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청년 수출] 모스크바 공항에 내린 ‘김정은의 미래’…러시아행 청춘은 유학인가, 외화벌이인가
모스크바 공항에 북한 청년들이 나타났다. 그 장면 하나가 묘하다. 여행객처럼 보이지만 여행의 표정은 아니고, 유학생처럼 보이지만 학문의 냄새도 희미하다. 단체로 움직이고, 버스가 기다리고, 누군가 인솔하고, 누군가는 어디론가 데려간다.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의 ‘北토크’가 포착한 장면은 이달 17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북한 청년들이 출구를 빠져나와 대형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이다. 기사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우크라이나 매체 유로마이단 익스프레스가 공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풍자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다. 북한 정권은 늘 청년을 “혁명의 계승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계승자가 모스크바 공항에 내리는 순간, 혁명은 갑자기 노동계약서가 되고, 충성은 외화 송금표가 되며, 미래는 버스에 실려 어느 현장으로 이동한다. 평양의 선전문구로는 ‘청년강국’이지만, 현실의 국제선 도착장에서는 ‘청년 수출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더 기막힌 것은 항공편의 용도다. 동아일보 보도는 지난해 7월 모스크바-평양 직항 노선이 열렸지만 러시아 관광객 수요는 극히 낮았고, 원래 월 2회 운항해야 할 직항기가 지난 9개월 동안 월평균 1회 수준으로 운항됐다고 전했다. 러시아 정부가 북한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항공사에 1회 비행 약 1억500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그런데 평양으로 가는 관광객은 적고, 반대로 평양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비행기에는 북한 인력이 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붙는다.
말하자면 관광 노선인 줄 알았더니, 체제의 인력 통로가 된 셈이다. 러시아인은 평양 관광을 가지 않는데, 북한 청년은 모스크바로 간다. 관광은 비었고 노동은 찼다. 이것이야말로 독재 체제 특유의 역설이다. 정상국가라면 항공 노선은 사람의 자유 이동을 상징한다. 그러나 북한식 항공 노선은 자유가 아니라 동원이다. 탑승권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지시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고, 도착지는 꿈이 아니라 할당량일 가능성이 높다.
외신과 인권단체의 맥락을 붙이면 그림은 더 선명해진다. 코리아타임스가 NK뉴스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5년 북한 국적자에게 총 3만6413건의 비자를 발급했고, 이 가운데 98%가 넘는 3만5839건이 교육 비자였다. 그러나 NK Pro 조사 등은 러시아 기업들이 ‘학생 연수’라는 명목으로 북한 노동자를 조달하는 방식을 지적해 왔다. 공식 통계상 노동 비자는 없는데, 교육 비자가 폭증하는 구조다.
여기서 풍자는 더 날카로워진다. 세상 어느 나라의 유학생이 그렇게 단체로, 그렇게 조용히, 그렇게 공항 밖 버스에 실려 사라지는가. 교육 비자라면 학교가 보여야 하는데, 자꾸 건설 현장이 보인다. 연수라면 강의실이 나와야 하는데, 외신 보도에서는 숙소, 감시, 임금 공제, 장시간 노동이 나온다. 이름은 유학인데, 실물은 노동이다. 포장지는 교육이고, 내용물은 외화벌이다.
국제 인권단체 Global Rights Compliance는 2026년 3월 보고서에서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의 증언을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 해외 노동 프로그램이 약 40개국에서 작동하며, 러시아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월 할당액을 채우도록 강요받고, 하루 최대 16시간 노동, 사실상 쉬는 날 없는 근무, 매우 낮은 실수령액, 열악한 숙소 등의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런 구조가 북한 정권에 연간 약 5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강제노동 체계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청년들은 러시아에 무엇을 배우러 갔는가. 러시아어인가, 건설 기술인가, 아니면 “국가가 개인의 시간을 얼마나 끝까지 짜낼 수 있는가”라는 독재의 실무인가. 김정은 체제가 말하는 청년 사랑은 늘 거창하지만, 실제 청년에게 돌아가는 것은 군복, 작업복, 감시자, 할당금, 그리고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를 긴 겨울뿐이다.
러시아 입장도 노골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는 인력 부족과 전쟁 복구 수요를 동시에 안고 있다. 로이터는 러시아와 북한이 2024년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을 체결했고, 그 조약에 상호방위 조항이 포함됐으며, 북한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러시아군과 함께 싸우도록 약 1만4000명의 병력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최근 러시아 내무장관의 방북 역시 양국 협력이 더욱 깊어지는 흐름 속에 이뤄졌다.
그러니 모스크바 공항의 북한 청년들은 단순한 입국자가 아니다. 그들은 북러 밀착의 가장 약한 고리이자 가장 적나라한 증거다. 위에서는 푸틴과 김정은이 악수하고, 아래에서는 북한 청년들이 러시아 땅으로 이동한다. 정상회담장에서는 전략동반자라고 부르지만, 공항 도착장에서는 노동력 수송으로 보인다. 위에서는 동맹이고, 아래에서는 동원이다.
가장 슬픈 풍자는 이것이다. 북한 정권은 청년에게 미래를 맡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래를 팔고 있다. 청년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보내고,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감시하며, 꿈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할당액을 부과한다. 국가가 젊은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가 국가를 먹여 살린다. 그것도 자기 이름으로가 아니라, 김정은 체제의 이름으로.
모스크바 공항에 나타난 북한 청년들의 장면은 그래서 조용하지만 무겁다. 총성이 없고, 군사 퍼레이드도 없고, 미사일 발사도 없다. 그러나 그 장면은 북한 체제의 본질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람을 자원으로 보는 국가, 청년을 통치의 연료로 쓰는 권력, 국제 제재를 피해 ‘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노동력을 흘려보내는 체제.
북한의 청년들은 혁명의 꽃이 아니라 체제의 송금 수단이 되고 있다. 그리고 모스크바 공항은 그 꽃이 어디로 꺾여 가는지를 보여준 무대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 주성하의 ‘北토크’, “모스크바 공항에 나타난 북한 청년들”, 2026년 4월 25일.
- The Korea Times / NK News, “Russia issued over 36,000 visas to North Koreans in 2025, almost all for education”, 2026년 4월 8일.
- Global Rights Compliance, “New Report Reveals Testimonies of North Koreans Exploited Across Russia…”, 2026년 3월 25일.
- Reuters, “Russian interior minister arrives in North Korea for talks”, 2026년 4월 20일.
Socko/Gh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