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아이들의 ‘지능 퇴보’ 공포? 대치동이 리터러시 학원으로 몰리는 진짜 이유
대치동에서는 지금 두 개의 AI 교육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대치동을 들여다보면 묘한 장면이 포착된다. 한쪽에서는 AI를 배우러 간다. 챗GPT로 생활기록부를 어떻게 정리하는지, 탐구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하는지, 프롬프트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배운다.
2026년 2월 대치동에서 열린 AI 입시 설명회에서도 생활기록부와 탐구보고서 등에 AI를 활용하는 방법이 소개됐고, 학부모들의 관심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도됐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는 정반대의 움직임이 나타난다.
책을 읽으라고 한다. 신문을 읽고, 긴 글을 읽고, 토론하고, 직접 쓰라고 한다. 2025년에는 아예 《대치동 1% 아이들은 종이신문을 읽습니다》라는 제목의 책까지 등장했다. 책은 AI와 스마트폰 시대에 긴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AI를 더 잘 쓰려고 학원에 가면서, 동시에 AI와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러 학원에 간다. 바로 이 지점이 지금 교육시장의 긴장감을 보여준다. 문제는 ‘AI를 쓰느냐’가 아니다. 사실 AI를 사용하는 것 자체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미 학생들의 학습 과정에 생성형 AI가 들어왔다. OECD는 2026년 교육전망에서 생성형 AI가 학생의 과제 수행 결과를 높여줄 수 있지만, 그 결과가 반드시 실제 학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특히 학생이 사고해야 할 과정을 일반적인 AI에게 그대로 맡기면 결과물은 좋아질 수 있지만, AI를 사용할 수 없는 시험 상황에서는 그 효과가 사라지거나 오히려 역전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소개됐다. 여기서 대치동 학부모가 진짜로 걱정하는 문제를 볼 수 있다. 아이의 성적이 당장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적과 결과물은 좋아 보이는데, 아이에게 실제 실력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훨씬 무서운 문제다. AI는 ‘못하는 아이’를 감춰줄 수도 있다. 예전에는 아이가 글을 못 쓰면 티가 났다.
- 문장이 엉성했다.
- 어휘가 부족했다.
- 논리가 끊겼다.
-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면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아이의 생각이 부족해도 AI에게 부탁하면 꽤 그럴듯한 글이 나온다.
- 자료를 찾지 못해도 AI가 정리해준다.
- 문장을 만들지 못해도 AI가 만들어준다.
- 영어가 부족해도 번역해준다.
- 심지어 “이 주장에 대한 반론까지 작성해줘”라고 하면 반론도 만들어준다.
즉, 아이의 능력 부족과 AI의 능력이 섞여버린다.

교사와 부모 입장에서는 더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 이 글을 정말 아이가 쓴 것인가?
- 이 주제를 정말 이해한 것인가?
- 이 주장을 정말 자기 생각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 아니면 AI가 만들어준 결과물을 제출한 것인가?
그래서 교육의 경쟁 단위가 바뀌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결과물이 중요했다. “무엇을 제출했는가?” 하지만 AI 시대에는 질문이 하나 더 붙는다. “그 결과물을 만들기 전에 무엇을 생각했는가?” 이 차이는 상당히 크다.
예를 들어 두 학생이 똑같이 90점짜리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하자. 한 학생은 AI에게 주제를 입력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목차를 만들고 글까지 완성했다. 다른 학생은 먼저 자신의 가설을 세우고 자료를 찾아본 뒤 AI에게 반론을 요청하고, AI의 오류를 수정하면서 최종 보고서를 만들었다.
완성된 보고서만 보면 둘의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발표를 시켜보면 달라질 수 있다.
- “왜 이 자료를 선택했니?”
- “이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은 무엇일까?”
- “AI가 제시한 내용 중 무엇을 수정했니?”
- “네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 지금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니?”
이 질문에 답하는 순간 차이가 드러난다. AI 시대의 교육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의 증거다. 그래서 ‘문해력’이 다시 비싸지고 있다 문해력이라는 단어가 다시 교육시장에서 힘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해력은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능력이 아니다.
- 긴 문장을 읽고,
- 맥락을 파악하고,
- 주장을 찾아내고,
- 근거를 구별하고,
-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 서로 다른 의견을 비교하고,
-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있어야 AI가 내놓은 답도 평가할 수 있다. AI가 “이것이 정답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왜?” 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 근거가 정말 충분한가?”

OECD와 유럽연합이 2026년 발표한 초·중등 AI 리터러시 프레임워크 역시 AI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AI의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책임 있게 활용하는 능력을 핵심 요소로 제시한다. 따라서 AI 시대의 문해력은 과거와 조금 다르다.
예전에는 ‘사람이 쓴 글을 읽는 능력’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사람과 AI가 만들어낸 정보를 읽고 판단하는 능력’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런데 대치동의 긴장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더 중요한 변화가 있다. 입시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2028학년도 대입부터 국어·수학·사회·과학의 선택과목 없는 통합형 수능과 고교 내신 5등급 체제가 적용된다. 교육부는 당시 개편 방향에서 내신 논·서술형 평가를 확대해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높이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 변화와 AI의 확산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 학부모 입장에서는 새로운 불안이 생긴다. 예전에는 “우리 아이가 문제를 얼마나 많이 풀었는가?”가 중요했다. 이제는 여기에 “우리 아이가 AI가 만든 답을 구별할 수 있는가?” “자기 생각을 설명할 수 있는가?” “자료를 읽고 자신의 논리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추가된다.
즉, AI 때문에 공부가 쉬워진 것이 아니라 ‘실력을 증명하는 방법’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아이는 AI를 못 쓰는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AI 시대에 학부모가 가장 걱정해야 할 아이를 굳이 하나 꼽는다면, AI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더 애매한 경우가 있다. AI는 아주 잘 쓰는데, 자기 생각은 없는 아이. 검색도 잘한다. 프롬프트도 잘 만든다. 글도 잘 만든다. 발표자료도 잘 만든다. 그런데 AI를 끄고 물으면 대답이 달라진다.
- “왜 그렇게 생각했어?”
- “그 근거는 어디 있어?”
- “그 자료가 틀렸다면?”
- “반대쪽에서는 어떻게 주장할까?”
이 질문 앞에서 멈춘다면, AI 활용 능력과 학습 능력을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OECD도 바로 이 문제를 지적한다. 일반 목적의 생성형 AI는 과제 수행 자체를 향상시킬 수 있지만, 교육적 설계 없이 인지적 작업을 외주화하면 실제 학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학습 목표에 맞게 설계된 AI 활용은 비판적 사고와 논증 능력 등을 지원할 수 있다.

반대로 AI를 ‘잘 쓰는 아이’는 이렇게 다르다. AI를 사용하지 않는 아이가 좋은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하는 순서다. 예를 들어 같은 독서 과제를 한다고 해보자.
A 학생 : 책을 읽는다.
- → AI에게 요약을 부탁한다.
- → AI에게 독후감을 부탁한다.
- → 제출한다.
B 학생: 책을 읽는다.
- → 자신의 생각을 먼저 적는다.
- →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표시한다.
- → AI에게 질문한다.
- → AI에게 자신의 생각에 대한 반론을 요청한다.
- → AI의 답에서 오류를 찾는다.
- → 마지막 글은 자신의 언어로 쓴다.
두 학생 모두 AI를 사용했다. 하지만 학습의 주인은 다르다. 이 차이가 앞으로 교육에서 점점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문해력 학원’의 진짜 상품은 책이 아닐 수 있다. 대치동에서 문해력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것은 사실 책 읽기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 집중해서 읽는 시간
-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 선생님에게 질문받는 시간
- 자기 생각을 말하는 시간
- 다른 사람의 반론을 듣는 시간
- 자신의 생각을 다시 쓰는 시간
이 포함돼 있다. 2023년에도 대치동에서 문해력을 전면에 내건 국어학원과 독서논술 수업에 초·중등 학생이 몰리는 현상이 보도된 바 있다. 그리고 2026년 현재 이 현상은 AI라는 새로운 변수와 만났다. 이제 부모가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단순히 “책을 많이 읽게 해주세요.”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우리 아이가 AI가 만든 답을 자기 생각이라고 착각하지 않게 해주세요.”에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치동의 진짜 공포는 ‘지능 퇴보’보다 ‘실력의 착시’다. 그래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정말 아이들의 지능이 퇴보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 자료만으로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금 더 현실적인 문제는 이것이다.
AI가 아이의 부족한 능력을 너무 그럴듯하게 감춰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 부모도, 교사도, 아이 자신도 “나는 잘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지능 퇴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교육적으로는 오히려 학습 과정과 결과물 사이의 간격이 커지는 문제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앞으로의 교육은 ‘무엇을 만들었는가’를 넘어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보게 된다. AI가 글을 잘 쓰게 될수록 글쓰기 교육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반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AI가 글을 너무 잘 쓰기 때문에, “이 글을 누가 썼는가?”보다 “이 글을 만들기까지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쳤는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학교와 학원에서 중요해질 수 있는 것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초기 생각 → 질문 → 자료 선택 → AI 활용 → 검증 → 수정 → 최종 결과물]…이라는 과정의 기록이다. 이것은 단순한 문해력 교육과도 다르다.
AI 시대에는 ‘사고의 흔적’을 남기는 교육이 필요해진다. 아이에게 AI를 빼앗을 것인가, 생각을 되찾아줄 것인가. 결국 부모가 선택해야 할 것은 AI를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AI는 아이들의 생활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더 현실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 “AI에게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
- 요약을 맡길 것인가.
- 초안을 맡길 것인가.
- 자료 검색을 맡길 것인가.
- 반론을 맡길 것인가.
- 아니면 생각 자체를 맡길 것인가.
경계선은 여기에 있다. AI가 아이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AI가 아이가 반드시 해봐야 할 사고 경험까지 대신하는 순간, 교육의 문제가 시작된다. 그래서 대치동에서 벌어지는 문해력 열풍을 단순히 “요즘 아이들이 책을 안 읽어서 그렇다.”라고 해석하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지금 교육시장이 불안해하는 것은 책 한 권을 덜 읽는 문제가 아니다. AI가 너무 잘해서 아이의 실력을 가려버릴 수 있다는 문제다. 그리고 앞으로 입시와 교육이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새로운 경쟁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AI 시대의 가장 비싼 사교육은 AI를 가르치는 학원이 아니라, AI가 있어도 자기 생각을 잃지 않도록 만드는 교육이 될지도 모른다. 대치동이 문해력으로 다시 돌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I가 답을 만드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오히려 ‘답을 만들기 전의 인간’을 가르쳐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참고자료
- OECD, 《OECD Digital Education Outlook 2026: Exploring Effective Uses of Generative AI in Education》 — 생성형 AI의 교육적 활용과 인지적 외주화, 학습효과 분석.
- OECD·European Commission, 《Empowering Learners for the Age of AI》 — 초·중등 AI 리터러시 프레임워크.
- OECD, PISA 2025 Results, Volume I — 학생의 AI 활용 및 학업·디지털 환경 관련 최신 국제자료.
- OECD, “What should teachers teach and students learn in a future of powerful AI?” — AI 시대 교육과 역량의 변화.
- UNESCO, Guidance for Generative AI in Education and Research — 인간 중심 생성형 AI 교육 원칙.
- Tian & Zhang, “Learners’ AI dependence and critical thinking”, Acta Psychologica, 2025 — AI 의존과 비판적 사고의 관계 연구.
- Hong et al., “Cognitive Offload Instruction with Generative AI”, 2025 — 교육적으로 설계된 AI 활용과 비판적 사고 관련 연구.
- 《대치동 1% 아이들은 종이신문을 읽습니다》 — AI 시대 대치동 문해력 교육에 대한 국내 사례.
- 중앙일보, “수학문제 이해 못해 논술학원으로…강남 덮친 ‘지능 퇴보’ 공포”, 2026.9.20 — 최근 대치동 학원가의 사고력·문해력 사교육 현상 보도.
원문보기 : AI 시대, 아이들의 ‘지능 퇴보’ 공포? 대치동이 리터러시 학원으로 몰리는 진짜 이유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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