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과 대통령실 사이에 묘한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시작은 노태악 대법관 후임 인선이었다. 노태악 대법관은 지난 3월 3일 6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그런데 후임 대법관은 아직 임명되지 않았다. 이미 지난 1월 21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김민기·박순영·손봉기·윤성식 등 4명을 후보로 추천했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 가운데 한 명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지 않았다. 통상 추천위가 후보를 추천하면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제청이 이뤄지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지연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문제가 단순한 인사 지연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보도에서는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의 의견 차이와 소통 문제, 그리고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사법개혁 입법이 배경으로 거론됐다. 특히 대법원이 제청을 위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청와대에서 답을 하지 않았다는 법조계 분위기까지 전해졌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바뀐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통령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대통령실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선택을 기다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숙이는가’가 아니다. 헌법상 대통령은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 대법관을 임명한다. 대법관 인선은 대통령 혼자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며, 대법원장 역시 정치권의 뜻대로 대법관 후보를 골라야 하는 자리가 아니다. 결국 이 제도의 핵심은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서로의 권한을 존중하면서도 어느 한쪽의 정치적 의중이 사법부 구성에 과도하게 관철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후임 제청 자체가 수개월째 멈춰 있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인사권의 독립이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힘겨루기가 제도 안으로 들어온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더욱 이상해졌다. 지난 5월 대법원은 오는 9월 7일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 후임 인선 절차에도 착수했다. 7월 21일 현재 이흥구 후임 후보는 8월 4일 후보추천위에서 3~4명으로 좁혀질 예정이다. 그런데 노태악 후임은 여전히 공석이다. 즉 조희대 대법원장은 새로운 대법관 인선 절차는 진행하면서도 이미 추천까지 끝난 노태악 후임은 제청하지 않는 상황에 놓여 있다. 대법원이 9월까지 노태악 후임과 이흥구 후임을 모두 채우지 못한다면 대법관 2명이 동시에 공석인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사법부 독립’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법부 독립은 대통령이 법원에 간섭하지 못한다는 뜻만이 아니다. 사법부 역시 정치적 권력의 반대편에 선 또 하나의 정치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법원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도 사법부 독립의 훼손이지만, 사법부가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과 관련된 사건에서 스스로 정치적 행위자로 오해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 역시 사법부의 신뢰를 훼손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조희대가 이재명을 막고 있는가’라는 단순한 프레임도 아니고, 반대로 ‘이재명 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려는가’라는 단순한 프레임도 아니다. 오히려 두 권력이 서로를 의심하고 견제하는 과정에서 국민이 사법부를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물어야 한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의 형사재판 문제까지 겹치면 사안은 훨씬 민감해진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기소된 5건의 형사재판은 대통령 취임 이후 헌법 제84조의 불소추특권 적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사실상 중단됐다. 2025년 6월 서울고법과 서울중앙지법은 각각 공직선거법 사건과 대장동 사건에서 헌법 제84조를 근거로 재판 기일을 추후 지정했고, 당시 법원은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이 이미 진행 중인 형사재판에도 적용된다는 취지로 판단한 것으로 해석됐다.
따라서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느냐”와 “대법관을 누가 임명하느냐”는 서로 다른 문제이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연결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월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이 대통령의 5개 재판을 재개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촉구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민주당은 이를 사법부에 대한 부당한 압박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대통령의 재판을 둘러싼 문제 자체가 이미 사법적 판단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공방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후임 대법관 제청을 계속 미루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사법 쿠데타’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 대법관 한 명의 제청 지연만으로 사법부가 헌정질서를 전복하려 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정치적 해석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사법부 독립이니까 아무런 설명 없이 기다리면 된다’고 말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사법부 독립은 설명책임의 면허증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사법부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국민이 사법부의 행동에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 자체다.
대법관 인선은 법률적으로는 인사 절차지만, 정치적으로는 사법부의 미래 구성을 결정한다. 이재명 정부가 처음으로 대법관을 임명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실제로 보도에서도 이번 인선을 둘러싼 청와대와 사법부의 교착 상태가 장기화했고, 9월 이흥구 대법관 퇴임까지 앞두고 두 대법관 후임을 동시에 제청하는 방안이나 이른바 ‘주고받기’식 절충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역설이 발생한다. 대통령이 대법관을 자기 사람으로 채우려 한다면 그것 역시 사법부 독립의 위협이다. 그러나 대법원장이 대통령이 누구인지에 따라 대법관 제청을 늦추거나 정치적 계산을 한다면 그것 역시 사법부 독립의 위협이다. 양쪽 모두 똑같이 위험하다.
그래서 “조희대 vs 이재명, 누가 누구 눈치를 보느냐”는 질문의 답은 어쩌면 둘 다 국민 눈치를 봐야 한다는 데 있다.
대통령은 대법관 인선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장 역시 대법관 제청권을 정치적 협상의 카드처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법원은 대통령에게 복종해서도 안 되지만, 대통령과 맞서는 정치적 권력기관으로 비쳐서도 안 된다. 대통령 역시 사법부를 견제할 수는 있지만 사법부를 길들이려 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지금 대한민국은 이미 사법부를 둘러싼 국민적 불신이 상당히 깊어진 상태다. 여기에 대통령의 형사재판 중단, 대법관 공석, 사법개혁 논란, 대법원장과 대통령실의 인선 갈등이 한꺼번에 얽히면 어떤 결론이 나오든 정치적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사법 쿠데타’라는 말도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쿠데타는 헌법적 권력질서를 무력으로 또는 헌법 밖의 방식으로 전복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현재 공개된 사실만으로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 지연을 그런 의미의 쿠데타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헌법기관이 국민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권한 행사를 장기간 미루고, 그 결과가 특정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린다면 그 자체로 민주적 정당성에 관한 의문은 제기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을 재개하라는 정치권의 요구도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 재판은 정치권이 ‘열어라, 닫아라’ 명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헌법 제84조의 적용 범위에 대한 법원의 해석과 그에 대한 헌법적 판단이 필요한 문제이지, 대통령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원을 움직일 사안이 아니다. 실제로 당시 재판 중단 결정에 대해서는 헌법소원도 잇따랐고, 대통령 불소추특권이 진행 중인 재판까지 포함하는지에 대한 법적 논쟁 자체가 존재했다.
결국 대한민국 사법부가 지금 증명해야 하는 것은 조희대가 이재명보다 강한가, 이재명이 조희대보다 강한가가 아니다. 누가 더 강한지를 보여주는 순간 사법부는 이미 정치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대법원은 대통령에게 보여주기 위해 제청해서도 안 되고, 대통령에게 맞서기 위해 제청을 미뤄서도 안 된다. 대통령 역시 자신에게 유리한 대법관을 얻기 위해 대법원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
대법관 한 자리를 둘러싼 침묵이 5개월, 6개월로 길어지는 순간 국민이 묻게 되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누가 누구의 눈치를 보는가?” 그 질문에 답할 책임은 조희대 대법원장에게도,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는다.
대통령의 재판은 법에 따라 멈춘 것인가, 다시 법에 따라 재개될 것인가. 대법관 인선은 헌법에 따라 이루어질 것인가, 정치적 거래의 결과가 될 것인가.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이 대한민국에서 ‘사법부 독립’이라는 말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아니면 권력 간 힘겨루기의 새로운 이름이 되었는지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 연합뉴스, 「노태악 후임 제청 한 달째 지연…’대법관 공백’ 우려」, 2026.02.22. — 후보추천위가 4명을 추천했으나 조희대 대법원장의 최종 제청이 지연된 경과.
- 연합뉴스, 「대법, 노태악 후임 제청 지연 속 이흥구 후임 선정 절차 착수」, 2026.05.18. — 이흥구 대법관 후임 절차와 대법관 공석 확대 가능성.
- 연합뉴스, 「내달 4일 이흥구 대법관 후임 후보 추린다…대법관 공백 메울까」, 2026.07.21. — 이흥구 후임 후보추천 절차 및 조희대 대법원장의 최종 제청 구조.
-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 새 법원행정처장에 노경필 대법관 임명」, 2026.07.10. — 노태악 퇴임 이후 법원행정처장 공석과 대법관 제청 지연의 관계.
- 연합뉴스, 「법원, 李대통령 ‘대장동 재판’도 연기·중단…”헌법 84조 적용”」, 2025.06.10. — 이재명 대통령의 기존 형사재판에 헌법 제84조를 적용해 기일을 추후 지정한 경과.
- 연합뉴스, 「’헌법 84조 적용 李대통령 재판중단 위헌’ 헌법소원 잇단 각하」, 2025.07.02. — 재판 중단을 둘러싼 헌법소원 및 헌법재판소의 판단.
-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 재판중단 위헌’ 헌법소원 4건 모두 각하」, 2025.07.09. — 헌법 제84조와 기존 형사재판의 관계에 관한 논란 및 헌재의 각하 결정.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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