognitive offloading) 관련 연구
- 생성형 AI 활용과 장기적 지식 유지 관련 대학생 대상 실험 연구
원문보기 : 성적은 오르는데 배움은 사라진다? 대학과 학교의 AI 과의존 문제
Socko/Gh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