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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카가 정말 오디세우스 마지막 목적지였을까?” : ‘호메로스 이후의 상상’

《오디세이》는 단순한 귀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은 과연 귀환으로 끝날 수 있는가라는 훨씬 근본적인 이야기로 바뀝니다. 다만 한 가지 사실관계는 짚고 글을 이어 가고자 합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자체는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온 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다만 후대 전승인 Telegony에서는 귀환 이후의 또 다른 여정이 전해집니다. 따라서 이를 “호메로스 이후의 상상” 또는 “오디세이 이후 우리가 던지는 질문”으로 글을 확장해보고자 합니다.

오디세이 이후, 인간은 무엇을 향해 다시 떠나는가

이타카에 도착한 다음,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이타카에 돌아왔다.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곳. 긴 전쟁을 끝내고, 수많은 섬을 지나고, 바다의 폭풍과 신들의 변덕을 견디며, 유혹을 뿌리치고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넘은 끝에 도착한 곳. 이타카.

그곳에는 자신의 집이 있었고, 아내가 있었고, 아들이 있었고, 자신이 떠나기 전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제 끝났다.” 영웅은 돌아왔고, 여행은 끝났으며, 이야기는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나는 오히려 그 순간부터 오디세우스에게 가장 어려운 시간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떠나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다.

길 위의 사람은 강합니다. 왜 가야 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우스에게는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고, 자신의 삶을 되찾아야 했습니다. 목적이 분명한 인간은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고난도 견딜 수 있습니다. 시간도 견딜 수 있습니다. 외로움도 견딜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죽음조차 견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타카에 도착하는 순간, 그동안 자신을 움직였던 가장 강력한 질문 하나가 사라집니다.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묻습니까?

가장 어려운 항해는 목적지가 사라진 뒤 시작된다

우리는 흔히 목표를 이루는 것을 인생의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하지만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목표가 있을 때는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문제는 목표를 이루고 난 뒤입니다. 성공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꿈을 이룬 다음에는 무엇을 꿈꿀 것인가. 오랫동안 원했던 것을 얻은 다음에는 무엇을 원할 것인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이제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이상하게도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에게 더 자주 찾아옵니다.

호메로스는 그다음 이야기를 오래 들려주지 않는다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타카 이후를 거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빈 공간이 흥미롭습니다. 오디세이 이후의 이야기를 우리가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후대에는 오디세우스의 귀환 이후를 이어가는 여러 전승이 생겨났습니다.

그 가운데 Telegony라는 서사시도 있었습니다. 원문은 전해지지 않지만, 후대의 기록을 통해 그 존재와 내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왜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이타카에서 끝내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어쩌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귀환이 인간의 끝일 수 없다는 것을.

이타카는 도착점이었지만, 인간은 도착점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는 반드시 필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타카가 오디세우스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이타카에 도착하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이었고, 이타카에 돌아온 뒤에도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인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쟁을 겪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뻔한 사람. 신을 만난 사람. 유혹을 경험한 사람. 죽음을 가까이에서 본 사람.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시험받은 사람. 그 모든 경험을 통과한 인간을 단순히 ‘왕’이라는 한 가지 역할로 다시 묶을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보다 작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디세이 이후의 질문은 ‘어디로 갈 것인가’가 아니다

첫 번째 항해에서는 목적지가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항해에서는 질문이 달라집니다. “왜 다시 떠나려 하는가?” 이것은 완전히 다른 질문입니다. 돌아갈 곳이 없어서 떠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잃어서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돌아왔습니다. 이미 얻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떠나고 싶다면, 그 욕망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인간은 부족해서만 떠나는 존재가 아니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아주 묘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부족해서 떠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충분해도 떠납니다. 배고파서 새로운 땅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배가 불러진 뒤에도 새로운 세계를 탐험했습니다. 살기 위해 바다를 건넜지만, 나중에는 단순히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 때문에 바다를 건넜습니다.

인간에게는 생존을 넘어서는 욕망이 있습니다. 알고 싶은 욕망. 보고 싶은 욕망. 만들고 싶은 욕망.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실로 가져오고 싶은 욕망. 이것이 인간을 문명으로 이끌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디세우스가 특별한 인물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힘만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끊임없이 상황을 읽고, 상상하고, 속이고, 질문하고,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냅니다. 그리스인들은 그를 단순한 전사가 아니라 metis, 즉 지혜롭고 상황에 맞게 발휘되는 영리함을 가진 인물로 그렸습니다.

그는 주어진 세계 안에서 그저 살아남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바뀌면 자신의 방법도 바꾸는 인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AI는 오디세우스에게 어떤 배였을까

여기서 AI가 등장합니다. AI를 하나의 거대한 ‘배’라고 상상해봅시다. 이 배는 놀랍습니다. 과거에는 혼자 건널 수 없었던 바다를 건너게 해줍니다.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생각을 확장하고, 글을 쓰게 하고, 그림을 만들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하고, 수많은 가능성을 순식간에 보여줍니다.

오디세우스에게 배가 없었다면 항해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AI도 비슷합니다. AI는 인간의 항해 능력을 엄청나게 확장시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배가 좋아졌다고 해서 어디로 가야 할지가 자동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좋은 배가 있다고 더 좋은 항해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AI 시대의 중요한 역설입니다. AI는 우리에게 더 좋은 도구를 줍니다. 더 빠른 속도를 줍니다. 더 많은 정보를 줍니다. 더 넓은 가능성을 줍니다. 하지만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자동으로 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택지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그 질문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예전에는 배가 없어서 갈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갈 수 있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왜 그곳으로 가야 하는가?”가 중요해집니다.

오디세우스가 다시 떠난다면, 무엇을 찾으러 갈까

이제부터는 순전히 우리의 상상입니다. 호메로스 이후의 질문입니다.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서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면, 이번에는 무엇을 찾으러 떠날까요? 새로운 왕국? 새로운 영광? 새로운 전쟁? 아마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두 번째 항해는 세상을 정복하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자신이 아직 무엇을 모르는지를 발견하기 위한 여행일지도 모릅니다. 첫 번째 여행이 ‘집을 찾는 여행’이었다면,
두 번째 여행은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묻는 여행’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이 모르는 자신’을 찾아 떠난다

우리는 자신을 꽤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내성적이야. 나는 이런 일을 좋아해. 나는 이런 직업이 맞아. 나는 이런 사람과 잘 맞아. 그런데 인생이 우리를 전혀 다른 환경에 던져놓으면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나타납니다.

위기 속에서 용감한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전혀 다른 내가 되기도 하고, 실패하면서 내가 무엇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이미 알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해가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다시 떠날 이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마 거대한 목표에서만 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가 궁금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마음에 걸려서.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어서.
내가 가진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고 싶어서. 혹은 단순히, “아직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되어보지 않았다.”는 느낌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공의 욕망과 조금 다릅니다. 가능성의 욕망입니다.

AI 시대에는 이 ‘가능성의 욕망’이 더욱 중요해진다

AI는 인간의 능력을 대신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 시도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힙니다. 예전에는 작가가 아니면 책을 쓰기 어려웠습니다. 디자이너가 아니면 디자인하기 어려웠습니다. 개발자가 아니면 프로그램을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변화입니다. 인간에게 새로운 항해를 시작할 수 있는 더 작은 배들이 무수히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깁니다. 배가 많아졌다고 모두가 항해하는 것은 아니다. 왜일까요?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고 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된다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남들이 한다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 의미 있다고 느끼는 것에 움직입니다. 그래서 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로 질문이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무엇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가?” 까지 가야 합니다.

여기서 인간과 AI의 결정적인 차이가 생긴다

AI는 목표를 받으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왜 그 목표가 나에게 중요한가를 스스로 살아내지는 않습니다. AI는 여행 일정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여행을 통해 내가 무엇을 느끼고 싶은지까지 대신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AI는 책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이 내 삶을 바꾸게 될지까지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AI는 수많은 미래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미래를 내 삶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결국 인간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이유를 가진 인간’이 중요해진다

앞으로 인간은 AI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AI보다 더 빠르게 계산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AI보다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아주 오래된 능력입니다.

“나는 이것을 왜 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는 능력.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생겼을 때, “그렇다면 한번 가보자.”라고 말하는 용기. 이것이 다시 떠나는 인간의 조건입니다.

이제 교육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자녀교육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교육은 아이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좋은 학교. 좋은 성적. 좋은 직업. 안정적인 미래. 하지만 AI 시대에는 목적지와 방법이 너무 빠르게 변합니다.

오늘의 정답이 내일의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교육이 해야 할 일은 조금 달라져야 합니다.
아이에게 하나의 목적지를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떠날 이유를 발견하게 하는 것.

‘왜 배우는가’를 잃어버린 공부는 오래가지 못한다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말하기 전에 어쩌면 먼저 물어야 합니다. 왜 알고 싶은가. 왜 궁금한가. 왜 이것을 해보고 싶은가. 왜 이 문제가 마음에 걸리는가. 왜 이것을 세상에 만들고 싶은가. 모든 공부가 거대한 꿈으로 연결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배움과 자신의 삶 사이에 작은 연결고리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그 연결이 생기면 공부는 의무에서 탐험으로 바뀝니다.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탐험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교육은 아이에게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출항’을 허락하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교사가 아이의 미래를 대신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것이 궁금하다.”라고 말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그게 돈이 되니?”가 아니라, “왜 그것이 궁금하니?”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기 이유를 찾았다면, “그럼 한번 가보자.”라고 말해주는 것. 실패하면 다시 돌아오게 하고, 돌아왔다면 또 다른 곳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

결국 교육의 목표는 ‘항해 능력’이 되어야 한다

AI 시대에는 평생 하나의 직업을 유지하는 능력보다 새로운 바다를 만났을 때 다시 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질문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수정하고, 다시 출항하는 능력.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나는 왜 이것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교육인지도 모릅니다.

오디세이의 마지막 장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를 이타카에 돌려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이야기를 멈췄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이후를 계속 상상해왔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은 귀환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돌아온 뒤에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한, 다시 궁금해하고, 다시 욕망하고,
다시 질문하고, 다시 떠날 것입니다.

다만 AI 시대의 두 번째 항해에서는 이전과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더 빠른 배가 아닙니다. 더 많은 지도도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왜 이 배를 타는가?”를 아는 것.

어쩌면 AI 시대의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모든 길을 보여주는 것.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선택한 길이 틀렸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온 뒤에도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니?”라고 물어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한 번의 항해로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우스도 그랬습니다. 한 번의 귀환으로 인간의 모든 질문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오디세이 이후’ 우리가 써야 할 다음 장이다

이타카에 돌아온 뒤에도 바다를 바라보는 인간. 이미 충분히 가졌는데도 새로운 것을 궁금해하는 인간.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도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인간. AI가 수많은 길을 보여주는데도 그중 하나를 자신의 이유로 선택하는 인간. 그리고 언젠가 그 길에서 돌아와 다시 자신에게 묻는 인간. “이번에는 무엇을 배웠는가?” 그리고 다시 바다를 바라보며, “다음에는 어디로 가볼까?” 이것이 인간의 끝없는 항해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AI 시대의 교육은 아이에게 인생의 목적지를 정해주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이유를 가지고 계속 출항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드는 일이어야 합니다. 배는 AI가 더 빠르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지도도 AI가 더 많이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항로도 AI가 계산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왜 떠나는가?”라고 묻는 사람은 여전히 인간이어야 합니다. 어쩌면 오디세이는 그 질문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다음 항해가 시작되는 순간, 오디세이의 다음 장도 함께 시작됩니다.

참고자료

  • 호메로스, 《오디세이》 — 오디세우스의 귀환과 ‘귀환 이후’의 인간을 생각하기 위한 원전
  • Proclus, Chrestomathy — 현재 전하지 않는 후대 서사시 《Telegony》의 내용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
  • Telegony — 《오디세이》 이후 오디세우스의 삶을 다룬 것으로 전해지는 후대 서사시. 원문은 소실됨
  • Gregory Nagy, The Ancient Greek Hero in 24 Hours — 고대 그리스 영웅 서사와 오디세우스에 대한 해석
  • Martha C. Nussbaum, The Fragility of Goodness — 고대 그리스 서사와 인간의 선택, 삶의 취약성에 관한 철학적 논의
  • OECD, OECD Learning Compass 2030 — 변화하는 시대에 학습자의 주체성과 미래 역량을 바라보는 교육적 관점
  • UNESCO, Guidance for Generative AI in Education and Research — 생성형 AI 시대 교육에서 인간의 역할과 책임에 관한 논의
  • * 《Telegony》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가 아닙니다. 원문이 전해지지 않고 후대 자료를 통해 내용이 알려진 서사이므로, 본문에서처럼 ‘호메로스 이후의 상상’이라는 별도의 층위로 구분해 다루는 것이 정확합니다.

원문보기 : “이타카가 정말 오디세우스 마지막 목적지였을까?” : ‘호메로스 이후의 상상’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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