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셰익스피어를 비평해도 셰익스피어가 될 수 없다

(Barnes & Noble Collectible Editions)
인공지능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분석할 수 있다. 인물의 성격을 분해하고, 비극의 구조를 설명하며, 대사의 상징과 서사의 긴장감을 평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AI에게 셰익스피어와 같은 작품을 쓰라고 하면 어떨까. 영화 제작사 AGBO의 경영진이 도쿄국제영화제 콘텐츠 마켓 TIFFCOM에서 던진 이 질문은 생성형 AI 시대의 창작을 둘러싼 논쟁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기술은 작품을 해부하는 데 능숙할 수 있지만, 작품이 탄생해야 하는 이유까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AI와 인간 창작자의 미래를 논하는 출발점이다.
앤서니와 조 루소 형제가 설립한 AGBO는 영화와 텔레비전,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온 제작사다. 파트너 크리스 브리어턴과 최고과학책임자 도미닉 휴스는 2026년 10월 29일 TIFFCOM 기조 대담에서 AI와 머신러닝이 창작 과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논의했다.
이들이 강조한 방향은 기술을 창작자의 대체재가 아니라 창작을 확장하는 협력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기술을 도입하는 것 자체가 혁신은 아니다. 기술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 그리고 그 가능성을 어떤 이야기와 표현에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AI의 강점은 분명하다. 방대한 자료를 빠르게 정리하고, 복잡한 서사의 구조를 분석하며, 인물의 행동에 대한 여러 해석을 제시할 수 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는 시나리오의 특정 장면에서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검토하거나, 이야기의 흐름이 느슨해지는 지점을 찾아내거나, 제한된 예산으로 구현할 수 있는 시각적 대안을 탐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과거에는 상당한 시간과 인력이 필요했던 작업의 일부를 줄이면 소규모 제작자도 더 많은 아이디어를 시험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AI는 창작의 문턱을 낮추는 기술이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많이 생산하는 것과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가능한 선택지를 늘리는 일은 기술이 도울 수 있지만, 그중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일에는 미학적 판단과 창작의 목적이 필요하다.
셰익스피어의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주제와 언어적 특징을 분석하고, 그의 문체를 모방한 문장을 생성할 수 있다. 따라서 AI가 셰익스피어처럼 글을 쓸 수 없다는 주장을 문자 그대로의 기술적 한계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미 생성형 AI는 여러 문체를 모방하고 문학적 형식을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모방과 창작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다.
문법적으로 정교하고 문체적으로 그럴듯한 문장이 반드시 새로운 통찰을 담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가치는 익숙한 형식을 재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왜 지금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어떤 인간의 경험을 드러낼 것인지, 독자에게 어떤 질문을 남길 것인지에 달려 있다. AI가 비평의 언어를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의 창작 경험 전체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창작자의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 있다. AI가 수백 개의 시놉시스와 장면을 제안한다면 감독과 작가는 그중 어떤 이야기가 관객에게 의미가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장면이라도 작품의 감정적 흐름을 해친다면 포기해야 한다. 흥행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소재라도 창작자의 문제의식과 맞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창작은 결과물을 생산하는 행위인 동시에 선택과 거부의 연속이다. AI가 생산성을 높일수록 인간은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만들지 않을 것인가를 더 분명히 결정해야 한다. 도구가 많아질수록 판단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이유다.
물론 인간 창작자를 낭만화할 필요도 없다. 인간 역시 기존 작품을 모방하고, 시장의 유행을 따르며, 검증된 흥행 공식을 반복한다. AI가 만든 결과물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가치가 낮은 것도 아니고, 인간이 만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독창적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제작 방식만으로 작품의 가치를 미리 결정하지 않는 것이다.
AI를 활용했더라도 창작자가 충분한 판단과 수정, 책임을 거쳐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인간의 이름을 내걸었더라도 실질적인 창작적 기여가 빈약할 수 있다. 앞으로의 창작 환경에서는 누가 만들었는지만 묻는 것을 넘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인간적 판단이 개입했으며 그 결과에 누가 책임을 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과제는 콘텐츠의 과잉이다. AI가 제작 비용과 시간을 줄이면 더 많은 영화와 영상, 게임이 시장에 등장할 수 있다. 창작 기회를 넓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관객이 감당해야 할 선택의 부담도 커진다. 수많은 작품 가운데 무엇을 볼지 결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고, 플랫폼은 이용자의 관심을 붙잡기 위해 이미 반응이 검증된 형식과 소재를 반복적으로 추천할 수 있다.
콘텐츠가 넘쳐나는데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경험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 AI 시대의 경쟁은 단순히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가에서 얼마나 많은 콘텐츠 가운데 기억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제작량이 늘어나는 것과 문화적 풍요가 커지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창작자의 노동과 권리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AI가 기존 작품을 학습하고 새로운 결과물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저작권이 있는 자료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원작자의 기여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 결과물이 기존 작품과 지나치게 유사할 때 누가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다. AGBO가 기술을 창작자 중심으로 활용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한 것은 이러한 산업적 질문과 연결된다.
그러나 기업이 창작자를 존중한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학습 데이터의 출처와 사용 범위, 제작 과정에서 사용된 도구의 기록, 창작자에 대한 보상과 동의 절차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 혁신이 지속되려면 창작자의 권리와 산업의 신뢰가 함께 유지되어야 한다.
결국 AI와 셰익스피어의 문제는 기계가 인간보다 똑똑한가를 겨루는 경연이 아니다. AI가 문학을 분석하고 문장을 생성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새로운 창작 환경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인간이 그 능력을 어떤 목적에 사용할 것인가다. AI에게 작품을 평가하게 할 수는 있지만, 평가 기준이 적절한지 다시 물어야 한다. AI에게 이야기를 제안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 이야기가 왜 필요한지 판단해야 한다.
AI에게 제작 효율을 높이도록 맡길 수는 있지만, 효율을 위해 무엇을 희생해서는 안 되는지도 결정해야 한다. 기술은 선택지를 넓히지만 선택의 의미까지 대신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가 오늘날의 AI를 만난다면 어떤 도구로 활용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작품이 수백 년 동안 살아남은 이유를 단순히 문장 생성의 능력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AI 시대에 인간 창작자의 경쟁력은 기계보다 더 많은 문장을 생산하는 데 있지 않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누구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있다.
참고자료
- TIFFCOM 공식 프로그램 — “Technology and Storytelling”. AGBO의 크리스 브리어턴과 도미닉 휴스가 참여한 2026년 10월 29일 기조 대담의 주제와 발표자 소개.
- Screen Daily — “AGBO’s Chris Brearton, Dominic Hughes to deliver AI-themed keynote at Tokyo’s TIFFCOM”. AGBO의 AI 활용 방향과 창작자 중심의 기술 도입에 관한 사전 보도.
- TIFFCOM 공식 발표 — “Keynote: AGBO Executives on Technology, AI and Storytelling”. 루소 형제가 설립한 AGBO의 기술·스토리텔링 관련 발표 취지와 행사 정보.
- Hollywood Magazine — “AI Can Critique Shakespeare but Can’t Write It, Russo Brothers’ AGBO Execs Tell Tokyo Market”. 셰익스피어 비평과 창작의 차이, AI 보조 도구, 창작자의 역할과 콘텐츠 과잉에 관한 행사 후속 보도.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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