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손흥민 충돌설보다 더 위험한 것… 한국 축구는 왜 늘 ‘전설 감독’의 그림자에 갇히나
멕시코전 0-1 패배보다 오래 남은 장면은 손흥민의 57분 교체였다. 홍명보 감독과 손흥민의 개인적 불화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뒤진 경기에서 주장의 영향력을 지운 선택과 외부 조롱 논란은 한국 축구가 왜 손흥민을 고립시켰는지 묻게 만든다.
손흥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옌스 카스트로프 0분은 홍명보호의 선택이 얼마나 닫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이었다.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 두 경기에서 옌스 카스트로프는 단 1분도 뛰지 못했다. 독일 연령별 대표팀을 거쳤고, 분데스리가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그는 중앙 미드필더와 윙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자원으로 평가받았다. 대회를 앞두고 한국 대표팀의 활동량과 전진성을 바꿔줄 카드로 기대를 모았지만, 본선 무대에서 그의 이름은 벤치 명단에만 남았다.
논란은 멕시코전에서 더 커졌다. 홍명보 감독은 좌우 윙백으로 설영우와 김문환을 선택했다. 멕시코의 빠른 측면 공격을 의식한 수비적 선택이라는 해석은 가능하다. 실제로 수비 조직은 일정 부분 버텼다. 그러나 공격 전개에서 양 측면은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고, 크로스와 전진의 타이밍은 자주 끊겼다.
이때 벤치에는 카스트로프가 있었다. 활동량, 직선적인 전진, 압박 회피, 중원과 측면을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였다. 박주호 해설위원이 “그날 경기에서 가장 필요한 선수가 옌스였을 수도 있다”는 취지로 아쉬움을 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이 필요한 것은 익숙한 패턴의 반복이 아니라, 멕시코의 압박을 흔들 새로운 속도와 방향 전환이었다.
물론 카스트로프가 투입됐다면 결과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월드컵은 실험장이 아니고, 감독에게는 수비 안정성을 우선할 이유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한국이 공격의 해법을 찾지 못하던 상황에서도, 이미 검증된 기존 선택을 반복했고, 새로운 카드에는 끝내 손을 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팬들은 묻는다. 대표팀은 지금 가장 좋은 선수를 쓰고 있는가, 아니면 가장 익숙한 선수만 쓰고 있는가.
이 질문이 거칠어지며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카르텔’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그것을 사실처럼 단정할 근거는 없다. 더 정확한 진단은 이렇다. 홍명보호의 선수 선택은 지금까지 ‘새로운 가능성의 활용’보다 ‘감독이 이미 익숙한 구조의 유지’에 더 가까워 보였다.
손흥민을 고립된 원톱에 두고, 카스트로프 같은 전진형 자원을 벤치에 묶어두며, 측면에서는 원래의 장점을 살리기 어려운 조합을 반복한다면 문제는 특정 선수 한 명의 기용 여부가 아니다. 대표팀 전체가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선택지를 스스로 줄이고 있다는 데 있다.
남아공전은 단순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아니다. 홍명보 감독이 또다시 익숙한 선택을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손흥민의 위치와 카스트로프 같은 새 자원을 통해 경기의 결을 바꿀 것인지가 이번 대회의 진짜 승부처가 됐다.
홍명보 감독의 문제는 교체 자체보다, 교체를 설명하는 방식에 있었다.
멕시코전 뒤 홍명보 감독은 손흥민 교체 배경에 대해 상대의 강한 견제와 공격 변화를 위한 신선한 자원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표면적으로는 축구에서 흔히 나올 수 있는 설명이다. 그러나 바로 그 설명이 논쟁을 키웠다.
손흥민이 집중 견제를 받는 것은 예상 밖의 변수가 아니다. 월드클래스 선수에게 집중 마크는 실패의 이유가 아니라, 감독이 전술로 풀어야 하는 출발점이다. 상대 수비가 손흥민에게 두세 명을 붙인다면, 그만큼 다른 쪽에는 공간이 생겨야 한다. 손흥민의 역할은 골과 슈팅 숫자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그가 수비를 끌고 움직이는 동안 이강인과 황인범, 측면 공격수와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활용할 공간이 생긴다.
그런데 멕시코전에서 한국은 손흥민이 견제를 받는 문제를 전술적으로 풀기보다, 손흥민을 경기에서 빼는 방식으로 정리했다. 이것이 팬들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상대가 에이스를 막았다는 사실은 상대의 성공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마크를 역이용해 다른 공격수를 살리지 못했다면, 그것은 감독의 과제가 된다.
‘프레시한 선수’라는 말은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을 피하게 만들었다.
한국은 0-1로 뒤지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단순한 활동량이 아니라, 상대 수비가 끝까지 두려워할 존재를 남겨 두는 일이었다. 손흥민이 경기장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멕시코 수비는 깊게 물러날 수밖에 없고, 그 긴장은 다른 선수에게 공격 공간을 만든다.
그래서 후반 57분의 교체는 ‘신선한 자원 투입’이라는 말로 끝낼 수 없는 선택이 됐다. 홍 감독은 체력과 경기 흐름을 보았을 수 있다. 그러나 팬들이 본 것은 반대였다. 뒤진 경기에서 한국 축구가 가장 큰 공격 자산과 주장 리더십을 동시에 벤치에 앉히는 장면이었다.
더 불편한 대목은 선수들의 언어와 감독의 언어가 엇갈렸다는 점이다.
패배 뒤 선수들은 대체로 결과를 피하지 않았다. 설영우와 오현규는 아쉬움과 책임을 말하며 다음 경기를 준비하겠다는 태도를 보였고, 조규성은 경우의 수에 기대지 않고 이겨서 올라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강인 역시 다음 경기 승리 의지를 분명히 했다.
선수들의 말은 단순했다. 부족했고, 아팠고, 다음 경기에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반면 감독의 설명은 상대의 견제, 체력, 심리, 경기 흐름 같은 주변 조건을 오래 지나갔다. 물론 감독이 선수 보호를 위해 직접적인 비판을 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감독의 말은 해명이 아니라 방향이어야 한다.
선수들에게 “정신적으로 잘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신력은 전술의 대체물이 아니다. 압박을 피하는 빌드업, 손흥민에게 붙는 수비를 끌어내는 움직임, 이강인의 전진 패스를 살리는 위치 변화, 스트라이커와 윙포워드의 거리 조정이 먼저 나와야 한다. 선수의 정신력은 그런 설계 위에서 비로소 힘을 낸다.
그래서 지금 홍명보호를 향한 비판은 패배 하나를 향한 분노가 아니다.
팬들이 묻는 것은 “왜 졌나”가 아니다. 더 정확히는 “왜 상대의 집중 견제를 예상하고도 손흥민을 살리는 전술을 만들지 못했나”, “왜 뒤진 경기에서 주장과 에이스를 동시에 지우는 선택을 했나”, “왜 패배 뒤에도 전술적 해답보다 환경과 심리를 먼저 말했나”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다음 경기의 결과와 무관하게 논란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표팀은 선수들의 결연함만으로 월드컵을 통과할 수 없다. 감독의 전술적 책임이 선수들의 정신력보다 먼저 경기장에 나타나야 한다.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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