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끝났고, 환상도 끝났다 — 김어준은 이재명의 루비콘을 건넜나
정치권에서 꽤 묘한 장면이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엄호해왔던 김어준이 28일 마침내 “사랑의 시기는 끝났다”고 말했다. 표현만 놓고 보면 단순한 비판 한마디가 아니다. 김어준 스스로 과거의 관계를 ‘내 몸처럼, 내 몸보다 더 걱정하고 돌보던 시절’이라고 규정한 뒤 이제는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다만 그는 곧바로 “무관심하거나 미워하고 증오하는 관계가 아니라 우정의 관계”를 이야기했고, 이재명 대통령과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이 할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따라서 이것은 절교 선언이라기보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정치에서 비판적 동지의 정치로 관계를 재설정한 선언에 가깝다. 그렇다면 김어준이 왜 이 시점에서 이재명에게 등을 돌린 것처럼 보이는가. 핵심은 지난 18일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이다.
이 대통령은 여권 내부의 혐오와 배제 논란을 두고 “서로 혐오의 언어를 주고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갈등을 봉합하려 했다. 그런데 김어준이 받아들인 장면은 달랐다. 자신과 김어준·유시민·정청래·조국 등을 겨냥한 이른바 ‘문조털래유’ 식 공격을 받은 쪽에서는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느끼는데, 대통령이 이를 사실상 쌍방의 문제처럼 표현했다는 것이다.
김어준에게는 바로 그 지점이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던 셈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김어준이 이 대통령을 단순히 비판한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했는가”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는 점이다. 그는 친명을 자처하는 강성 세력을 대통령이 쉽게 버릴 수 없다는 현실적 사정까지 인정하면서도,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다른 방식으로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계산과 진영의 현실을 이해하면서도 대통령의 메시지가 그 계산 뒤에 숨으면 안 된다는 주문이다. 결국 김어준이 문제 삼은 것은 이재명의 노선 자체보다 모호한 언어와 애매한 봉합 방식이다. 대통령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국민에게 자신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는 요구다. 여기서 ‘김어준의 짝사랑’이라는 정치적 은유가 등장한다. 짝사랑은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지보다 내가 상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김어준이 이재명을 향해 보여온 정치적 신뢰 역시 일정 부분 그런 비대칭적 관계였을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이재명은 더 이상 특정 진영의 후보나 운동권적 상징에 머물 수 없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는 지지자와 반대자, 구주류와 신주류, 여권과 야권을 모두 상대해야 하는 국가통치의 책임이 붙는다. 김어준이 이번에 마주한 것은 바로 그 ‘정치인 이재명’과 ‘대통령 이재명’ 사이의 간극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발언을 ‘김어준이 이재명의 적이 됐다’고 읽는 것 역시 너무 단순하다. 오히려 그는 관계를 끊겠다는 대신 관계의 성격을 바꾸겠다고 했다. “사랑”에서 “우정”으로, 맹목적 엄호에서 쓴소리로, 대신 싸워주는 관계에서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관계로 이동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김어준 자신에게도 하나의 정치적 선택이다.
과거처럼 대통령의 모든 행동을 해석하고 방어하는 역할보다, 대통령에게 “그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는 위치를 택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역시 이를 ‘전폭적 지지’에서 ‘비판적 지지’로의 이동으로 해석했다. 더 냉혹한 대목은 김어준이 이 대통령에게 “성공했던 방식만으로 앞으로도 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는 데 있다. 그는 이 대통령의 신중함이 때로는 타이밍과 여론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고, 개혁의 의도가 다른 것이 아니라면 대통령 본인이 자신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최근 이 대통령의 X 인용 논란까지 연결된다. 김어준은 정치인이 온라인 알고리즘에 갇힐 수 있다며 계정과 피드를 점검하라고 주장했다. 이 부분은 그의 주장 자체를 사실로 확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통령 주변의 정보환경과 소통 방식에 대한 불신이 기존 지지층 내부에서도 생기고 있다는 신호로 읽을 여지는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의 본질은 ‘김어준이 이재명을 버렸느냐’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재명이라는 정치적 환상과 이재명이라는 통치 현실이 이제 서로 다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데 있다. 후보 시절의 이재명에게는 김어준의 강력한 엄호가 정치적 자산이었지만, 대통령이 된 이재명에게는 김어준조차 하나의 비판적 목소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김어준 역시 그것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니 ‘루비콘 강을 건넌 김어준’이라는 표현은 아직 절연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서늘하다. 사랑은 끝났지만 동지는 남았다. 환상은 걷혔지만 현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재명에게도, 김어준에게도 가장 불편한 관계가 바로 그런 관계일 것이다. 어쩌면 김어준에게 남은 것은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를 바라보는 묘한 상실감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한 식구라고 믿었고, 적어도 같은 둥지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지라고 생각했지만, 대통령이 된 이재명은 이제 더 넓은 정치의 둥지에서 전혀 다른 식구들을 품어야 하는 자리에 서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묘하게 뒤집힌다. 김어준이 그리워하는 것은 정말 이재명이라는 사람인가, 아니면 자신이 믿었던 ‘우리 편 이재명’이라는 정치적 이미지인가.
이재명 역시 이제 누군가의 둥지에 머무는 정치인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둥지의 주인이 됐다. 식구였던가, 동지였던가, 아니면 처음부터 서로 다른 둥지에서 잠시 만났던 정치적 동반자였던가. 사랑이 끝났다는 김어준의 선언은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새가 둥지를 떠난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그 둥지가 누구의 둥지였는지 이제야 알게 된 것인지.
참고문헌
- 한국일보, 2026.09.28, 「李 기자회견 열흘 뒤… 김어준 “사랑의 시기는 끝났다” 선언」
— 김어준의 ‘사랑의 시기’ 종료 발언과 이재명 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한 비판, ‘비판적 지지’ 전환 맥락. - 한국경제, 2026.09.28, 「김어준 “‘멸칭’ 일방적 피해인데 쌍방 과실처럼…李대통령 회견, 이걸론 부족”」
— 김어준이 ‘문조털래유’ 논란을 두고 이 대통령의 표현을 ‘쌍방 과실’처럼 받아들였다고 비판한 내용. - 뉴데일리, 2026.09.28, 「김어준 “李 대통령 향한 ‘사랑의 시기’ 끝났다 … 문조털래유 공격, 알고리즘 갇힌 탓”」
— 김어준이 이재명 대통령과의 관계를 ‘우정·동지적 관계’로 재설정하겠다고 밝힌 내용. - 문화일보, 2026.09.28, 「김어준, 李대통령에 “사랑의 시기는 끝났다”」
— 김어준 발언과 이재명 대통령 기자회견 이후 여권 내부 갈등의 맥락을 보도.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6.09.18, 「이 대통령 “더 낮은 자세로 ‘민생·개혁·통합 대통령’ 되도록 최선 다할 것”」
— 이재명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민생·개혁·통합 대통령’을 강조한 공식 기록. - 연합뉴스, 2026.09.18, 「파병·대미투자 외교안보 난제 앞 고민 드러낸 李대통령」
— 같은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이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원칙을 강조하면서 선택의 여지를 남긴 것으로 보도된 내용.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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