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내란’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흔해졌는가. 한때 국가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뒤흔드는 중대한 범죄를 가리키던 말이 이제는 정치적 논쟁과 진영 간 공방에서 너무 쉽게 등장한다. 급기야 ‘사이버 내란’이라는 제목의 책까지 등장했다.
황희두 노무현재단 이사가 쓴 『사이버 내란: 댓글 전쟁』은 국가기관의 온라인 여론조작 의혹에서 출발해 극우 커뮤니티, 청년 세대의 정치 성향, 이준석 정치까지 연결하며 한국 온라인 공론장의 변화를 분석한다. 온라인 여론조작과 혐오의 확산을 경계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 자체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그러나 책이 제기하는 문제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정치적 언어는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 이 책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운영하는 평산책방에 진열되고 방문객들에게 소개되는 일까지 화제가 된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책방은 책을 소개하고 독서 문화를 나누는 공간이다.
전직 대통령이 운영하는 책방이라고 해서 특정한 정치적 관점의 책을 배제해야 할 이유는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도 책을 선택하고 소개할 자유가 있다.
다만 전직 대통령의 이름과 상징성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까지 고려하면, 그 공간에서 어떤 책을 소개하는지는 단순한 서점의 상품 진열 이상의 정치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이미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에서 ‘사이버 내란’이라는 제목은 독자에게 특정한 문제의식과 적대 구도를 먼저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한국에서 국가기관이 온라인 여론에 개입한 역사는 실제로 존재한다. 과거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개입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한 중대한 문제였다. 조직적인 댓글 공작과 허위정보 유포, 온라인 공간을 이용한 여론 조작은 정권의 성향과 관계없이 엄격하게 조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플랫폼을 통한 혐오와 조작된 정보가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 역시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에 확인된 국가기관의 불법 행위가 오늘날 특정 정치 성향의 온라인 활동 전체를 내란으로 규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역사적 사실과 정치적 해석, 그리고 법률적 판단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선이 있어야 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정치적 언어의 인플레이션이다. 내란, 극우, 극좌, 친일, 반국가, 혐오, 독재 같은 단어가 상대를 설명하기보다 상대를 배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 사회의 공론장은 빠르게 좁아진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제거하거나 교정해야 할 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상대 진영의 잘못은 구조적 범죄로 확대하면서 자기 진영의 문제는 일시적 실수나 불가피한 대응으로 축소하는 이중 잣대도 반복된다. 정치가 사회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정치의 언어와 감정에 종속되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한 진영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온라인 정치의 위험은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조직적인 여론 조작이든, 익명성을 이용한 집단 공격이든, 알고리즘을 타고 확산되는 혐오와 음모론이든 민주주의의 토대를 훼손한다면 모두 같은 기준으로 검증해야 한다. 극우 커뮤니티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진보 진영의 온라인 선동과 집단적 공격은 외면한다면 비판의 설득력은 약해진다.
반대로 진보 진영의 문제를 비판하면서 보수 진영의 과거 국가기관 여론조작을 정당화한다면 역시 같은 모순에 빠진다. 민주주의는 어느 진영이 더 큰 목소리를 내느냐로 유지되는 체제가 아니다. 권력과 표현, 책임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때 비로소 작동한다. 법률적 의미에서도 내란은 신중하게 사용해야 할 단어다.
형법상 내란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는 행위라는 구체적인 구성요건을 갖는다. 온라인 여론 조작이나 정치적 선동이 심각한 사회적 해악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곧 형법상 내란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이버 내란’이 학술적·정치적 비유인지, 실제 범죄를 가리키는 개념인지부터 명확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법률적 개념을 무분별하게 확장한다면, 결국 법의 엄격성과 표현의 자유를 동시에 위협할 수 있다. 내란이라는 말이 흔해질수록 오히려 진짜 내란의 무게가 희석되는 역설도 경계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진영 서적이나 상대를 규정하는 새로운 정치적 낙인이 아니다.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여론 개입은 철저히 밝혀야 하고, 온라인 공간의 혐오와 조작도 엄정하게 다뤄야 한다. 그러나 그 책임을 묻는 기준은 좌우 어느 쪽에도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 전직 대통령의 책방이든 현직 대통령의 SNS든, 국회든 인터넷 커뮤니티든 공론장을 움직이는 모든 공간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
정치가 사회를 병들게 하는 순간은 서로 다른 생각이 존재할 때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더 이상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을 때다. 내란이라는 말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우리가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상대를 향한 더 강한 언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견뎌낼 민주주의의 절제와 원칙이다.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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