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이 길어지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자, 이재명 정부가 결국 러시아산 원유·납사 카드를 만지기 시작했다. 산업통상부는 3월 18일 정유업계와 함께 러시아산 원유와 납사 수입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밝혔고, 로이터는 한국 정부가 러시아산 석유제품 결제를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로 해도 미국의 2차 제재를 피할 수 있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쯤 되면 질문은 단순해진다. 정말 한국은 미국에 손을 벌린 것이 아니라 러시아로 방향을 튼 것인가. 답은 절반만 맞다. 러시아 카드는 꺼냈지만, 그 카드조차 미국이 열어준 제재 완화 틀 안에서 움직이는 제한적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장면의 정치적 파장이 작지는 않다. 한국은 2021년까지만 해도 러시아산 원유 비중이 전체 수입의 5.6% 수준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제재에 동참하면서 사실상 수입을 끊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러시아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단순한 구매선 조정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 앞에서 외교 원칙이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 장면이다. 특히 한국 원유 수입의 약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현실에서, 중동발 쇼크가 길어질수록 러시아 카드는 점점 더 유혹적인 선택지로 떠오른다. 
이 대목에서 이재명 정부의 선택은 두 얼굴을 갖는다. 하나는 분명한 실용주의다. 전쟁과 유가 급등 앞에서 국민경제를 지키려면 공급선을 넓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실제로 정부는 에너지 절약 캠페인, 원전 가동 확대, 연료세 인하, 유류 가격 상한 조정까지 동시에 꺼내며 총력 대응에 들어갔다. 러시아산 도입 검토는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다른 얼굴은 정치적 낙인이다. 보수 진영은 이것을 두고 “미국과의 가치 연대보다 당장 기름 한 방울이 더 중요하냐”, “결국 친러·친중 실용 외교로 미끄러지는 것 아니냐”는 공세를 펼칠 수 있다. 실용의 언어로 시작한 조치가, 정작 국내 정치에선 친러 프레임으로 소비될 위험이 커진다는 뜻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태도다. 이번 조치는 미국과 등을 지고 러시아로 달려간 장면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 유가 급등을 막기 위해 동맹국의 러시아산 에너지 접근을 일부 용인한 결과에 가깝다. 로이터는 워싱턴이 이란 전쟁 여파로 인한 글로벌 유가 폭등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한국의 비달러 결제를 허용했다고 전했다. 그러니 “미국에 손 안 벌리고 러시아로 갔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이 잠시 풀어준 문으로 한국이 러시아 카드를 시험해 보고 있다가 맞다. 하지만 정치에서 디테일은 종종 사라진다. 남는 것은 “이재명 정부가 결국 러시아산 원유를 검토했다”는 한 줄이고, 그 한 줄은 외교 지형을 흔들기 충분하다. 
러시아가 이를 반길 가능성은 높다. 한국은 정제·석유화학 수요가 큰 시장이고, 납사는 자동차·전자·건설 소재 생산에 필수 투입재다. 미국의 제재 틀이 잠시 느슨해진 틈에 한국까지 다시 러시아산 수입 대열에 일부 복귀한다면, 모스크바로선 제재 균열을 선전할 좋은 카드가 된다. 다만 아직 크렘린의 강한 공식 환영 메시지가 확인된 것은 아니므로, 여기서 필요한 문장은 “러시아가 반길 유인이 크다” 정도다. 확정 사실과 해석의 선은 분명히 긋는 편이 팩트체크와 논평 사이 균형을 지키는 길이다. 
결국 이번 장면의 본질은 이념보다 생존이다. 이재명 정부는 반미를 택한 것이 아니라, 중동 쇼크 속에서 미국 승인 아래 러시아산 에너지까지 활용할 수 있는 비상 회로를 점검한 것에 가깝다. 그러나 정치란 언제나 사실보다 상징이 빨리 뛴다. 중동이 막히자 서울이 모스크바를 쳐다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보수는 친러를 말하고 진보는 실용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갈라진 해석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외교는 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참고문헌
- Reuters, “South Korea considers importing Russian oil, naphtha, Industry Ministry says,” 2026-03-19.
- Reuters, “South Korea says US cleared non-dollar payments for Russian naphtha,” 2026-03-26.
- 연합뉴스, 「정부·정유사, 중동사태 장기화에 러시아산 원유 수입 타진」, 2026-03-18.
- Reuters, “South Korea’s Lee calls for energy saving campaign including shorter showers, car curbs,” 2026-03-24.
- Reuters, “South Korea to carry out bond buyback, expand fuel tax breaks to cushion blow from Iran conflict,” 2026-03-26.
- Reuters, “South Korea to impose fuel price cap to shield economy from energy shock,” 2026-03-09.
Socko/Gh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