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에서 세계를 잇겠다는 이재명, 그러나 세계는 아직 연결될 준비가 됐나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한마디로 ‘연결’이었다. 유엔이 인간의 존엄과 미래세대를 위한 국제협력의 장이라는 원점에서 출발해 소외와 배제, 배타와 분절의 세계를 다시 연결하자는 메시지를 전면에 세웠다. 특히 한국이 경험한 K-컬처의 세계적 확산을 국가 간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끌어올린 대목은 흥미롭다. 한국의 문화가 국경을 넘어 공감의 언어가 되었듯, 국가들도 공동의 위기 앞에서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리고 그 연결의 외교적 이름으로 ‘K-Initiative’를 내놓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K-Initiative의 세 축은 ‘글로벌 AI 기본사회’, ‘녹색 대전환’,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위한 연대’다. 모두 국제사회가 직면한 핵심 의제임에는 이견이 크지 않다. AI는 새로운 번영과 동시에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는 기술이고, 기후위기는 어느 한 국가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에너지는 지정학과 공급망의 문제를 넘어 세계인의 생활비와 산업 경쟁력에 직결된다.
따라서 의제 자체는 시대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유엔 총회에서 중요한 것은 의제를 얼마나 많이 제시했느냐보다, 그 의제를 실제로 함께 실행할 국가와 재원, 기술과 제도, 그리고 지속적인 협력망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있다. 특히 기후를 둘러싼 메시지는 국제정치의 현실과 맞물린다. 이 대통령은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한국형 녹색 대전환을 언급하며 탄소중립을 성장과 일자리의 문제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의 국제사회에서 기후정책은 더 이상 환경정책 하나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산업 경쟁력이고 에너지 가격이며 무역장벽이고 국가별 이해관계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정책 방향이 서로 엇갈리는 상황에서 한국이 기후 의제를 국제적 연대의 중심축으로 제시하려면 ‘좋은 가치’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산업이 감당할 비용과 기술적 대안, 그리고 다른 국가가 한국과 함께할 실익까지 보여줘야 한다. 기후를 둘러싼 국제적 공감과 실제 행동 사이에는 여전히 큰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더 역설적인 장면은 AI다. 한국 대통령이 유엔에서 ‘글로벌 AI 기본사회’를 제시한 날, 세계 AI 질서는 이미 미·중을 중심으로 기술·산업·안보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AI는 이제 단순한 산업혁신의 도구가 아니라 반도체, 데이터, 전력, 군사기술, 노동시장, 교육과 복지까지 연결하는 국가 역량의 문제가 됐다. 그런 공간에서 한국이 ‘AI 혜택에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세계’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국제사회가 묻는 다음 질문은 분명하다.
한국이 무엇을 가지고 세계 AI 질서에 기여할 것인가. 이 대통령은 국제기구·다자개발은행·산업계·학계가 참여하는 ‘글로벌 AI 허브’를 제시했지만, 그 구상이 실제 국제 플랫폼으로 작동하려면 기술력뿐 아니라 자금과 표준, 데이터와 인재, 그리고 지속 가능한 국제협력 구조가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호르무즈에서 이 연설의 현실정치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대통령은 호르무즈와 홍해의 해상 봉쇄가 에너지와 물류의 핵심 통로가 무기화될 경우 세계경제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는지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특정 국가를 직접 겨냥하기보다는 국제해협의 자유롭고 안전한 통항이라는 국제법적 원칙을 강조하고, ‘글로벌 공공재를 공급할 역량과 의지를 가진 국가들이 먼저 손을 맞잡자’며 ‘건설적 기여국 연대’를 제안했다. 모든 국가가 하나의 해법에 합의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현실주의적 접근이다. 이는 이란을 직접 비난하는 방식보다 훨씬 넓은 국가들을 협력 테이블에 끌어들일 수 있는 언어이지만, 동시에 실제 항행 안전과 에너지 공급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라는 더 어려운 질문을 남긴다.
결국 이번 유엔 연설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의 역할을 ‘추격자’에서 ‘연결자’로 바꾸려는 시도에 있다. K-컬처에서 출발해 AI와 기후, 에너지로 확장하고, 호르무즈와 홍해의 공급망 위기에서는 이해관계가 맞는 국가부터 협력하자는 구상을 내놓았다. 동시에 한반도 문제에서는 북미대화 재개와 단계적 비핵화, 평화체제 전환을 제시했다. 다만 연결은 선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계가 한국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것과 한국의 제안에 실제로 참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AI와 기후처럼 미·중 경쟁과 산업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분야에서는 한국의 외교적 언어보다 실행 가능한 자산이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이번 연설의 진짜 시험대는 뉴욕의 박수가 아니라 서울로 돌아온 뒤 시작된다.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세계’, ‘세계를 다시 연결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문장은 유엔이라는 공간에서는 아름답지만, 국제정치는 아름다운 문장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AI에는 데이터와 컴퓨팅, 기후에는 산업 전환과 비용, 에너지에는 공급망과 항행 능력이 필요하다. 결국 이재명 정부가 던진 K-Initiative가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는 한국이 얼마나 거창하게 세계를 연결하겠다고 말하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연결할 수 있는 기술·산업·외교적 실행력을 얼마나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유엔에서 세계를 잇겠다고 선언한 대한민국. 이제 세계가 기다리는 것은 선언의 다음 장면, 바로 실행이다.
Socko/Ghost

















![[뒤틀린 야당] 장동혁의 구치소 예언과 ‘영감님’ 전쟁…야당은 드디어 적을 식별했나 [뒤틀린 야당] 장동혁의 구치소 예언과 ‘영감님’ 전쟁…야당은 드디어 적을 식별했나](https://newsvow.com/wp-content/uploads/2026/04/크기변환joongang8-390x220.png)
One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