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빠” 한마디 뒤 8개월…박지향의 우회적 반격, 李대통령에게 던진 ‘안민’의 경고
지난해 12월 정부 업무보고에서 나온 장면은 지금 다시 보면 묘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빠 논쟁”을 꺼내고 “환단고기는 문헌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박 이사장은 재야사학자들의 주장보다 전문 연구자들의 견해가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답했고, 이후 교육부는 사흘 만에 동북아역사재단 조사에 착수했다. 물론 조사와 직무정지가 대통령 발언에 대한 보복이었다고 법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교육부는 별도의 예산 남용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박 이사장이 직무정지 후 복귀하면서 내놓은 말은 정치권에 꽤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그는 “대놓고 표적감사였다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게 판단하고 자신도 그렇게 의심한다고 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다고 기관장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더 인상적인 것은 박지향이 직접 ‘보복’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처를 받은 사람의 가장 강한 반격은 때로 고함이 아니라 우회법이다. “표적감사라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다”는 문장 뒤에 이미 자신의 판단이 들어 있고, “국가의 지도자들은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최고”라며 “사익을 위해 안민을 흔들지는 말자”고 한 대목은 사실상 정치 지도자를 향한 공개적인 충고에 가깝다. 특히 박 이사장은 올해 12월까지 임기를 마치겠다고 했다. 쫓겨나는 사람의 마지막 변명이 아니라, 법원의 문턱을 넘어 다시 돌아온 기관장의 메시지라는 점에서 무게가 달라진다.
여기서 환단고기 논란을 빼놓을 수 없다. 환단고기는 삼성기·단군세기·북부여기·태백일사 등을 묶은 책으로, 한민족의 고대사가 광범위한 동아시아와 만주 일대를 지배했다는 서사를 담고 있지만, 한국의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20세기에 만들어진 위서 또는 유사역사학적 자료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이를 우리 고대사의 잃어버린 기록으로 보는 비주류 진영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환빠’라는 말 자체가 학술적 용어가 아니라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사람을 비꼬는 정치·인터넷 용어가 됐다. 대통령이 이런 민감한 용어를 공식 업무보고 자리에서 꺼내면서 학술적 논쟁이 순식간에 정치적 논쟁으로 변한 것이 이번 사태의 출발점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재명 대통령의 입에서 ‘환빠’라는 말이 그렇게 빨리 튀어나왔느냐는 질문도 가능하다. 여기에는 대통령의 개인적 역사관을 단정할 근거는 없다. 대통령실도 당시 이 대통령이 환단고기 관련 주장에 동의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다만 이 대통령에게는 복잡한 사안도 현장에서 바로 질문하고, 상대방에게 답을 요구하며, 때로는 전문 영역의 세부 쟁점까지 파고드는 직접적이고 즉흥적인 화법이 있다는 평가가 꾸준히 있어 왔다.
그래서 비판자들은 이를 두고 “깊이 연구한 전문가처럼 말하기보다 여기저기서 들은 지식을 빠르게 연결해 아는 체한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것 역시 정치적 평가일 뿐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바로 그런 스타일 때문에 전문가 앞에서 ‘환빠’ 같은 비속어성 정치 용어가 먼저 튀어나온 것 아니냐는 냉소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질문이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대통령은 질문하고 잊을 수 있지만, 기관장은 그 질문 이후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한다. 이번 사례에서도 업무보고 사흘 뒤 교육부가 재단 조사에 들어갔고, 올해 7월 29일 박 이사장은 직무정지를 통보받았다. 이후 서울행정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박 이사장은 8월 24일 업무에 복귀했다. 이 시간표만 놓고 대통령 발언과 직무정지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대통령의 질문 → 며칠 뒤 조사 → 수개월 뒤 직무정지 → 법원의 제동 → 기관장 복귀”라는 흐름 자체가 국민에게 의문을 던지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동북아역사재단은 정권의 역사관을 맞추는 기관이 아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영토 문제 등에 대응하고 동북아 역사 연구를 수행하는 국가 연구기관이다. 그렇다면 이사장이 대통령과 다른 학술적 견해를 밝혔다고 해서 정치적 충성 여부를 평가하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학자에게 질문할 자유가 있다면, 학자에게는 대통령의 질문에 동의하지 않을 자유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학문의 독립이고 공공기관의 전문성이다. 대통령이 “환단고기는 문헌 아니에요?”라고 물었을 때 이사장이 “전문 연구자들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답한 것 자체는, 적어도 공개된 대화만 놓고 보면 학술적 판단을 밝힌 행위다.
결국 이번 사건에서 가장 씁쓸한 풍자는 ‘환빠’라는 한 단어보다 그 단어가 지나간 뒤 벌어진 일에 있다. 대통령은 역사학 논쟁에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장관은 기관을 감사할 수도 있다. 기관장은 직무정지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권력의 작동이 끝난 자리에서 법원이 다시 기관장의 복귀를 허용했다면, 이제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박지향 이사장이 환빠냐 아니냐가 아니다. 대통령에게 다른 답을 한 학자가 국가기관에서 끝까지 자신의 임기를 수행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박 이사장은 “사익을 위해 안민을 흔들지 말자”고 했다. 정치적 보복을 단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보다 더 직접적인 경고를 하기는 어렵다. 역사를 둘러싼 한 번의 가벼운 질문이 국가기관의 무거운 인사 문제로 번졌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누가 환빠인가’를 가르는 정치적 조롱이 아니라 권력이 학문과 행정의 영역을 어디까지 건드릴 수 있는지를 묻는 냉정한 자성이다.
참고한 자료
- TV조선 — 박지향 이사장 복귀 및 직접 인터뷰
박 이사장이 “대놓고 표적감사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도 그렇게 의심하고 있다고 밝혔고, 정권 교체에 따른 기관장 공격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사익을 위해 안민을 흔들지는 말자”고 발언하며 올해 12월까지 임기를 완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TV조선 관련 보도 - 조선일보 — 박지향 이사장 업무 복귀
교육부의 직무정지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되면서 박 이사장이 26일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는 보도다. 조선일보 관련 보도 - TV조선 — 직무정지와 법원 결정
교육부가 예산 남용을 이유로 직무정지 처분을 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박 이사장이 복귀했다는 경과를 확인했다. 해당 보도에서도 업무보고와 교육부 조사 사이의 시간적 선후가 함께 다뤄졌습니다. TV조선 복귀 보도 - 서울행정법원 결정 관련 보도
법원은 교육부가 박 이사장의 중징계 사유를 충분히 소명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교육부는 2024년 울릉도·독도 답사 과정에서 특정 예산을 사용한 점 등을 문제 삼았다. - 이재명 대통령의 ‘환빠·환단고기’ 질문
2025년 12월 12일 정부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박지향 이사장에게 ‘환빠’ 논쟁을 질문하고 환단고기에 대해 물었던 사실이 보도됐다. - 대통령실의 해명
당시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이 환단고기 주장에 동의하거나 관련 연구를 지시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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