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SocietyOPINION

누가 빨대를 꽂았나 — 남의 몫으로 살아가는 사회의 민낯

빨대는 작다. 스스로 음료를 만들지도 않고, 컵을 채우지도 않는다. 그러나 컵 안에 든 것을 입으로 옮기는 데는 탁월하다. 이 단순한 도구가 어느 순간 사회의 불편한 은유가 된다. 누군가의 노동과 세금, 기업의 성과와 시민의 희생 위에 자신의 몫을 얹는 사람들, 직접 가치를 만들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가치에서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를 우리는 ‘빨대’라고 부른다.

문제는 빨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누가 어떤 자격으로 꽂았으며, 그 대가를 누가 치르고 있는가 하는 데 있다. 정당한 보수와 배당, 복지와 공공서비스까지 빨대라는 말로 싸잡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기여와 보상의 연결이 끊어지고, 권한을 가진 자가 비용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 시작하면 빨대는 생활용품에서 사회적 병폐를 드러내는 정치적 언어로 바뀐다.

정치권은 빨대가 자라기 좋은 토양이다. 권력은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임받은 권한이지만, 그 권한이 인맥과 충성의 대가로 자리와 예산을 나누는 수단이 되면 공적 자원은 사적 몫으로 변질된다. 선거 때는 국민을 주인이라 부르다가 선거가 끝나면 국민의 세금과 인사권을 자기 진영의 전리품처럼 다루는 행태가 그렇다.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이 자신을 감시하는 장치를 얼마나 견디느냐이다. 측근에게 돌아간 자리는 전문성과 성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특정 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검증 가능한 공익을 만들어 내는가. 권력자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권력에 접근했다는 사실만으로 이익을 얻는다면, 그것은 정치적 협력인지 특혜의 사슬인지 따져야 한다.

빨대는 언제나 권력자 혼자 꽂는 것이 아니다. 꽂을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 문제를 알고도 침묵하는 사람, 감시해야 할 임무를 방기하는 사람이 함께할 때 구조가 된다. 재정으로 시선을 옮기면 빨대의 크기는 훨씬 커진다. 세금은 국민 각자의 주머니에서 나와 사회 전체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모인다. 복지와 교육, 국방과 기반시설, 산업 지원과 지역 개발은 그 재원을 사용할 수 있는 정당한 목적들이다.

그렇지만 예산이 크다는 사실이 곧 성과가 크다는 뜻은 아니며, 지원 대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원의 효과가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보조금과 정책금융, 공공사업이 실제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 냈는지, 혜택은 누구에게 집중됐는지, 사업이 끝난 뒤에도 성과가 남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달하지 않고 중간 단계의 조직과 사업자에게 비용만 쌓인다면,…

선의의 정책도 결과적으로 빨대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더구나 공공재정의 낭비는 장부에 찍힌 금액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돈을 다른 곳에 쓸 기회를 잃고,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 위해 미래 세대가 부담을 떠안는다. 정치인은 예산을 편성할 때 자신의 공을 말하지만, 실패한 사업의 청구서는 대개 국민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재정의 정의는 얼마를 썼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썼으며 무엇이 남았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시장에도 빨대는 있다. 다만 이곳에서는 정치적 특혜만큼이나 거래의 구조를 살펴야 한다. 기업이 투자하고 위험을 부담한 뒤 이윤을 얻는 것은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원리다. 플랫폼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합리적인 수수료를 받는 것 역시 그 자체로 부당하지 않다. 문제는 선택지가 사라진 시장에서 발생한다. 거래처가 한 곳에 종속되고,…

입점업체가 과도한 비용을 감당하며, 노동자가 협상력을 잃고, 소비자가 실질적인 대안을 찾지 못한다면 계약서에 적힌 합의만으로 공정성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시장의 힘이 생산성과 혁신에서 나오지 않고 경쟁을 차단하거나 상대방의 취약성을 이용하는 데서 나온다면, 이익은 창출의 보상보다 지배력의 수확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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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큰 기업의 성공을 모두 착취로 규정하거나 중개자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따져야 할 것은 가치의 창출과 가치의 이전을 구분하는 일이다. 누가 위험을 부담하고 누가 협상력을 갖는가, 비용을 지불하는 쪽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경쟁자는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매출과 성장률만 찬양한다면 시장의 활력 뒤에 숨은 빨대를 놓칠 수 있다.

빨대는 거대한 권력기관이나 대기업에만 꽂히지 않는다. 일터와 학교, 각종 조직의 일상에도 작고 질긴 빨대가 존재한다. 누군가는 일을 떠맡고 누군가는 공을 가져간다. 책임은 실무자에게 내려보내면서 성과는 윗선이 독점하고, 공동의 규칙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를 보며 규칙을 우회하는 사람이 이익을 얻는다면 조직은 서서히 무너진다.

무임승차가 반복되는 조직에서는 성실함이 미덕이 아니라 손해 보는 선택으로 인식되고, 결국 가장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먼저 지친다. 여기서도 모든 보이지 않는 기여를 계산하고 모든 불균형을 부정행위로 단정할 수는 없다. 협업에는 역할의 차이가 있고, 성과를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일도 있다. 그러나 책임과 보상의 기준이 불투명하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으며, 실패한 사람보다 실패를 감춘 사람이 보호받는다면 그것은 개인의 도덕성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빨대의 문제는 탐욕스러운 개인의 존재보다 탐욕을 반복해도 손해 보지 않는 환경에 있다. 그런 환경에서는 정직한 사람이 바보가 되고, 침묵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으로 통한다. 조직의 몰락은 대개 그 역전이 상식으로 굳어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국제관계에서도 빨대라는 비유는 유용하지만, 더욱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동맹과 원조, 무역과 안보 협력에는 언제나 비용과 편익의 배분 문제가 따른다. 강대국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고, 동맹국은 공동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려 한다. 어느 한쪽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한다고 해서 곧바로 착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군사적 억지력이나 정보 공유, 시장 접근성처럼 비용표에 쉽게 담기지 않는 편익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동맹이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부담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누가 규칙을 만들고, 누가 협상에서 선택권을 가지며, 약속한 편익은 실제로 이행되는지 살펴야 한다. 무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상호의존은 공동 번영의 기반이 될 수 있지만,…

특정 국가나 공급망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위기 때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통로가 된다. 국제정치의 빨대는 누군가가 다른 나라의 자원을 가져간다는 단순한 그림보다 복잡하다. 중요한 것은 비용을 분담하는 당사자들이 그 조건을 알고 동의했는지, 대가가 합리적인지, 관계를 조정하거나 벗어날 현실적인 선택지가 있는지다. 동맹을 무조건 찬양하는 것도,…

모든 국제 협력을 약탈로 보는 것도 분석을 망친다. 국가의 이익을 지키는 일은 구호가 아니라 냉정한 손익과 위험의 검증에서 시작된다. 결국 빨대를 뽑는 일은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빨대를 꽂은 사람만 처벌하고 그 통로를 만든 제도와 묵인한 조직을 그대로 둔다면 다른 사람이 와서 같은 자리에 꽂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투명한 예산 공개, 이해충돌 방지, 독립적인 감사, 공정한 경쟁, 책임과 보상의 명확한 기준이다. 공익을 내세운 사업에는 측정 가능한 성과를 요구하고, 권한을 행사한 사람에게는 그 결과를 설명할 의무를 물어야 한다. 동시에 정당한 이윤과 복지, 성과에 대한 보상까지 빨대라고 몰아붙이는 도덕적 과잉도 경계해야 한다.

사회를 갉아먹는 것은 모든 이익이 아니라 기여와 위험에 대한 책임 없이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타인의 몫을 지속적으로 가져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누가 빨대를 꽂았는가만이 아니라, 왜 그 빨대를 아무도 뽑지 못했는가. 누가 이익을 얻었는가만이 아니라, 그 비용을 누가 대신 지불했는가.

빨대가 사회의 은유로 오래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어휘가 빈곤해서가 아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남의 컵을 바라보고, 너무 적은 사람이 컵을 지킬 규칙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정한 사회의 기준은 빨대가 하나도 없는 세상이 아니라, 누구도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남의 몫을 함부로 빨아들일 수 없는 세상이다.

참고문헌

  • OECD, Public Integrity 관련 자료.
  • OECD, Government at a Glance.
  • OECD, Competition Assessment Toolkit 및 경쟁정책 자료.
  • World Bank, Public Financial Management 관련 자료.
  • World Trade Organization (WTO), World Trade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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