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두 기념일] 기자는 죽음을 기록하고, 노동자는 폐허를 치운다
세계는 달력 위에서 기념일을 만든다. 언론의 자유를 기리는 날이 있고, 노동의 존엄을 말하는 날이 있다. 그러나 가자에서는 그 두 기념일이 축하가 아니라 생존 보고서가 된다. 세계 언론자유의 날을 맞은 팔레스타인 기자들은 자유로운 취재 환경을 말하기보다 숨진 동료들의 이름을 먼저 불러야 했다. 노동절을 맞은 가자의 노동자들은 노동권과 임금 협상을 말하기보다 하루 벌이를 위해 무너진 건물 잔해 위로 올라가야 했다. 기념일은 거창한 구호를 달고 오지만, 가자의 현실은 그 구호를 폐허 앞에 세워놓고 묻는다. 자유는 어디에 있고, 노동은 무엇으로 남았는가.
5월 3일 세계 언론자유의 날, 가자의 팔레스타인 기자들은 전쟁 중 희생된 동료들을 기리며 언론인 보호를 요구했다. 알자지라는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기자들이 세계 언론자유의 날을 맞아 이스라엘에 의해 숨지거나 표적이 됐다고 보는 동료들을 추모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교황 레오도 전쟁 지역에서 진실을 좇는 기자들의 보호를 촉구했다. 전쟁에서 기자는 관찰자처럼 보이지만, 가자에서는 관찰자의 자리조차 안전하지 않다. 카메라는 방패가 되지 못하고, 취재증은 생명을 보장하지 못한다. 보도 현장은 곧 표적이 되고, 기자의 집과 사무실과 차량도 전쟁의 바깥에 남지 못한다.
팔레스타인 측 기관들은 가자에서 숨진 언론인 수가 260명을 넘었다고 주장한다. 이 수치는 이스라엘 측이나 국제 감시단체의 집계 방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대로 확정된 국제 통계처럼 쓰기는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숫자의 논쟁을 떠나 분명한 것은 가자가 현대 전쟁에서 기자에게 가장 위험한 공간 중 하나가 됐다는 사실이다. 언론의 자유는 법 조항이나 국제 선언에서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기자가 현장에 갈 수 있어야 하고, 기록할 수 있어야 하며, 기록했다는 이유로 죽음의 위협을 받지 않아야 한다. 가자에서 그 기본 조건은 이미 깊이 훼손됐다.
노동절의 가자도 다르지 않았다. 알자지라는 5월 1일 노동절에 가자 노동자들이 붕괴된 경제 속에서 가능한 생계 수단을 찾아 위험한 일터로 내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24세 노동자 이브라힘 아부 알에이시는 파괴된 건물 잔해를 치우는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가 서 있는 곳은 공장이 아니라 폐허이고, 그가 상대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무너진 콘크리트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잔존 위험이다. 노동절이 노동자의 권리를 말하는 날이라면, 가자의 노동절은 권리 이전에 생존을 말한다. 일할 권리보다 먼저 살아남을 권리가 무너진 곳에서, 노동은 존엄의 이름보다 절박한 생계의 이름으로 불린다.
중동 모니터도 노동절을 맞은 가자 노동자들이 전쟁으로 안전과 안정, 존엄을 잃은 채 극도로 어려운 생활과 노동 조건을 견디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은 노동시장을 파괴한다. 공장은 멈추고, 상점은 사라지고, 이동은 막히고, 임금은 무너진다. 그러면 사람들은 가장 위험한 일이라도 붙잡는다. 잔해를 치우고, 임시 노점에 서고, 물자 운반을 하고, 무너진 도시의 틈에서 하루치 소득을 찾는다. 이것은 정상적인 노동이 아니라 경제 붕괴 뒤에 남은 생존 노동이다.
가자에서 기자와 노동자는 서로 다른 직업이지만, 지금은 같은 폐허를 마주하고 있다. 기자는 그 폐허를 기록하고, 노동자는 그 폐허를 치운다. 기자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세고, 노동자는 살아남은 가족의 끼니를 계산한다. 기자에게는 진실을 전할 자유가 필요하고, 노동자에게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쟁은 두 권리를 동시에 짓밟는다. 폭격은 언론사를 가리지 않고, 봉쇄와 붕괴는 일터를 가리지 않는다. 자유와 노동이 각각 다른 단어처럼 보이지만, 전쟁터에서는 둘 다 인간의 존엄을 지탱하는 마지막 기둥이다.
이 사안을 단순한 반전 감상문으로 쓰면 힘이 약해진다. 핵심은 전쟁이 인간의 기본 제도를 어떻게 무너뜨리는가에 있다. 언론은 사회가 자기 고통을 세계에 말하는 통로다. 노동은 사람이 자기 삶을 스스로 지탱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가자에서는 이 두 통로가 동시에 막히고 있다. 기자가 죽으면 세계는 보지 못한다. 노동자가 일터를 잃으면 가족은 버티지 못한다. 결국 전쟁은 건물만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말할 권리와 먹고살 권리, 기록할 권리와 일할 권리를 함께 무너뜨린다.
국제사회가 세계 언론자유의 날마다 기자의 안전을 말하고, 노동절마다 노동자의 존엄을 말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가자에서는 그 말이 너무 늦게 도착한다. 기자들이 이미 죽은 뒤에 보호를 말하고, 노동자들이 이미 폐허 위에 선 뒤에 존엄을 말한다. 국제사회의 언어는 늘 엄숙하지만, 현장의 시간은 기다리지 않는다. 성명은 발표되고, 기념일은 지나가고, 다음 날 가자의 기자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나가며 노동자는 다시 잔해 더미에 오른다.
이번 기사는 그래서 ‘가자의 비극’이 아니라 ‘기념일의 모순’을 보여주는 글로 가야 한다. 세계는 언론의 자유를 기념하지만 가자의 기자는 죽음을 취재한다. 세계는 노동자의 날을 기념하지만 가자의 노동자는 폐허 속에서 가장 낮은 임금과 가장 높은 위험을 감수한다. 자유와 노동이 인류 보편의 가치라면, 가자는 지금 그 보편 가치가 가장 처참하게 시험받는 장소다.
가자에서 언론자유의 날과 노동절은 각각 다른 날짜였지만, 같은 질문을 남겼다. 누가 진실을 기록할 것인가. 누가 폐허를 치울 것인가. 그리고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왜 보호받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세계는 기념일을 가질 자격은 있어도, 그 기념일을 자랑할 자격은 없다.
참고문헌
- Al Jazeera, “World Press Freedom Day marked in Gaza as journalist death toll rises,” 2026.5.3.
- Reuters, “Pope marks World Press Freedom Day, laments violations and honours slain reporters,” 2026.5.3.
- Middle East Monitor, “On Labor Day, workers in Gaza are living under difficult conditions and earning very little due to the war,” 2026.5.1.
- Al Jazeera, “On May Day, Gaza’s workers find whatever source of income they can,” 2026.5.1.
- Palestinian Information Center, “More than 260 journalists martyred in Gaza as world press freedom marked amid escalating targeting,” 2026.5.3.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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