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대량 난민…트럼프식 이민 정책…왜 글로벌리즘은 다시 국경, 이념, 전쟁으로 몸살을 앓나
지구촌이 이상하다. 세계화가 인류를 더 부유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국경은 낮아졌고, 상품과 자본과 기술은 국경을 넘어 이동했다. 인터넷은 지구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었고, 항공기는 사람을 하루 만에 대륙과 대륙 사이로 실어 날랐다. 자유무역은 국가 간 전쟁을 줄이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묶어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틀린 말만은 아니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25년 사이 하루 3달러 미만의 극심한 빈곤 상태에 놓인 인구는 약 23억 명에서 8억3100만 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특히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수억 명의 삶을 바꿔놓았다. 세계화와 무역, 자본과 기술의 이동이 만들어낸 경제성장의 힘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토록 세상이 좋아졌다는데 왜 사람들은 점점 더 불안해하는가. 왜 미국에서는 다시 ‘America First’가 힘을 얻고, 유럽에서는 국경을 둘러싼 정치가 선거의 핵심 의제가 되었는가. 왜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문제 하나가 좌우 진영을 갈라놓고, 왜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으며, 왜 국제기구가 말하는 협력보다 각국의 국익과 국경이 다시 앞에 등장하고 있는가.
혹시 세계화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세계화의 성과를 분배하는 방식이 실패한 것은 아닐까. 세계화는 세계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똑같이 부유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경제성장과 교역의 혜택은 거대하게 늘어났지만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 에너지 비용과 같은 생활비의 압박을 받는 서민들에게 ‘세계화의 성공’은 통계표 속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
특히 최근 10여 년의 세계는 코로나19, 전쟁, 부채, 공급망 충격, 기후재난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빈곤 감소의 속도 자체가 크게 둔화됐다. 세계은행도 최근 극심한 빈곤 감소가 크게 느려졌으며, 그 원인으로 저성장과 부채, 코로나19, 분쟁과 취약성, 기후 충격을 함께 지목하고 있다. 극빈층은 점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분쟁·취약국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니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이주는 단순히 ‘이민자들이 더 좋은 나라로 몰려간다’는 이야기로 설명할 수 없다.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데에는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먹고살 길이 없고, 전쟁이 있고, 국가가 무너지고, 일자리가 없고, 자녀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현상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곳 가운데 하나가 유럽이다.
스페인에서 터진 국경의 경고음
최근 스페인령 세우타에서 벌어진 사태는 유럽이 맞닥뜨린 새로운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8월 2일 보도에 따르면 모로코에서 세우타로 향한 대규모 이주 행렬로 최소 72명이 사망했다. 수만 명이 한꺼번에 몰렸고, 익사와 압사 등으로 사상자가 발생했다. 세우타는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스페인 영토이면서 EU의 국경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아프리카와 유럽의 경계선에서 세계의 불평등이 충돌한 것이다.
물론 이것을 곧바로 스페인 좌파 정부의 정책 실패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지나치다. 스페인 정부는 이미 국내에 거주하는 일정 요건의 이주민에게 합법적 체류와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특별 정규화 정책을 추진했다. 정부는 이를 노동시장과 사회통합을 위한 현실적인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6월에는 이민을 ‘공정하고 질서 있고 지능적으로’ 관리한다는 통합·시민권 계획까지 내놓았다.
문제는 좋은 의도와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현실 사이에 언제나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은 이민을 필요로 한다. 실제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2022년 국제이주 노동자는 세계 노동력의 4.7%, 약 1억6770만 명에 달했다. 이들은 특히 고소득 국가의 서비스·돌봄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민은 동시에 주거, 교육, 의료, 치안, 노동시장, 문화적 통합이라는 문제를 만들어낸다.
이민을 필요로 하는 경제와 이민을 감당해야 하는 사회 사이의 긴장이다. 이 문제를 무시하면 극우가 성장한다. 반대로 이민자를 인간이 아니라 숫자나 위협으로만 취급하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무너진다. 결국 필요한 것은 ‘무제한 개방’도 아니고 ‘무조건 추방’도 아니다. 국경은 통제하되 인간은 존중하고, 필요한 노동력은 합법적으로 받아들이되 불법 밀입국과 범죄조직은 엄격히 차단하는 질서다. 그런데 정치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이념 전쟁의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더욱 커지고 있다.
텍사스가 보여주는 미국의 또 다른 얼굴
미국도 마찬가지다. 2026년 텍사스 상원의원 선거는 미국 정치의 현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시험대다. 트럼프가 강하게 밀었던 켄 팩스턴은 공화당 후보가 됐다. 트럼프의 영향력이 여전히 공화당 후보 선출 과정에서 막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팩스턴은 5월 공화당 결선에서 4선 현역 상원의원 존 코닌을 꺾었다. 그래서 트럼프에게는 분명 정치적 승리였다. 하지만 본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7월 말 조사에서는 민주당 후보 제임스 탈라리코가 팩스턴을 45% 대 40%로 앞섰다. 민주당이 30년 넘게 텍사스 주 단위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의미 있는 수치다. 다른 조사에서는 두 후보가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가 웃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가 모든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상대 진영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트럼프의 정치적 자산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민 문제는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당은 이민자의 인권과 포용, 다양성을 강조해왔다. 그 가치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은 이민으로 성장한 나라이고, 합법적인 이민과 난민 보호는 미국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에는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경을 누가 통제하는가, 불법 입국을 어떻게 막는가, 이민자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 지역사회가 주거·교육·의료·치안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현실의 문제가 있다. 바로 그 현실의 질문에 민주당이 충분히 답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유권자가 늘어날수록 트럼프의 주장은 힘을 얻는다.
여기서 스페인을 보자. 스페인 정부가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정책을 추진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유럽은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고, 이민자가 경제와 노동시장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의 수용능력을 넘어서는 이민, 통제되지 않는 국경, 사회통합의 실패, 그리고 그에 따른 주민들의 불안과 정치적 반발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민자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얼마나, 누구를, 어떤 절차로, 어떤 조건에서 받아들이고, 그들이 사회에 어떻게 통합될 것인가가 핵심이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정치적 반작용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반작용이 바로 트럼프가 웃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당이 옳으냐, 공화당이 옳으냐”가 아니다.
민주당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과 이민자의 권리도 필요하다. 공화당이 주장하는 국경 통제와 국가의 책임도 필요하다.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가 이 작업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가. 한쪽은 “인종차별과 혐오”라고 공격하고, 다른 쪽은 “국경을 열어 나라를 망친다”고 공격한다. 결국 중간의 현실적인 해법은 사라지고 분노만 남는다. 그 틈에서 트럼프가 웃는다. 이것이 아이러니다. 트럼프가 웃는다고 해서 트럼프의 모든 이민정책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민주당이 이민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결과, 트럼프에게 정치적 기회가 커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공화당에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국경을 닫는다고 문제가 끝나는가? 불법 이민을 줄인다고 해서 미국의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 문제가 사라지는가? 이미 미국 경제와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수많은 이민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경 통제만으로 미국의 미래를 만들 수 있는가. 결국 민주당도 공화당도 절반만 맞을 수 있다. 민주당이 “사람”을 놓치면 실패하고, 공화당이 “현실”을 놓치면 실패한다. 그래서 이민 문제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운영 능력의 문제다. 그리고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그 사실을 너무 잔인하게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의 혼란을 보라. 그리고 미국을 보라. 이민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긴장을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그 분노를 가장 잘 이용하는 정치인이 웃는다. 지금 트럼프가 웃는 배경에는 바로 이 역설이 있다. 그가 옳아서 웃는 것만이 아니다. 상대가 틀렸다는 확신을 유권자에게 심어주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웃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이 정말 이 현실을 두려워해야 한다면, 트럼프를 욕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왜 미국인들이 트럼프의 말을 믿기 시작했는가?” 바로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트럼프의 웃음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텍사스에서 트럼프가 웃었다”는 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트럼프는 후보 선출 과정에서는 이겼다. 그러나 본선에서 그 후보가 이길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바로 이것이 미국 정치의 핵심이다.
미국인은 더 이상 좌파냐 우파냐만 묻지 않는다. “내 생활이 좋아졌는가?” “집세를 감당할 수 있는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가?” “일자리가 안정적인가?” “국경은 통제되고 있는가?” “정부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질문이 이념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글로벌리즘은 틀렸던 것인가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보자. 글로벌리즘이 세상을 더 잘살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거짓이었나.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증거가 너무 많다. 세계화와 무역 확대는 수십억 명에게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와 기술을 제공했다. 빈곤 감소의 역사적 진전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세계는 분명 과거보다 훨씬 연결됐고,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전 세대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세계화가 성공했는데 왜 세계인은 행복하지 않은가. 여기에서 ‘글로벌리즘’이라는 단어가 정치적 문제가 된다. 세계화를 경제적 연결성으로 이해하는 것과, 국경과 국가의 의미 자체를 약화시키는 정치적 이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국제무역은 필요하다. 국제협력도 필요하다. 인류가 국경을 넘어 협력해야 하는 문제는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가가 국민의 주거와 일자리와 치안과 문화적 안정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낡은 민족주의’라고 몰아붙일 수도 없다. 세계화와 국가의 책임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정치가 이것을 좌파와 우파의 전쟁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민을 말하면 극우라고 하고, 국경 통제를 말하면 반세계화라고 한다. 반대로 국경을 강조하면 이민자를 혐오한다고 몰아붙이고, 이민자의 인권을 강조하면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라고 공격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중간의 현실정치가 사라진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그리고 세계의 균열
아프리카의 문제도 단순히 ‘아프리카계 이주가 급증한다’는 인종적 프레임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는 인구 증가, 경제적 격차, 청년 실업, 기후 변화, 국가 취약성, 내전과 무장분쟁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오늘날 세계 극빈층이 가장 집중된 지역이다. 세계은행은 최근 극빈층의 상당 부분이 이 지역과 분쟁·취약국에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전쟁이 사람을 움직인다. 전쟁은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집을 떠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아프리카의 분쟁은 이미 국제사회의 심각한 위험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2026년 분쟁 위험 평가에서는 조사된 위험 시나리오 가운데 아프리카 국가와 관련된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특히 수단 전쟁의 추가 악화 가능성이 주요 위험으로 평가됐다. 동시에 가자, 우크라이나, 이란·이스라엘, 대만해협, 러시아와 NATO의 충돌 가능성까지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위험이 겹쳐 있다.
이것이 오늘 지구촌의 진짜 그림이다. 한쪽에서는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경을 지키기 위한 장벽이 높아진다. 한쪽에서는 글로벌 시민을 이야기하고, 다른 쪽에서는 자국민 우선주의가 등장한다. 한쪽에서는 다양성을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걱정한다. 한쪽에서는 세계화를 외치고, 다른 쪽에서는 보호무역과 관세를 꺼내 든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묻는다. “그래서 내 삶은 언제 좋아지는가?”
지금 세계가 ‘야만’으로 가는 이유
어쩌면 지금 세계가 야만으로 가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갑자기 나빠져서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보다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능력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이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민자를 악마화한다.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외국을 탓한다. 전쟁을 막지 못하면 적을 악마로 만든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상대 진영을 ‘국민의 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SNS는 이 모든 것을 더욱 빠르게 증폭시킨다.
정책의 복잡성은 사라지고 짧은 분노만 남는다. “좌파 때문이다.” “우파 때문이다.” “이민자 때문이다.” “자본가 때문이다.” “미국 때문이다.” “중국 때문이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세계가 다시 야만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글로벌리즘의 폐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글로벌리즘의 부활도 아니다. 세계화의 성과는 지키되, 세계화의 부작용은 국가와 민주주의가 책임지는 새로운 균형이다. 자유무역을 하되 노동자가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민을 받아들이되 국가의 수용능력과 법질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난민을 보호하되 밀입국을 산업화하는 범죄조직은 차단해야 한다. 국경을 지키되 인간의 존엄성을 버려서는 안 된다. 국가 이익을 추구하되 다른 나라를 파괴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을 정치의 정상적인 수단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세계는 너무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에 오히려 잃을 것이 많다. 인터넷이 있고, AI가 있고, 핵무기가 있고, 글로벌 금융시장이 있고, 대륙을 연결하는 물류망이 있다. 그런데 인간의 정치적 판단이 20세기보다 더 원시적으로 돌아간다면 이 모든 문명의 자산은 오히려 파괴력을 키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 AI는 21세기인데 정치가 20세기로 돌아가고, 경제는 세계화됐는데 사람의 마음은 다시 국경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지금 지구촌의 가장 큰 역설이다. 세계화는 인류를 더 부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부유해진 세계가 반드시 더 공정한 세계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념은 다시 칼이 된다. 미국의 ‘America First’도, 유럽의 국경정치도,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거대한 이주 흐름도, 우크라이나와 가자와 수단에서 이어지는 전쟁도 모두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깊은 곳에서는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세계는 누구를 위해 작동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극단으로 이동한다. 그때 좌파는 더 왼쪽으로 가고 우파는 더 오른쪽으로 간다. 그리고 서로를 설득하는 대신 서로를 제거하려 한다. 그 순간 세계는 문명에서 야만으로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민자 자체도, 세계화 자체도, 좌파 자체도, 우파 자체도 아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상대방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정치다. 국경을 넘는 사람도 인간이고, 국경을 지키려는 사람도 인간이다. 세계화를 지지하는 사람도 국민이고, 세계화에 분노하는 사람도 국민이다. 좌파도 시민이고 우파도 시민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토론의 체제가 아니라 적을 찾아내는 체제로 변한다.
지금 지구촌이 정말 잘못 가고 있다면 바로 그 지점이다. 세계는 더 연결됐는데 인간은 더 분열됐다. 가난은 줄었는데 불평등에 대한 분노는 커졌다. 국제기구는 늘었는데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이동의 자유는 확대됐는데 국경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정치인은 그 균열을 봉합하기보다 때로는 더 벌린다. 이것이 오늘의 지구촌이다.
세계화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세계화만으로는 인간의 불안과 정치의 욕망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계화냐 반세계화냐’의 낡은 선택이 아니다. 사람을 살리는 세계화,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국제주의, 질서 있는 이민, 공정한 성장, 그리고 전쟁을 막을 수 있는 현실주의. 그 다섯 가지를 동시에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문제다.
그것을 못하면 우리는 다시 국경을 세우고, 다시 적을 만들고, 다시 전쟁을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뒤늦게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두려워했던 것은 이민도 세계화도 아니었다. 정작 우리가 잃어가고 있었던 것은 서로를 인간으로 인정하는 능력이었다는 것을. 그때라면 정말로, 지구촌은 문명에서 야만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 Reuters, “Death toll from migrant rush into Spanish enclave in North Africa rises to 72,” 2026.08.02. — 모로코에서 스페인령 세우타로 몰려든 대규모 이주와 사망자, 국경 강화 조치.
- Reuters, “Social media rumours, economic hardship fuel migrant surge into Ceuta,” 2026.07.31. — 세우타 대량 이주의 배경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SNS를 통한 허위·과장 정보 등을 분석.
- Reuters, “Migrants say hunger and hostility drove them back from Spain’s Ceuta to Morocco,” 2026.08.01. — 세우타에 도착한 이주민들의 현실과 일부의 모로코 귀환 과정.
- The Texas Tribune, “Paxton, Talarico visits lay bare border voters’ complex feelings,” 2026.07.23. — 미국 국경지역 유권자들이 불법 입국 통제와 대규모 추방 사이에서 느끼는 복합적인 정치적 입장.
- The Texas Tribune, “Talarico leads Paxton by 5 points in new Texas Senate poll,” 2026.07.28. — 텍사스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제임스 탈라리코가 공화당 켄 팩스턴을 45% 대 40%로 앞선 조사. 따라서 ‘트럼프가 웃는다’는 표현은 이민정책 논쟁이 트럼프 진영에 정치적 공간을 제공했다는 의미의 논평적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함.
-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CFR), Conflicts to Watch in 2026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란·이스라엘 충돌 가능성, 가자 및 기타 국제분쟁 등 2026년 주요 지정학적 위험 분석.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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