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달고 전쟁범죄 법정으로… 호주 ‘국가 영웅’ 벤 로버츠-스미스의 추락
한때는 국가가 자랑한 영웅이었다. 훈장을 달고, 전장의 용맹을 상징하며, 호주 사회에서 살아 있는 전설처럼 소비되던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이제는 전쟁범죄 법정에 섰다. 호주의 최고 훈장을 받은 현존 군인으로 불려온 벤 로버츠-스미스가 4월 7일 시드니 공항에서 체포돼, 아프가니스탄 파병 시절 벌어진 비무장 민간인 살해 혐의 등 전쟁범죄 살인 5건으로 기소됐다. Reuters와 AP에 따르면 호주 연방경찰은 피해자들이 당시 무장하지 않았고, 구금되었거나 이미 호주군 통제 아래 있었다고 보고 있다. 사실이라면 전투가 아니라 처형에 가깝다.
이 사건이 더 충격적인 이유는, 로버츠-스미스가 단순한 퇴역 군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빅토리아 크로스를 받은 인물로, 오랫동안 호주 군인의 용기와 희생을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영웅 서사는 이미 금이 가 있었다. 2023년 호주 연방법원은 그가 언론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에서, 언론이 제기한 여러 살해 의혹 중 다수가 **“실질적으로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의 기준은 다르지만, 이미 한 차례 사회적 평판 법정에서 무너졌던 인물이 이제는 형사 법정에서 생애 최대의 심판을 받게 된 셈이다.
한국 독자에게 이 소식이 낯설지 않게 읽히는 이유도 있다. 어느 나라든 전쟁은 국가가 영웅을 만들고, 그 영웅은 대개 국민 감정의 보호막 속에 들어간다. 그래서 전쟁범죄 의혹이 제기돼도 오랫동안 “국가를 위해 싸운 사람을 모욕한다”는 반발이 먼저 나온다. 로버츠-스미스 사건이 뜨거운 이유는, 바로 그 보호막을 호주 사법 시스템이 끝내 깨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군사 뉴스가 아니라, 민주국가가 자기 영웅을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번 기소는 또 한 개인의 타락이라기보다, 호주 특수부대 전체를 뒤흔든 아프간 전쟁의 후유증과 맞닿아 있다. 2020년 브레리턴 보고서는 호주 특수부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을 불법 살해한 정황이 다수 존재한다고 결론 내렸고, 이후 특별수사와 전쟁범죄 수사가 이어졌다. AP에 따르면 로버츠-스미스는 호주의 아프간 전쟁과 관련해 전쟁범죄로 기소된 두 번째 참전 군인이다. 이는 “일부 일탈”로 덮기 어려운 단계로 이미 넘어왔다는 뜻이다.
이 사건은 한국 독자에게도 강한 함의를 던진다. 전쟁과 안보의 언어는 늘 영웅, 희생, 애국을 앞세우지만, 그 안에서 법과 진실이 사라지는 순간 영웅은 쉽게 면죄부가 된다. 로버츠-스미스의 추락은 결국 이렇게 요약된다. 가장 화려한 훈장이 가장 어두운 혐의를 가려주진 못했다. 국가가 만든 영웅 신화는 법정 문 앞에서 더 이상 절대적인 방패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 뉴스는 호주만의 사건이 아니라, 전쟁을 기억하는 모든 사회에 던지는 경고로 읽힌다.
References
Reuters, “Australia’s most decorated soldier charged with war crimes,” Apr. 7, 2026.
AP, “Former Australian soldier charged with committing 5 war crime murders in Afghanistan,” Apr. 7, 2026.
The Guardian, “Ben Roberts-Smith arrested: former Australian soldier charged with five war crime murders in Afghanistan,” Apr. 7, 2026.
ABC News Australia, “Victoria Cross recipient Ben Roberts-Smith charged with five war crimes offences,” Apr. 7, 2026.
Socko/Gh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