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을 ‘재정 빨대’라 부른 정치, 천금도 아깝지 않다는 대통령… 이재명·추미애, 갈라서나
정치의 민낯은 때로 한마디에서 드러난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국정감사에서 소방을 두고 ‘골치 아픈 재정 빨대’라고 표현한 순간, 논란은 지방재정의 부담을 설명하는 문제를 넘어섰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현장으로 뛰어드는 소방관들이 지방정부의 재정을 축내는 존재처럼 비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추 지사 측은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음에도 지방자치단체가 상당한 재정을 부담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려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소방 재정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부담 구조는 따져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그러나 제도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빨대’에 빗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정치인이 설명하려던 정책보다 국민의 귀에 먼저 꽂힌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말의 선택에 실패한 것이다. 소방관들의 반발은 정치적 공방보다 훨씬 구체적이었다. 현장 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무 여건을 호소하는 소방관들에게 ‘재정 빨대’라는 표현은 자신들의 헌신이 예산 낭비 취급을 받았다는 상처로 다가왔다.
소방노조들은 공식 사과를 요구했고, 일부 소방관은 국정감사에서 나온 발언이 현장의 현실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인력과 장비가 부족하다는 호소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방재정의 부담만 부각하고 소방관의 노고를 먼저 헤아리지 못했다면, 도민의 안전을 책임진 도지사로서 설명 방식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소방 재정이 문제라면 중앙정부에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고, 인력과 장비 확충에 필요한 예산을 제시하면 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드는 비용을 왜곡된 언어로 설명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정치적 논란이 수습되기도 전에 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10월 16일 경기 부천의 한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진화에 나선 소방관들이 다쳤고,…
중상을 입은 대원 가운데 한 명이 끝내 순직했다. 고(故) 김진석 소방위의 희생은 ‘재정 빨대’라는 표현을 둘러싼 논쟁에 참혹한 현실을 들이밀었다. 위험을 감수하는 소방관들의 존재가 왜 필요한지, 그들의 안전을 위한 예산이 왜 비용 이상의 의미를 갖는지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순간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같은 날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부상 소방관들의 쾌유를 기원하며 “그분들에게 천금을 준들 아깝겠느냐”고 말했다. 소방관의 희생에 걸맞은 예우와 보상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취지였다. 발언 자체는 소방관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강조한 것이지만, 추 지사의 표현이 논란이 된 직후라는 점에서 정치권에서는 두 메시지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쯤 되면 질문이 달라진다. 이재명 대통령과 추미애 지사는 같은 정당에 속해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정치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대통령의 ‘천금’ 발언을 추 지사를 겨냥한 공개적인 직격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소방관의 헌신을 강조한 발언을 정치적 계산으로만 해석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시점과,…
추 지사의 발언이 일으킨 파장을 함께 놓고 보면,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메시지는 대비된다. 한쪽은 소방관에게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했고, 다른 한쪽은 소방 재정이 지방정부에 주는 부담을 설명하려다 거센 반발을 불렀다. 정치에서 의도와 결과는 다를 수 있다. 추 지사가 재정 구조를 비판하려 했더라도 국민에게 남은 것은 소방관을 ‘빨대’로 표현한 말이고,…
대통령이 특정인을 겨냥하지 않았더라도 국민에게 남은 것은 그 말과 정반대 방향의 메시지다. 더욱 주목할 것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응이다. 민주당은 추 지사의 발언에 대해 소방공무원과 가족에게 사과했고, 10월 17일 김민석 대표도 다시 사과의 뜻을 밝혔다. 추 지사 역시 이날 순직 소방관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구조적 재정 문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실수라며 사과했다.
소방관을 폄훼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의도가 없었다는 말만으로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 차원의 사과가 당사자의 사과보다 먼저 나온 점도 정치적으로는 눈길을 끈다. 당 지도부가 논란의 확산을 막고 소방관과 유족에게 책임 있게 대응하려는 조치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추 지사의 발언을 당 전체가 방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특히 당내에서 이미 검찰개혁과 인사 문제 등을 둘러싸고 추 지사와 지도부 사이의 이견이 불거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태는 단순한 말실수 이상의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이제 추미애와 거리를 두고 홀로서기에 나서는 것인가. 이 질문에는 정치적 상상력과 현실적 근거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당내 강경파나 자신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인사들과 거리를 두면서 독자적인 국정 운영의 공간을 넓히려 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번 소방 재정 논란만으로 두 사람이 완전히 갈라섰다거나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추 지사를 고립시키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대통령실과 당 지도부의 실제 인사·정책 결정, 추 지사와의 후속 소통,…
당내 주요 현안에서의 입장 차이를 더 살펴봐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열린우리당 창당과 이후 탄핵 정국을 단순한 ‘홀로서기’의 성공과 실패로 압축해 현재에 대입하는 것 역시 역사적 맥락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통령이 당내 특정 인물이나 계파의 정치적 자산에 기대기보다 자신의 정책과 성과로 권력을 운용하려 한다면,…
그 과정에서 기존 동맹과의 관계가 재조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더 근본적인 문제는 권력의 무게다. 대통령의 한마디와 인사권, 세무행정의 권한은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국세청장이나 대통령 비서실장 같은 핵심 자리에 누가 임명되는지에 따라 정치권과 기업, 관료사회가 느끼는 긴장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다.
권력의 존재감만으로 여권 인사들이 긴장한다는 해석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김어준·유시민·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해 현 여권과 과거 정부를 둘러싼 인사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정치적 친소관계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 형사 사건과 각종 금전 의혹이 제기됐던 사안들이 법과 원칙에 따라 다시 들여다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정치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 인사들이 실제로 수사를 우려하거나 기존 사건의 금전 문제에 불법이 있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별도로 확인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를 두려워하느냐가 아니라, 권력이 바뀌어도 수사와 세무행정이 선택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주느냐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한 홀로서기를 원한다면,…
측근과 우호 세력에는 관대하고 반대편에는 엄격하다는 의심부터 불식해야 한다. 과거의 의혹이 있다면 증거와 법률에 따라 검증하고,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면 정치적 낙인도 거둬야 한다. 권력의 진짜 무게는 누군가를 벌벌 떨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권력의 보호막이나 보복의 표적이 될 수 없게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특정 인사가 임명됐다는 이유만으로 세무조사를 받지 않아도 모두가 두려워한다거나, 대통령의 존재감만으로 모든 사람이 벌벌 떤다는 주장은 확인된 사실과 정치적 평가를 구분해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강한 대통령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법과 제도가 예측 가능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추미애 지사의 이번 논란 역시 권력투쟁의 재료로만 소비해서는 안 된다. 소방 재정의 부담 구조를 바로잡고, 현장 인력과 장비를 확충하며, 위험한 업무를 수행하는 소방관의 안전과 처우를 개선하는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대통령과 도지사의 정치적 관계가 어떻게 변하든, 순직한 소방관의 희생이 당내 세력 다툼에 묻혀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이재명 대통령의 홀로서기는 추미애 등 여권 강경파와의 결별 선언이 아니라, 무엇을 성과로 남기느냐로 판가름 나야 할 것이다. 추미애는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 사과했지만, 이제 말이 아니라 소방 재정과 현장 여건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보여줘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천금도 아깝지 않다’는 말이 진정성을 얻으려면,…
소방관의 안전과 보상을 실제 예산과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이 도지사의 실언을 덮는 정치적 장면으로 끝난다면 남는 것은 잠깐의 대비뿐이다. 반대로 국가와 지방정부 사이에 떠넘겨진 재정 책임을 정리하고, 현장 소방관이 인력 부족과 장비 문제를 호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실질적인 개선을 이뤄낸다면 그때 비로소 정치적 리더십을 평가할 수 있다.
소방관은 어느 계파의 편도 어느 정치인의 방패도 아니다. 국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희생 앞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제도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대통령의 ‘천금’도, 도지사의 사과도 공허한 말로 남을 뿐이다.
참고보도
- 연합뉴스, 與 “소방관 헌신 존중”… 추미애 ‘재정 빨대’ 발언 공식 사과
- 연합뉴스, 추미애, ‘재정 빨대’ 발언 사과… “소방관 폄훼 의도 전혀 없어”
- 연합뉴스, 추미애 ‘소방 재정 빨대’ 발언에 양대 노총 소방노조 반발
- MBC, 이 대통령, 부천 소방관 부상에 “천금을 준들 아깝겠나”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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