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을 건드린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마케팅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대통령, 여당, 정부 부처가 한 방향으로 특정 기업을 몰아붙이는 순간, 문제는 소비자 불매를 넘어 권력의 시장 개입, 선거 동원, 반미 정서 자극이라는 더 위험한 국면으로 넘어간다. 커피 한 잔이 아니라, 권력이 시장을 향해 “너는 우리 편이냐 아니냐”고 묻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마케팅은 애초에 변명의 여지가 적은 사고였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라는 단어가 전면에 걸렸고, 여기에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까지 겹치면서 1980년 광주의 계엄군 이미지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동시에 떠올리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스타벅스코리아는 행사를 중단하고 사과했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도 책임을 통감한다는 취지로 사과와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 이 지점까지는 상식의 영역이다. 역사적 상처를 건드린 기업은 비판받아야 하고, 소비자는 분노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시민의 불매와 권력의 불매는 다르다. 시민이 지갑을 닫는 것은 시장의 판단이지만, 대통령과 여당, 장관과 정부 부처가 특정 기업을 향해 한꺼번에 손가락질을 시작하면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소비자 운동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스타벅스를 겨냥해 강한 표현을 썼고, 이후 “거기 커피는 아니지요?”라는 말까지 보도됐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실상 기관 차원의 스타벅스 불매를 선언했고, 정부 부처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대통령의 분노, 여당의 확성기, 정부 부처의 구매 배제 신호가 한 줄로 이어지는 순간, 기업은 소비자가 아니라 권력을 상대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이 사안은 치졸하고 자잘한 정치의 냄새를 풍긴다. 부적절한 마케팅을 바로잡자는 차원을 넘어, 정용진이라는 특정 기업인을 향한 오래된 감정이 한꺼번에 분출되는 듯한 장면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과거 ‘멸콩’ 발언과 친미·보수 성향 이미지로 이미 좌파 진영의 공격 대상이 되어 있었다. 이번 사태가 터지자 일부 정치권과 진보 진영에서는 스타벅스의 마케팅 실패를 곧바로 정용진 개인의 세계관, 정치 성향, 트럼프 진영과의 친분 문제로 연결했다. 실제로 불매운동 보도에서는 ‘멸공’ ‘MAGA’ ‘정용진 사퇴’ 같은 표현들이 함께 등장했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명확하다. 기업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과 기업인의 정치 성향을 응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스타벅스코리아의 행사 기획이 부적절했다면 그 책임 구조를 따지면 된다. 누가 기획했고, 누가 승인했고, 내부 검수는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묻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논점은 “왜 정용진은 멸콩을 했나”, “왜 트럼프 주니어와 가깝나”, “왜 우파 기업인이 한국에서 장사하나”에 가까운 방향으로 번져간다. 이것은 역사 정의의 언어를 빌린 정치적 응징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인을 역사 감수성 위반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서 무릎 꿇리려는 권력의 욕망이다.
트럼프 주니어와 정용진 회장의 친분이 다시 소환되는 것도 이 지점에서다.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 4월 방한 당시 정 회장의 부인 한지희 씨 콘서트 참석이 예정됐거나 실제 참석한 것으로 보도됐고, 정 회장과의 각별한 친분도 여러 매체에서 다뤄졌다. 이 사실 자체가 불법도 아니고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민간 기업인이 미국 정치권 인사와 교류하는 것은 기업 외교의 한 방식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국내 정치의 눈에는 “친트럼프 기업인”이라는 낙인으로 바뀌고, 스타벅스 사태와 결합하면서 “미국 쪽과 가까운 정용진을 손봐야 한다”는 식의 정서로 흐르면 상황은 대단히 위험해진다.
더구나 스타벅스는 미국 브랜드다. 한국 법인은 신세계 계열 구조 안에 있지만, 대중이 받아들이는 상징은 여전히 미국 브랜드다. 정부와 여당이 스타벅스 불매를 사실상 정치 캠페인처럼 확산시키면, 해외에서는 이를 단순한 역사 감수성 논란이 아니라 한국 시장에서 미국계 브랜드와 친미 성향 기업인이 정치적 압박을 받는 장면으로 볼 여지가 있다. 물론 당장 미국 정부가 공식 대응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외국 기업과 투자자는 분위기를 본다.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은 권력자의 말 한마디로 시장이 얼어붙는 공기다.
쿠팡 사례가 함께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쿠팡은 미국계 자본과 연결된 대표적 플랫폼 기업이고, 한국 시장에서 노동·소비자·공정거래 이슈로 거센 규제와 비판을 받아왔다. 쿠팡에 대한 비판이 언제나 부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특정 기업의 문제를 따질 때마다 “외국 자본”, “미국식 기업”, “반서민 플랫폼” 같은 정치적 딱지가 먼저 붙는 흐름이다. 쿠팡에 이어 스타벅스까지 ‘미국 냄새 나는 기업’이 여론전의 표적이 되는 장면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반일 운동의 성공 공식을 반미 정서 쪽으로 살짝 비틀어 지방선거판에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부를 수밖에 없다.
특히 지방선거 국면이라는 점은 더 민감하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후보들에게 스타벅스 출입 자제를 제안했고, 관련 보도에서는 후보 캠프의 스타벅스 물품 퇴출 움직임도 소개됐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선거운동 관계자들에게 스타벅스 출입이 국민에게 나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보도됐다. 여기까지 오면 불매는 시민운동이 아니라 선거 캠페인의 도구가 된다. “역사를 모욕한 기업을 심판하자”는 구호가 “우리 편은 스타벅스 안 간다, 저쪽은 간다”는 진영 식별표로 바뀌는 것이다.
선거법 위반 여부는 단정할 문제가 아니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가 특정 기업 불매를 외쳤다고 해서 곧바로 공직선거법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 삼을 지점은 있다. 공직자와 정부 부처가 사실상 특정 기업의 상품 배제를 유도하고, 여당 선거 조직이 이를 선거운동의 도덕적 기준처럼 활용한다면, 이는 최소한 공권력의 정치적 중립성과 시장 중립성 문제를 낳는다. 법 위반이냐 아니냐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대통령과 장관의 말이 민간기업의 매출과 평판을 직접 흔드는 나라에서, 선거판은 과연 공정한가.
역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방식도 문제다. 5·18은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깊은 상처이자 자산이다. 그러므로 기업이 이를 가볍게 다뤘다면 혹독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5·18이 선거철마다 특정 진영의 도덕적 몽둥이로 동원된다면, 그 숭고한 기억은 오히려 권력의 도구로 훼손된다. 역사적 상처를 지키자는 명분이 기업을 때리고, 정치적 반대자를 낙인찍고, 미국 브랜드를 몰아세우는 데 쓰이는 순간, 그것은 추모가 아니라 동원이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초라한 장면은 권력의 크기에 비해 공격의 방식이 너무 자잘하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커피 브랜드를 콕 집어 비꼬고, 장관이 불매를 선언하고, 여당이 후보자들에게 출입 자제를 권고한다. 이것이 과연 국정을 책임지는 권력의 품격인가. 기업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최고 권력이 특정 프랜차이즈와 기업 총수를 상대로 대중 감정의 불을 키우는 장면은 품격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질서의 문제다. 대통령의 언어는 시민의 분노와 다르다. 대통령이 말하면 그것은 지침이 되고, 장관이 따라 말하면 그것은 행정 신호가 되며, 여당이 받아 적으면 그것은 선거 구호가 된다.
정용진 회장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업 총수라면 정치적 발언의 파장과 브랜드 리스크를 관리할 책임이 있다. ‘멸콩’ 같은 표현이 소비자 일부에게는 통쾌했을지 몰라도, 기업 전체에는 장기적 정치 리스크를 남겼다. 스타벅스 사태도 단순한 실무자의 실수로만 넘기기 어렵다. 조직 문화가 역사 감수성을 제대로 검수하지 못했다면 그 역시 경영 책임이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것과 기업인을 정치적으로 사냥하는 것은 다르다. 하나는 시장의 규율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의 보복이다.
이 사태의 가장 큰 위험은 반일 운동의 문법이 반미 전선으로 옮겨붙는 조짐이다. 한국 정치에서 반일은 오랫동안 선거 동원의 쉬운 도구였다. 역사 감정, 민족주의, 소비자 불매가 한데 묶이면 강력한 캠페인이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대상이 일본 기업이 아니라 미국 브랜드와 친미 이미지의 국내 기업인이다. 만약 여권이 이 공식을 선거에 활용하려 든다면, 이는 국내 정치의 단기 이익을 위해 한미 경제 신뢰를 갉아먹는 자해가 될 수 있다. 반일 선동의 달콤함을 반미 정서에까지 적용하려는 순간, 그 비용은 선거가 아니라 외교와 투자, 통상에서 청구된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스타벅스는 잘못했는가. 그렇다.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특정 기업을 겨냥해 불매의 깃발을 들고 선거판으로 끌고 가는 것은 정당한가.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소비자가 분노하면 시장이 답한다. 하지만 권력이 분노하면 기업은 엎드린다. 민주주의 국가는 바로 그 차이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정의는 강해야 하지만, 권력의 손에 들린 정의는 늘 조심해야 한다. 역사적 상처를 지키겠다는 명분이 기업 죽이기와 정치 갈라치기로 변질되는 순간, 그 정의는 스스로를 배반한다. 스타벅스 사태는 기업의 무감각이 부른 사고로 시작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더 깊이 봐야 할 것은 그 사고를 이용해 정용진을 때리고, 신세계를 흔들고, 미국 브랜드를 몰아세우며, 지방선거의 진영 표식으로 삼으려는 권력 정치의 본능이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커피 브랜드를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감수성과 시장 질서가 함께 설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당이 해야 할 일은 불매 인증 경쟁이 아니라, 기업 책임과 정치 동원을 구분하는 일이다. 그리고 기업이 해야 할 일은 정치권 눈치만 보는 사과가 아니라, 다시는 역사적 상처를 판촉 문구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내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이번 사태가 남긴 진짜 교훈은 이것이다. 기업의 실수는 비판받아야 하지만, 권력의 보복은 더 경계해야 한다. 스타벅스의 탱크데이는 분명 어리석었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을 빌미로 대통령과 여당과 정부 부처가 한 기업을 정치적으로 몰아세우는 장면은 더 위험하다. 커피 한 잔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을 권력의 감정 아래 세울 것인가, 아니면 잘못은 바로잡되 기업 활동의 자유와 정치적 중립성은 지킬 것인가. 바로 그 시험대가 지금 스타벅스 컵 위에 올라와 있다.
참고문헌
- 한겨레, 「스타벅스, 책상에 탁! 5·18 ‘탱크 데이’ 논란…“제정신인가”」, 2026.05.19.
- MBC, 「‘5·18에 탱크데이·책상에 탁?’…스타벅스 결국 사과」, 2026.05.18.
- YTN, 「‘탱크 데이’ 논란 불매운동 확산…‘정용진 사퇴 촉구’」, 2026.05.21.
- 연합뉴스, 「행안부, 스타벅스 불매 선언…관가 전반 확산하나」, 2026.05.21.
- MBN, 「이 대통령 ‘거기 커피 아니죠?’…행정안전부, ‘스타벅스 불매’ 선언」, 2026.05.22.
- MBC, 「‘커피는 스벅’ 극우 폭주…불매운동 비웃듯 ‘역주행’」, 2026.05.20.
- MBC, 「민주당, 스타벅스 출입 금지령…침묵하던 국힘 ‘잘못된 행동’」, 2026.05.20.
- 한겨레, 「‘다신 보지 말자’ 스타벅스 텀블러, 캡슐 버려…불매운동」, 2026.05.20.
- 조선일보, 「트럼프 장남, 정용진 회장 부인 콘서트에서 ‘MAGA’ 모자에…」, 2026.04.29.
- 아이뉴스24, 「한국 온 트럼프 주니어…‘정용진 회장 부인 콘서트’ 참석 계획중」, 2026.04.28.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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