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사화에서 내란 사화까지…김태규가 직격한 ‘사법사화’, 판결문은 어쩌다 정치가 되었나
김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8월 28일 사법부를 향해 던진 ‘사화’라는 표현은 그냥 지나칠 말이 아니다. 사화(士禍)란 본래 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반대 세력을 정치적으로 제거했던 조선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오늘날 김태규가 말하는 ‘사법사화’는 정치인이 직접 상대 정치인을 잡아가는 장면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청산의 프레임이 검찰의 수사와 특검의 기소를 거쳐 법원의 판결로 완성되는 과정, 바로 그 지점을 겨냥한 표현으로 읽어야 한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사건들이든, 지금의 내란 사건들이든 최종적으로 사람의 정치적 생명을 끊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판결문이다. 그래서 사법사화가 실제 존재하는지를 따지려면 법관의 말보다 누가 기소됐고, 누가 구형했으며, 어떤 재판부가 어떤 논리와 형량으로 판결했는가를 펼쳐봐야 한다.
더 묘한 것은 김태규 자신이다. 그는 법관 출신 정치인이다. 2007년부터 2021년까지 판사로 일했고, 울산지법 부장판사 시절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쓴소리 판사’였다. 그런데 이제 그는 법복을 벗고 국회의원이 됐다. 그렇다면 8월 28일 그의 ‘사법사화’ 발언은 단순한 사법부 비판을 넘어선다.
오히려 “사법부가 정치화됐다면 나 역시 정치의 방식으로 그것과 싸울 수밖에 없다”는 선언에 가깝다. 법관이 정치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직 판사가, 정치인이 된 뒤 사법부의 정치화를 정치의 언어로 폭로하고 정치의 힘으로 견제하겠다고 나선 역설이다. 결국 김태규가 말하는 사법사화가 사실이라면, 그를 법정 밖 정치로 밀어낸 것 역시 사법부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뿌리를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비롯한 법관 연구모임의 영향력과 사법부 정치화 논란은 이미 상당한 사회적 논쟁이 됐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인사청문회에서도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성격을 둘러싼 이념·정치 편향 논쟁이 등장했다.
물론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판사의 판결을 정치판결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실제 판결은 판결문으로 판단해야 한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특정 연구회 출신 법관들이 주요 정치 사건의 재판부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면, 그 자체를 죄악시할 것이 아니라 재판부 구성과 판결의 법리, 형량, 유사 사건과의 형평성에 일정한 패턴이 존재하는지 공개적으로 검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란 재판은 바로 그 검증대다. 김현태 전 707특임단장은 국회에 병력을 투입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내란특검은 그에게 징역 18년을 구형했다. 이후 1심에서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한편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사건에서도 특검은 최고형인 사형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결심공판을 진행했고, 법원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물론 내란죄가 헌정질서를 공격하는 중대한 범죄라면 무거운 형량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죄가 무거워서 중형이 나온 것인지, 정치적 프레임이 수사 단계에서부터 판결 단계까지 일관되게 관철된 결과인지, 두 가지는 법적으로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김태규가 말하는 ‘사법사화’의 가장 날카로운 부분이 등장한다. 정치권이 ‘내란’이라고 부르는 것과 법원이 ‘내란죄’를 인정하는 것은 원래 다른 단계여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의 언어가 특검의 공소장으로 들어가고, 특검의 논리가 구형으로 이어지고, 법원이 같은 사건을 심리해 중형을 선고한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컨베이어벨트처럼 보일 수 있다.
더구나 현재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조성현 전 육군 대령 등의 내란 관련 재판도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8-2부가 홍장원·조태용 사건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다음 달 30일 열기로 했다.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 않은 사람까지 유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어떤 재판부가 어떤 증거와 법리를 통해 판단하는지는 사법사화 논쟁의 가장 중요한 시험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흔히 말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표현도 그대로 사실처럼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검증 가설로 바꿔볼 필요가 있다. 특검 검사들이 특정 정치적 프레임을 공유하고, 그 프레임에 따라 중형을 구형하며, 법원이 반복적으로 같은 방향의 중형을 선고한다면 정말 우연의 연속인지 아니면 구조적인 편향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공소장과 구형문, 판결문을 나란히 놓아보면 된다.
특검은 어떤 사실을 ‘내란의 중요임무’라고 규정했는가. 재판부는 그 사실 가운데 무엇을 증거로 인정했는가. 인정하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가. 그리고 최종 형량은 동일·유사 사건과 비교해 과연 균형적인가. 이 작업을 하지 않고 “정치판결이다”라고 외치는 것도, 반대로 “법원이 판결했으니 무조건 정치와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도 모두 너무 쉽다.
특히 법관 개인의 연구회 가입 여부만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예컨대 지귀연 재판장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라는 논란이 제기됐지만,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취소 결정을 내려 당시 여권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은 전력도 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 이재명 정부에 유리한 판결’이라는 단순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 역설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다. 사법사화를 주장하려면 연구회 명단만 가져올 것이 아니라 재판부 구성 → 사건 배당 → 특검의 공소사실 → 검사의 구형 → 판결의 증거 판단 → 법리 → 형량 → 항소심 결과를 모두 연결해서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사법부의 정치화를 주장하는 사람도, 그 주장을 반박하는 사람도 같은 판결문을 놓고 토론할 수 있다.
결국 ‘사법사화’라는 말이 무서운 이유는 현대의 사화에는 칼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소장은 법률 용어로 쓰이고, 특검의 구형은 법 조항을 근거로 하며, 판결문에는 증거와 법리가 적힌다. 모두 합법적인 절차의 모습을 갖는다. 그러나 그 모든 절차가 하나의 정치적 서사를 향해 일관되게 움직이고, 그 결과 특정 정치세력과 관련 인물들이 연쇄적으로 중형을 받고 정치무대에서 퇴장한다면 국민이 “이것도 사화 아닌가?”라고 묻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물론 지금 단계에서 국제인권법연구회나 특정 재판부가 조직적으로 정치적 숙청을 벌였다고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하지만 바로 지금부터가 검증의 시간이다. 적폐청산이든 내란청산이든 정치의 청산이 사법의 판결로 완성되는 시대라면, 사법부는 오히려 더 투명해야 한다. 김태규가 던진 ‘사법사화’라는 폭탄을 가장 제대로 해체하는 방법도 결국 하나다. 사람이 아니라 판결문을 보라. 그리고 그 판결문들이 정말 우연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비교해보라.
Socko/Gh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