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동지갑?] 삼전·하닉이 돈 벌자, 이번엔 농어촌이 숟가락을 들었다
반도체가 돈을 벌자 정치권의 눈빛이 달라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자, 더불어민주당 문금주 의원은 반도체 호황의 결실을 농어촌과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리는 이렇다. 한국이 자유무역협정, 즉 FTA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농축수산물 시장이 개방됐고, 그 부담을 농어민이 감내했다. 그 희생이 있었기에 제조업과 수출산업이 성장했고, 반도체 호황도 그 토대 위에 세워졌으니 이제 대기업에 집중된 과실을 농어촌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의원은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참여 확대가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말만 들으면 그럴듯하다. 농어촌은 실제로 어려웠고, FTA 이후 농업계가 겪은 피해와 불안도 가볍게 볼 수 없다. 값싼 수입 농산물과 경쟁해야 했고, 농촌 고령화와 지역 소멸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농어민 지원은 분명 국가가 고민해야 할 과제다. 그런데 문제는 지원의 방식이다. 농어촌을 지원해야 한다는 말과,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이익을 농어촌에 나눠야 한다는 말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국가정책이고, 후자는 기업 이익에 대한 정치적 배분 요구다. 여기서 선을 흐리면, 기업의 이익은 더 이상 주주와 노동자, 협력사, 재투자, 세금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정치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공동지갑’이 된다.
풍자의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반도체는 칩을 만들었는데, 정치권은 갑자기 밥상을 차린다.
삼전과 하이닉스가 D램과 HBM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버티자, 옆에서 “그 밥상엔 우리 숟가락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물론 국가경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농업도 중요하고, 반도체도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산업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곧 모든 이익을 나눠 가져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끝이 없다. 반도체 수출이 항만과 물류 덕분이면 항만 노동자에게 나눠야 하고, 전력망 덕분이면 전력 공기업에 나눠야 하고, 대학이 인재를 길렀으니 대학에도 나눠야 하고, 국민연금이 주주니 모든 국민에게 나눠야 한다. 국가 전체가 연결망이라는 사실은 맞지만, 그것이 특정 기업의 순이익을 정치가 임의로 배분할 권한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문금주 의원의 주장은 농어촌상생협력기금 확대라는 형태를 띤다. 농어촌상생기금 자체는 FTA 체결에 따른 농어업 분야 지원과 상생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치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단순 기금 참여 독려를 넘어선다. “반도체 호황은 농어민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표현 때문이다. 이 말은 반도체 기업의 성과를 독자적 기술력, 투자, 리스크 감수, 글로벌 경쟁, 연구개발의 결과로만 보지 않고, 농어민 희생에 대한 채무처럼 해석한다. 이 순간 기업 이익은 성과가 아니라 빚이 된다. 정치가 기업의 성공을 축하하기보다 먼저 청구서를 들이미는 풍경이다.
물론 기업도 사회적 책임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제 혜택, 인프라, 인재 양성, 전력망, 도로, 항만, 국가 외교와 통상 전략의 도움을 받는다. 반도체 산업은 국가전략산업이고, 정부 지원도 실제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지역사회, 협력사, 노동자, 환경, 교육, 기부와 상생에 기여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은 원칙과 제도로 설계되어야 한다. 특정 정치인이 특정 시점에 특정 산업을 겨냥해 “이번엔 여기서 나눠라”고 말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그것은 정책이라기보다 정치적 징발에 가깝게 들린다.
더 큰 문제는 이 주장이 반복되는 낡은 그림이라는 점이다. 과거에도 초과이익공유제, 코로나19 이익공유제 같은 이름으로 “많이 번 기업이 더 내야 한다”는 발상이 등장했다. 2011년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을 나누는 초과이익공유제가 논란이 됐고, 2021년에는 코로나19로 수혜를 본 플랫폼 기업의 이익을 공유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번에는 반도체가 대상이 됐다. 이름은 매번 달라진다. 하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누군가 많이 벌었다. 그러니 정치가 정한 ‘좋은 명분’에 따라 더 내라는 것이다.
이 논리의 가장 큰 약점은 손실에는 침묵한다는 점이다.
반도체가 적자를 낼 때 농어촌이 손실을 나눠 부담했는가.
HBM 투자 실패 위험을 농어민이 떠안았는가.
공장 증설, 기술 추격, 중국·미국·대만과의 경쟁, 수십조 원 규모 설비투자 리스크를 정치권이 대신 감당했는가.
기업이 실패하면 경영진과 주주, 노동자, 협력사가 직격탄을 맞는다. 그런데 성공하면 갑자기 그 과실은 사회 전체의 몫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시장경제 진영이 느끼는 불편함이다. 위험은 민간이 지고, 이익은 정치가 배분한다면 그 시스템에서 누가 장기 투자를 하겠는가.
특히 반도체 산업은 일반 제조업보다 투자 주기가 길고 변동성이 크다. 한 번의 호황이 영원한 돈방석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의 이익은 다음 세대 공정, AI 반도체, 메모리 사이클, 미국·중국 공급망 압박에 대비하기 위한 재투자 재원이다. 반도체 기업의 현금은 단순히 쌓아둔 금고가 아니라 미래 생존비다. 이익이 났다고 곧바로 정치적 환원 요구가 커지면 기업은 국내 투자보다 해외 분산, 현금 보수화, 방어적 경영을 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피해는 다시 일자리와 협력사, 지역경제로 돌아온다.
게다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은 오너 한두 명의 지갑이 아니다. 주주가 있고, 국민연금이 있고, 소액주주가 있고, 임직원이 있고, 협력사가 있고, 장기 투자 계획이 있다. 최근 SBS 보도도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의 발언을 인용해 삼성전자의 결실에는 인프라와 협력기업, 400만 명이 넘는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이 연결돼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 말은 노조 성과급 논란에도 적용되지만, 정치권의 환원 요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기업이 벌었으니 특정 집단에 나누자”는 말은 듣기 좋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몫을 정치가 임의로 재분류하는 일이다.
농어민 지원을 정말 진지하게 하려면 답은 따로 있다. FTA 피해보전 제도를 정교하게 만들고, 농업 구조조정과 스마트농업 투자를 확대하고, 유통 구조를 개혁하고, 청년 농업인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식량안보 차원의 장기 예산을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반도체 기업의 호황 때마다 “너희가 벌었으니 농어촌에 내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정치다. 쉬운 정치일수록 박수는 빠르지만, 제도는 허약하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농어민을 도울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본질은 기업의 성과를 정치가 어떻게 바라보느냐다.
성공한 기업을 보면 “어떻게 더 키울까”를 먼저 묻는가, 아니면 “어디에 나눠줄까”를 먼저 묻는가.
국가의 산업정책은 이 질문에서 갈린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심장이다. 농어촌은 한국 사회의 뿌리다. 심장과 뿌리는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심장에서 피가 돈다고 해서 뿌리가 직접 심장의 근육을 떼어갈 수는 없다. 뿌리를 살리려면 국가가 물길을 만들어야지, 심장을 향해 청구서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정치가 정말 농어민을 위한다면 반도체 이익을 향해 손을 뻗기 전에, 농업을 어떻게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만들지부터 말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을 정말 국가자산으로 본다면, 기업이 돈을 벌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말은 “나눠라”가 아니라 “더 투자하라, 더 고용하라, 더 세계로 가라”여야 한다.
풍자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반도체 회사가 칩을 팔아 돈을 벌었더니, 정치권은 칩 대신 숟가락을 들었다.
그 숟가락이 한 번 밥상에 올라오면 다음엔 누가 올지 모른다.
농어촌 다음은 노조, 그 다음은 지역구, 그 다음은 또 다른 명분이다.
기업의 이익이 정치의 공동밥상이 되는 순간, 시장경제는 밥상을 차린 사람이 아니라 밥상에 앉은 사람의 힘으로 굴러가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나라에서 기업은 묻는다.
“우리가 돈을 벌면, 다음 청구서는 어디서 날아오는가?”
참고문헌
- 연합뉴스, 「문금주 ‘반도체 호황, 농어촌 상생기금 참여로 사회적 환원해야’」, 2026.4.28.
→ 문금주 의원의 성명과 “반도체 호황은 FTA 과정에서 농어민 희생이 축적된 결과”라는 핵심 발언 확인용. - 한국경제, 「‘반도체 호황, 농어민 희생 결과’…환원 확대 요구한 與」, 2026.4.28.
→ 삼성전자·SK하이닉스 실적과 민주당 문금주 의원의 농어민 환원 확대 주장 정리. - SBS, 「‘삼전, 하닉 이익 농어촌에’ 주장에 술렁…‘숟가락?’ 그럼 칩스법 혈세 투입은?」, 2026.4.30.
→ 반도체 이익 환원 주장에 대한 여론 반응과 소액주주·국민연금·협력사 등 이해관계자 논점 참고. - 한국농어민신문, 「‘FTA 희생 위 반도체 호황···농어민 환원 확대해야’」, 2026.4.29.
→ 농업계 관점에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참여 확대 필요성을 다룬 보도. - 중앙일보, 「‘반도체 호황, 농어민 희생 덕’…與의원 ‘삼전·하닉 이익 나누자’」, 2026.4.30.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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