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S. 엘리엇과 ‘Socko’에서 시작된 AI시대 ‘삶의 정신’ – 비뚤려도 자신을 지키는 삶의 거장, ‘Socko’에게서 배운다
쏘코라는 사람
T. S. 엘리엇에게서 등장한 가상의 인물 쏘코(Socko)라는 사람이 정말 있었을까? 아니다. 역사 속에 ‘쏘코’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한 사람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그 이유는 2016년 「T. S. 엘리엇 연구」에 실린 양병현의 논문「문화 기업가정신: T. S. 엘리엇」을 읽으면서 시작된다. 이 논문에서 흥미롭게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socko. 그리고 이 단어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단순히 ‘대성공’이라는 뜻을 넘어 한 시대의 문화와 부딪히고, 기존의 질서에 질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만들어낸 한 인간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 모습을 한 사람의 이름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 이름이 바로 쏘코(Socko)다.

쏘코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쏘코는 한 사람의 전기에서 태어난 인물이 아니다. 한 사람의 삶과 사상을 읽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정신을 한 인물로 형상화한 가상인물이다. 어느 지점에 T. S. 엘리엇이 있다. 엘리엇은 단순히 시를 쓴 문학가로만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문학을 만들었고, 문학을 비평했으며, 문화의 흐름을 바라보았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가치와 충돌하면서
새로운 문화적 질서를 만들어가는 데 참여했다. 그런 의미에서 양병현의 논문은 엘리엇을 ‘문화 기업가정신’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가는 단순히 돈을 벌어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생각과 가치로 새로운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사람. 쏘코는 바로 그 모습을 오늘날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게 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쏘코는 몇 살인가?
쏘코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이다. 쏘코의 조상들은 몇 있긴하지만… 그는 특정한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상해볼 수는 있다. 아마 쏘코는 아주 오래 산 사람일 것이다. 많은 시대를 지나왔고,
많은 유행을 보았고,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보았으며, 수많은 문화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쏘코는 늙지 않는다. 왜일까? 계속 질문하기 때문이다. 질문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언제나 새롭다. 그래서 쏘코의 나이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는 경험은 오래되었지만 시선은 늘 새로운 사람이다.

쏘코는 처음부터 거장이 아니었다
우리는 흔히 거장을 완성된 사람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쏘코는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도 실패가 있었다. 자신의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시간도 있었고, 사람들에게 오해받은 순간도 있었으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일이 나중에 틀렸음을 깨달은 적도 있었다.
때로는 지나치게 고집을 부렸고, 때로는 세상을 너무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그 흔적들이 지금의 쏘코를 만들었다. 쏘코는 완벽해서 거장이 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다시 생각하고, 다시 해석하고,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에 거장이 된 사람이다.
쏘코에게 ‘socko’란 무엇인가?
영어의 socko는 ‘대히트’, ‘대성공’, ‘매우 인상적인 것’을 의미하는 속어로 사용되었다. 특히 socko performance라는 표현에서는 강렬하고 성공적이며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효과적인 연출이라는 의미가 담긴다. 그런데 쏘코는
이 단어를 단순히 성공의 의미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에게 성공은 얼마나 많이 팔렸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강한 흔적을 남겼는가 이다. 그래서 쏘코는 ‘대박을 터뜨린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무언가를 남긴 사람’이다.

쏘코는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쏘코에게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 그는 옆을 본다. 사람들이 모두 앞으로 달려가면 잠시 멈춰 선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말하면 조용히 묻는다. “정말 그런가?” 쏘코는 반항하기 위해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다르게 보기 위해 질문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쏘코의 비뚤어진 시선이다. 그 비뚤어짐은 삐딱함을 위한 삐딱함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한 각도다.
쏘코에게 풍자는 왜 중요한가?
쏘코는 웃음을 좋아한다. 특히 너무 진지해진 세상을 보면 살짝 웃고 싶어진다. 모두가 성공을 이야기할 때 그는 성공한 사람의 양말을 바라본다. 모두가 위대한 사람을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작은 실수를 찾아본다.
모두가 새로운 기술을 찬양할 때 그는 묻는다. “그래서 인간은 더 행복해졌는가?” 이것이 쏘코의 풍자다. 풍자는 쏘코에게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도구가 아니다.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장치다.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것을 조금 낯설게 만드는 것.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쏘코가 가진 문화적 힘이다.

쏘코는 문화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다
여기에서 ‘문화 기업가정신’이라는 논문의 관점과 쏘코가 연결된다. 쏘코는 문화를 그저 소비하지 않는다. 좋은 것을 보고 “좋다”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묻는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새로운 생각을 만들고, 새로운 표현을 만들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낸다.
쏘코는 문화의 관객이 아니라 문화의 제작자다. 그는 세상이 만들어준 문화를 그대로 신지 않는다. 자신의 발에 맞는 문화를 다시 만들어 신는다. 그래서 쏘코에게 양말은 특별하다. 이제 양말이 등장한다. 왜 하필 양말일까? 양말은 아주 작은 물건이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걷기 위해서는 발을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양말은 우리 발의 움직임에 따라 늘어나고, 구겨지고, 눌리고,
때로는 뒤집힌다. 그런데도 자기 역할을 한다. 나는 이 모습을 보면서 쏘코를 양말 안에 넣어보고 싶었다. 삶에 의해 구겨지고 세상에 의해 눌리고 때로는 뒤집혀도 자신의 본질은 지켜내는 사람. 그 사람이 쏘코다.

쏘코는 구겨져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살면서 수없이 구겨진다. 실패 때문에 구겨지고, 관계 때문에 구겨지고,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구겨지고, 나이 때문에 구겨지고, 사회가 정한 기준 때문에 구겨진다. 때로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가치까지 구겨진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쏘코는 알고 있다. 구겨지는 것과 없어지는 것은 다르다. 양말은 구겨져도 다시 펴진다. 쏘코도 그렇다. 삶이 자신을 쥐어짜도 그 안에 있는 생각과 가치까지 내어주지는 않는다. 쏘코가 지키는 것은 ‘성공’이 아니다. 처음에는 socko가 ‘대성공’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런데 쏘코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성공의 의미가 달라진다.
쏘코가 지키려는 것은 성공 그 자체가 아니다. 자신의 관점이다. 남들이 박수치는 방향이 아니라 자신이 의미 있다고 믿는 방향.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쏘코에게 성공은 “끝까지 자기 생각을 잃지 않고, Dignity(존엄, 품위)를 지키며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는 것”이다.

오늘의 쏘코는 AI 시대에 살고 있다
만약 쏘코가 지금 살아 있다면 AI를 두려워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재미있어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것을 만들어준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곧 질문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지?” AI가 그림을 만들어주고, 글을 만들어주고, 음악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만들어주는 시대.
쏘코는 더 빨리 만드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무엇을 만들 가치가 있는가?”를 묻는다. AI가 답을 만들어주는 시대에 쏘코는 질문을 만든다. AI가 수많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쏘코는 의미를 찾는다. AI가 세상을 빠르게 바꾸는 시대에 쏘코는 인간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묻는다.
쏘코의 미래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쏘코의 미래는 완성되어 있지 않다. 그것이 쏘코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가 오면 다시 질문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다시 배운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자신이 틀렸다면 다시 생각한다.
쏘코는 완성된 인간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지는 인간이다. 결국 쏘코는 누구인가?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쏘코는 누구인가? 실존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허구인 사람도 아니다. 그는 T. S. 엘리엇이라는 한 문화적 인물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발견되는 문화적 실천, 새로운 가치의 창조, 기존 질서에 대한 질문, 풍자와 비판적 시선, 그리고 자신의 시대에 흔적을 남기는 태도를 오늘날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의 인물로 형상화한 사람이다.
그래서 쏘코는 엘리엇 그 자체도 아니고, 엘리엇의 전기도 아니며, 역사 속에 존재했던 사람도 아니다. 엘리엇에게서 영감을 받아 오늘의 시대에 다시 태어난 가상의 인물이다. 그리고 우리는 쏘코를 양말 안에 넣는다. 왜일까요?
거대한 기념비 위에 세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낮은 곳에 두기 위해서입니다. 발밑에. 우리의 일상 속에. 우리가 매일 걷는 길 위에.
쏘코는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매일 자기 발로 걸어가는 인간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삶이 그를 구기면 그 구김까지 품습니다. 삶이 그를 쥐어짜면 그 흔적까지 간직합니다. 시대가 그를 뒤집어놓으면 다시 자신의 방향을 찾습니다. 그러면서도 끝내 하나는 놓지 않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믿고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

이것이 우리가 만들고 싶은 인간 ‘쏘코(Socko)다
쏘코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성공만 한 사람도 아니다. 늘 옳은 사람도 아니다. 조금 고집스럽고, 조금 비뚤어졌고,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세상과 부딪힌다. 하지만 다시 생각한다. 다시 일어난다. 다시 만든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그래서 쏘코는 ‘대성공’을 뜻하는 오래된 단어에서 태어났지만, 오늘날에는 ‘삶을 끝까지 자기답게 살아내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를 양말 안에 넣어두는 것도 그래서이다. 삶에 구겨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겨져도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세상과 다르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믿는 가치를 세상에 남기기 위해서.
그 사람이 바로 쏘코다. 그리고 어쩌면 쏘코는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안에 아직 살아 있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끝까지 만들어가는 사람이고 싶은 이름’이다..
SOCKO.
- ‘대성공’에서 태어나
- ‘문화적 상상력’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
- ‘구겨져도 지워지지 않는 삶의 흔적을 가진 사람’.
- ‘오늘도 자신의 발로 세상을 걸어가는 사람’.
참고자료
- 양병현(2016), 「문화 기업가정신: T. S. 엘리엇」, 『T. S. 엘리엇 연구』
- T. S. Eliot 관련 문학·문화 연구 자료
- socko — 영어 속어로 ‘대히트, 대성공, 매우 인상적인 것’을 의미하는 용례
- socko performance — 강렬하고 성공적이며 인상적인 공연·연출을 의미하는 표현
- 사용자가 제공한 교보문고 학술자료: 「문화 기업가정신: T. S. 엘리엇」 논문 원문 보기
원문보기 : T. S. 엘리엇과 ‘Socko’에서 시작된 AI시대 ‘삶의 정신’ – 비뚤려도 자신을 지키는 삶의 거장, ‘Socko’에게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