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분석] 김용은 왜 판사보다 카메라를 택했나… 유튜브로 옮겨붙은 대장동 2라운드
반대신문이 기다리는 법정 대신 우호적 플랫폼을 택한 김용
대장동 재판은 이제 증거의 다툼을 넘어 서사의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정치가 사법의 문턱을 넘는 순간, 진실은 종종 두 개의 무대 위에서 동시에 재판을 받는다. 하나는 판사와 검사, 변호인과 증인이 서 있는 법정이고, 다른 하나는 조명과 카메라, 댓글과 조회수가 지배하는 플랫폼이다. 최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유튜브 출연은 바로 그 두 번째 무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법정에서 이어지는 검찰의 주장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의 구체적 진술에 맞서, 우호적인 청중이 기다리는 플랫폼으로 이동해 다시 한번 “돈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결백을 강조했다. 이것은 단순한 해명이 아니라, 사법적 공방을 여론전으로 전환하려는 정치적 선택으로 읽힌다.
법정은 잔인하다. 말은 기록으로 남고, 진술은 반대신문을 거치며, 감정은 증거 앞에서 잘게 쪼개진다. 반면 유튜브는 다르다. 유튜브에서는 질문의 방향도, 대화의 온도도, 시청자의 정서도 훨씬 유리하게 조정할 수 있다. 피고인의 지위로 설명해야 하는 사람도, 그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억울한 피해자’ 혹은 ‘정치적 희생양’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김용의 출연이 주목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법정에서의 방어가 아니라, 지지층과 공감층을 향한 서사적 복권을 시도한 것이다. 다시 말해 “혐의를 부인한다”는 차원을 넘어, “나는 조작된 프레임의 피해자”라는 감정적 구조를 대중 앞에 세우려는 움직임이다.
이 장면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맞은편에 서 있는 유동규의 화법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유동규는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기억의 세부를 앞세우는 인물로 소비돼 왔다. 장소, 시점, 전달 정황 등 구체성을 가진 진술은 대중에게 묘한 현실감을 부여한다. 물론 구체성이 곧 진실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심리적 효과만 놓고 보면, 세부가 많은 진술은 언제나 추상적 부인보다 강한 인상을 남긴다. 바로 그래서 김용의 유튜브 출연은 더욱 의미를 가진다. 법정 안에서 세부 진술과 맞붙는 대신, 그는 법정 밖에서 진술의 구체성보다 검찰 프레임의 부당함을 더 크게 부각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한쪽이 기억의 정밀함으로 압박한다면, 다른 한쪽은 그 기억 자체가 오염됐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유튜브가 결코 중립적인 피난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플랫폼은 사실을 검증하는 공간이기보다, 이미 형성된 신념을 강화하는 공간에 가깝다. 그래서 이곳의 해명은 종종 법적 설득보다 정치적 결집에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김용의 출연이 설령 법정의 판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도, 지지층에게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억울함이 있다”, “검찰 서사만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심어줄 수 있다. 정치에서 이것은 결코 작은 자산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판결문 한 줄보다 강한 정서적 방패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든 혐의를 부인하고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공적 인물이 법정의 다툼과 별개로 플랫폼을 통해 여론 재판을 병행할 때, 대중은 점점 더 “무엇이 사실인가”보다 “누가 더 설득력 있는 무대를 가졌는가”에 끌려가게 된다. 이는 한국 정치가 오랫동안 반복해온 병리와도 맞닿아 있다. 판결은 늦고 어렵고 복잡하지만, 유튜브의 판단은 빠르고 단순하며 감정적으로 확실하다. 그래서 정치인과 권력 주변 인물들은 점점 더 재판부보다 카메라 앞에서 먼저 싸우려 한다. 법정이 진실을 가리는 곳이라면, 플랫폼은 진실을 소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김용의 출연은 한 사람의 해명 장면을 넘어선다. 그것은 한국 정치가 얼마나 깊이 플랫폼형 사법정치로 이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혐의의 진실 여부는 결국 공판 기록과 판결문이 가려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생명력은 이미 그 전에 유튜브 댓글창과 클립 영상에서 상당 부분 결정된다. 이 괴리가 커질수록, 법은 늦고 여론은 빠른 사회가 된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는 종종 판결보다 편집이, 증거보다 서사가, 진실보다 무대가 앞서게 된다.
김용의 유튜브 출연을 그저 “결백 호소”라고만 보면 절반만 본 셈이다. 나머지 절반은 더 냉정하다. 그는 지금 단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법정의 시간표와는 다른 정치의 시간표 위에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이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의 총량이 아니라, 대중이 어느 무대를 더 믿느냐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대장동 재판의 또 다른 전선은 법원 청사가 아니라 플랫폼 안에 열려 있다. 질문은 단순하다. 최종적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증거일까, 아니면 이야기일까. 한국 정치가 보여준 지난 몇 년의 풍경은, 안타깝게도 후자에 더 가깝다.
참고문헌
- 김용 관련 공판 보도 및 법원 판결문, 서울중앙지법·상급심 자료
- 유동규 관련 법정 증언 보도, 주요 언론사 공판 기사
- 김어준 유튜브 채널 내 김용 출연 방송분
- 정치커뮤니케이션 및 플랫폼 정치 관련 연구 자료
- 한국 사회의 사법정치·미디어정치 관련 학술 논문 및 시사 분석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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