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논술까지 쓰는 시대, 수능은 무엇을 평가해야 할까?
세계 교육계가 서술형보다 더 깊게 고민하는 것
한국 교육에서 수능의 변화는 단순한 시험제도 개편이 아니다. 수능은 대학입학의 중요한 선발 장치이기 때문에 시험의 작은 변화도 학교 수업, 학원가, 학부모의 교육전략, 사교육 시장 전체를 흔든다. 그래서 최근 등장한 수능 서·논술형 평가 논의를 단순히 “객관식에서 논술형으로 바꾸자”는 이야기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AI가 답을 만들어주는 시대에, 시험은 학생이 ‘답을 만들 수 있는가’를 평가해야 할까? 아니면 AI가 만들어준 답을 판단하고 검증하고 수정할 수 있는가를 평가해야 할까? 이 질문은 한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2026년 국제 교육평가 연구를 보면 AI 시대의 평가 논쟁은 이미 객관식 대 논술형이라는 오래된 대립을 넘어섰다. 핵심은 평가의 진위성(authenticity), 타당도(validity), 공정성(fairness), 그리고 학생의 사고과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1.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부터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다
먼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수능 서·논술형 도입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2026년 8월 “현재 대입제도 개편안은 확정된 바 없다”고 공식 설명했다. 대학입학제도 특별위원회가 다양한 대입제도 개편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서·논술형 문항의 도입 여부 역시 논의 단계라고 밝혔다. 또한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서·논술형 30~40%’ 등의 구체적인 비중도 사실이 아니라고 재차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 논쟁이 뜨거운 이유는 분명하다. 2026년 교육계에서는 AI 시대에 맞는 사고력 평가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수능의 서·논술형 전환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반면 현실적인 반론도 만만치 않다. 2026학년도 수능 응시자는 약 55만 명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시험에서 수십만 개의 서술형 답안을 일정한 기준으로 채점하고, 성적을 짧은 기간 안에 확정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채점자의 편차, 이의제기, 법적 분쟁, 사교육 확대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즉 한국의 논쟁은 “논술형이 교육적으로 좋은가?”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확하게는 “대학 선발시험으로서 서술형 평가가 대규모·고위험(high-stakes) 시험의 공정성을 유지하면서도 타당한 평가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여기서부터 논쟁의 수준이 달라진다.
2. 세계의 평가 연구는 ‘논술형이면 사고력이 측정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버려야 할 단순한 공식이 있다. [객관식 = 암기] vs [논술형 = 사고력]…교육평가 연구에서 이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구분이다. 객관식 문항도 추론, 자료해석, 문제해결을 측정할 수 있다. 반대로 논술형 문항도 학생이 배운 표현과 모범답안을 암기해서 재현하는 방식으로 출제된다면 반드시 깊은 사고를 측정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시험 형식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문항이 실제로 어떤 사고를 요구하는가이다. 이것은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졌다. 2026년 AI 기반 자동 에세이 채점 연구에서는 LLM이 인간 채점자와 상당한 수준의 일치도를 보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정확도만으로 자동점수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 없으며, 무엇을 측정했는가, 다양한 집단과 문항에서 동일하게 작동하는가, 점수 사용의 결과가 어떠한가까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26년 PLOS ONE에 발표된 AI 채점 연구 역시 일정 수준의 신뢰성과 타당성 근거를 확인하면서도, 주제에 따라 인간 채점과 AI 채점 사이에 공정성 문제가 나타날 수 있음을 보고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나온다. AI 채점의 기술적 정확성이 높아진다고 해서 곧바로 AI 평가의 교육적 타당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이 둘은 다른 문제다.

3. 오히려 AI가 채점할수록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채점하면 주관적이지만 AI가 채점하면 객관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최근 평가 연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AI는 인간보다 일관되게 점수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일관되게 틀릴 수도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신뢰도(reliability)가 높다고 해서 타당도(validity)가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매우 유창하고 정돈된 문장을 썼다고 하자. AI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그런데 그 글을 실제로 학생이 이해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더구나 생성형 AI 시대에는 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직접 구성하지 않고 AI가 만든 문장을 수정해서 제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험이 측정한 것은 학생의 사고력인가, AI 활용 능력인가, 아니면 AI가 생성한 문장을 편집하는 능력인가?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2025~2026년의 AI 평가 연구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construct validity, 즉 ‘구인타당도’다. 시험이 측정한다고 주장하는 능력과 실제 점수가 반영하는 능력이 일치하는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4. 그래서 세계 교육계의 질문은 ‘AI를 막을 것인가’에서 바뀌고 있다
생성형 AI 등장 초기 교육계의 질문은 비교적 단순했다. “학생들이 ChatGPT를 사용하면 부정행위 아닌가?” 그래서 AI 탐지기가 등장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이 접근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2025년 발표된 평가 연구들은 AI 시대에 기존의 과제물을 AI 탐지 기술로 감시하는 방식보다 평가 과제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다.
즉, AI를 못 쓰게 만드는 시험에서 AI가 있어도 학생의 사고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으로 관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변화다.

5. ‘답안’보다 ‘답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중요해진다
여기서 한국 수능 논쟁과 연결되는 아주 중요한 지점이 등장한다. 전통적인 시험은 최종 결과를 본다. [문제 → 답 → 점수]….하지만 생성형 AI 시대에는 이 구조가 흔들린다. AI가 답을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교육평가 연구에서는 학생과 AI의 상호작용 과정 자체를 학습의 증거로 활용하려는 연구가 등장하고 있다.
2025년 연구에서는 학생의 AI와의 상호작용을 분석해 학습을 평가하는 DRIVE라는 프레임워크가 제안됐다. 이 연구는 AI를 단순한 답안 생성기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사고를 보조하는 학습 파트너로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평가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이것은 기존 시험과 상당히 다른 발상이다. 학생이 무엇을 최종적으로 썼는가뿐 아니라, [처음에는 무엇을 생각했는가. 무엇을 질문했는가.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였는가. 반박했는가. 근거를 확인했는가‘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수정했는가]…가 학습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6. 여기서 한국 수능의 진짜 딜레마가 시작된다
그렇다면 수능도 학생의 사고과정을 평가하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바로 수능이 수업이 아니라 선발시험이라는 사실이다. 학교에서는 과정평가를 할 수 있다. 학생의 초안도 보고, 토론도 보고, 수정 과정도 보고, 교사와의 상호작용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수십만 명이 동시에 치르는 국가 단위 대학입학시험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학생의 사고과정을 장기간 관찰할 수 없다. 짧은 시간 안에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해야 한다. 따라서 수능에 서·논술형을 넣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생각하는 학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누가 더 좋은 논술 교육을 받았는가를 측정하는 시험이 될 가능성은 없는가?

7. 한국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는 사실 ‘채점’보다 ‘사교육’일 수 있다
한국에서 서·논술형 평가를 이야기할 때 채점 공정성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그러나 더 깊은 질문은 따로 있다. 논술형 평가가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객관식 시험에는 객관식에 맞는 사교육이 존재했다. [킬러문항, 유형별 풀이, 시간관리, 오답 패턴]…서술형이 확대되면 사교육 시장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 논증 구조,
- 문장 템플릿,
- 첨삭,
- 답안 표현,
- 예상 논제,
- AI를 이용한 첨삭,
- AI 채점기준에 맞춘 답안 최적화.
즉, 시험의 형식만 바꾸면 사교육 경쟁의 구조도 함께 바뀔 수 있다. 따라서 “논술형 = 사교육 감소”라는 기대 역시 검증해야 한다. 오히려 평가 기준이 불투명할 경우 학부모는 더 불안해질 수 있다.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8. 유럽의 논술형 시험을 한국에 그대로 가져오기 어려운 이유
흔히 프랑스 바칼로레아, 영국 A-level, 독일 Abitur 등을 예로 들며 “유럽에서는 논술형 시험을 잘하고 있으니 한국도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조심해야 한다. 한국과 유럽의 대학입학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 논술·서술형이 중요한 이유는 그 시험이 단순히 한국의 수능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자격과 대학진학 자격, 대학별 선발 방식, 고등교육 체계, 대학 서열 구조 등이 서로 다르다.
한국처럼 수십만 명의 학생이 매우 좁은 대학 서열 구조 안에서 작은 점수 차이로 경쟁하는 환경에서는 같은 평가방식을 가져와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은 대학입학 공통시험에 서술형 도입을 추진했지만 채점의 오류와 편차 등에 대한 우려 속에 추진을 철회한 전례가 있다. 따라서 해외 사례는 “논술형이 가능하다”는 증거이지, “한국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성공할 것이다”라는 증거는 아니다.

9. 더 놀라운 것은 세계적으로 ‘읽기’ 자체가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AI 시대라고 해서 인간의 기초 능력이 덜 중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OECD의 2025 PISA 결과는 AI 시대에 특히 중요한 능력으로 평가·연결·비판적 읽기를 강조한다. 2025년 PISA에서는 OECD 국가들의 평균 과학·읽기·수학 성취가 전반적으로 하락했고, 특히 읽기에서는 정보를 평가하고 여러 자료를 연결하며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의 하락이 두드러졌다. 성급하게 읽고 잘못 이해하는 ‘hasty reading’도 2018년 5%에서 2025년 9%로 증가했다.
이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하다. AI 시대의 핵심 능력은 많이 아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AI에게 답을 묻는 것 사이 어딘가에 있다. AI의 답을 평가하려면 먼저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려면 배경지식이 있어야 하며, 틀린 정보를 발견하려면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10. 그래서 ‘AI 시대에는 지식이 필요 없다’는 주장도 위험하다
AI 시대 교육 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이제 지식은 AI가 알려주니까 사고력이 중요하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위험하다. 사고는 진공상태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어떤 주장을 평가하려면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어떤 자료가 잘못됐는지 알려면 사실관계를 알아야 한다.
AI의 답변에 반박하려면 AI보다 먼저 문제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AI 시대 교육은 지식교육 대 사고력교육의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지식을 사고의 재료로 사용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 지점에서 객관식과 논술형이라는 오래된 이분법도 무너진다.

11. AI에게 답을 묻는 학생과 AI에게 반박하는 학생은 전혀 다르다
최근 연구에서 더욱 흥미로운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생성형 AI가 무조건 사고력을 떨어뜨린다는 증거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2026년 연구에서는 비판적 사고를 명시적으로 가르치고, 구조화된 대화와 문제중심학습 속에서 AI를 사용하도록 했을 때 학생들의 AI 생성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의존이 감소하고 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해결책이 나타났다.
반면 2026년 체계적 문헌고찰은 학생의 생성형 AI 과의존과 관련된 연구 54편을 분석하면서, 핵심적인 차이가 AI를 학습지원으로 사용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판단·검증·노력·연습을 대신하도록 사용하는가에 있다고 정리한다. 따라서 문제는 AI를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하면서 누가 생각하고 있는가이다.
12. 이것이 수능에 던지는 가장 불편한 질문
여기에서 우리는 기존의 수능 논쟁을 뒤집어볼 수 있다. “객관식 시험은 AI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 이 명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AI가 논술 답안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논술형 시험은 정말 인간의 사고력을 측정할 수 있는가?
만약 학생이 AI에게 “이 주제에 대한 논술 답안을 작성해줘.”라고 요청하고, 그 답안을 약간 수정해서 제출할 수 있다면, 논술형 시험 역시 AI 시대에는 새로운 객관식 시험처럼 변질될 수 있다. 즉, 시험 형식의 변화가 사고의 변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13. 어쩌면 미래의 시험은 ‘답안’이 아니라 ‘판단’을 평가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미래 평가의 방향을 상상해볼 수 있다. 학생에게 완성된 답안을 요구하는 대신, 자료를 제시한다. AI가 만든 답안도 하나 제시한다. 그리고 묻는다.
- ① 무엇이 사실인가?
- ② 어떤 근거가 부족한가?
- ③ AI의 주장에서 잘못된 부분은 무엇인가?
- ④ 자신의 판단을 뒷받침할 자료는 무엇인가?
- ⑤ 반대 입장에서는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는가?
- ⑥ AI의 답을 수정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렇게 되면 평가의 중심이 달라진다. AI보다 더 많은 것을 쓰는 학생을 찾는 것이 아니다. AI가 만든 것을 평가할 수 있는 학생을 찾는다. 14. 이것은 ‘논술형 수능’보다 훨씬 어려운 변화다. 왜냐하면 이런 시험에서는 단순한 글쓰기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 배경지식
- → 정보 이해
- → 질문 생성
- → 근거 평가
- → 논리적 판단
- → 반론 검토
- → AI 결과 검증
- → 자신의 판단 수정… 의 연쇄적인 능력이다. 이것은 단순한 ‘논술 능력’과 다르다. 말하자면 AI 시대의 판단력이다.

15. 한국 교육이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수능의 ‘형식’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논쟁에서 가장 아쉬운 질문은 “객관식이냐 논술형이냐?”에 머무는 것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 우리는 대학에 들어갈 학생에게 정확히 어떤 능력을 요구할 것인가?
- 지식을 기억하는 능력인가.
- 문제를 빠르게 푸는 능력인가.
- 긴 글을 잘 쓰는 능력인가.
-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능력인가.
-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능력인가.
- AI의 답을 검증하는 능력인가.
- AI와 협력하면서도 자신의 판단을 유지하는 능력인가.
- 아니면 이 모든 능력의 조합인가.
평가가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평가 형식은 그 다음이다.
16. 수능 개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논술’이 아니라 ‘타당도’일 수 있다
교육평가에서 좋은 시험이란 어려운 시험도, 최신 기술을 사용하는 시험도 아니다. 시험 점수가 실제로 측정하고자 하는 능력을 얼마나 제대로 보여주는지가 중요하다. AI 채점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 AI가 학생의 사고를 정확히 측정하고 있는가?
- 특정한 문체나 표현방식에 유리하지 않은가?
- 언어적 배경이 다른 학생에게 동일하게 작동하는가?
- 특정 주제에서 편향이 발생하지 않는가?
- AI가 높은 점수를 준 답안이 실제로 높은 수준의 사고를 의미하는가?
2026년 AI 에세이 채점 연구에서도 높은 수준의 인간-기계 일치가 가능해지고 있지만, 어느 모델도 모든 하위집단의 차이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논쟁에서 “AI 채점 정확도가 몇 %인가?” 만을 묻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 점수를 대학입학이라는 고위험 의사결정에 사용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17. 그리고 이것은 수능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수능 논쟁은 학교 교육 전체의 축소판이다. 수능에서 논술형을 도입한다고 해놓고, 학교에서는 여전히 정답 하나를 요구하고, 숙제는 AI가 대신 작성하고, 교사는 AI가 만든 결과물을 평가하고, 학생은 시험 직전에 예상 답안을 암기한다면, 시험의 형식만 달라질 뿐 교육의 구조는 그대로다.
반대로 객관식 시험이 일부 남아 있더라도, 학생이 읽고, 질문하고, 근거를 찾고, AI의 답을 검증하고,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는 교육을 받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교육의 변화가 시험의 변화보다 먼저일 수도 있다.
18. 그래서 한국의 ‘뜨거운 감자’는 사실 수능이 아니다
수능 서·논술형 도입 논란은 표면적으로는 시험제도 논쟁이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이것은 한국 교육이 인간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관한 논쟁이다.
- AI가 정보를 찾는다.
- AI가 글을 쓴다.
- AI가 계산한다.
- AI가 번역한다.
- AI가 문제를 푼다.
- AI가 답안까지 평가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가장 위험한 답은 “그러니 인간은 창의성을 키워야 한다.”라는 추상적인 구호다. 이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우리는 학생이 어디에서 AI를 멈추게 하고, 어디에서 자신의 판단을 시작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수능을 바꾸는 것보다 먼저, ‘시험에서 인간에게 남겨야 할 것’을 결정해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에서 객관식이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는 근거도 없고, 논술형으로 바꾸면 사고력이 자동으로 길러진다는 근거도 없다. 오히려 최근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훨씬 복잡하다.
AI는 사고를 대체할 수도 있고 증폭할 수도 있다. 논술형 평가는 사고를 더 잘 드러낼 수도 있지만, 설계가 잘못되면 새로운 사교육과 채점 공정성 문제를 만들 수 있다. AI 채점은 인간 채점의 일관성을 보완할 가능성이 있지만, 높은 일치도가 곧 교육적 타당성과 공정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한국의 수능 논쟁에서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몇 퍼센트를 논술형으로 할 것인가?”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AI가 답을 알고 있는 시대에, 대학은 인간에게 무엇을 알고 무엇을 판단할 것을 요구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이 정해진 다음에야 객관식인지, 서술형인지, 논술형인지, AI를 허용할 것인지, AI를 채점에 사용할 것인지, 과정을 평가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어쩌면 앞으로의 좋은 시험은 AI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학생을 찾는 시험이 아니라, AI가 내놓은 답 앞에서 자신의 판단을 포기하지 않는 학생을 찾는 시험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 교육의 진짜 질문이 시작된다. “우리 아이가 정답을 맞혔는가?”가 아니라, “우리 아이가 자신의 판단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수능의 미래를 논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다.
참고자료
- OECD, PISA 2025 Results (Volume I) — AI 시대 읽기·정보평가 능력의 변화
- OECD, PISA 2025 Assessment and Analytical Framework — 디지털 시대 학습·평가 프레임워크
- Huang, Palermo & Wilson, Assessing Writing, 2026 — 생성형 AI 자동 에세이 채점의 정확도·공정성 연구
- Debelak & Ziegler, PLOS ONE, 2026 — AI 채점의 신뢰도·타당도·공정성 평가 기준
- An, Lu & Yang,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Communications, 2026 — 생성형 AI 과의존에 관한 54편 연구의 체계적 고찰
- Hou et al., Computers & Education, 2026 — 비판적 사고 개입이 AI 의존과 창의적 문제해결에 미치는 영향
- The cognitive impact of ChatGPT in higher education, 2026 — 67개 실증연구를 종합한 체계적 문헌고찰
- 국가교육위원회, 2026 — 현행 대입제도 개편안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공식 설명
원문보기 : AI가 논술까지 쓰는 시대, 수능은 무엇을 평가해야 할까?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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