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은 우파의 역사인가, 내란은 좌파의 역사인가…‘암살자들’이 깨운 대한민국 역사전쟁

대한민국의 역사 인식은 다시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왔다./ghost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이 심상치 않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한 편이 박정희와 육영수에서 전두환과 5·18로, 다시 김대중·노무현·문재인과 윤석열의 계엄, 그리고 오늘의 이재명 정부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역사전쟁의 불씨를 건드리고 있다.
국민의힘이 영화의 역사왜곡 논란을 5·18 문제와 연결하고 상영 중단과 국정감사 출석까지 요구하면서 논쟁은 이미 영화의 작품성을 넘어 역사 인식의 충돌로 확대됐다. 김태규 의원이 전두환의 12·12와 5·18을 둘러싼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지금 벌어지는 일은 영화 한 편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대한민국 현대사의 기억을 정의할 것인가, 그리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의 정치적 정당성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역사전쟁이다. 그 전선의 한가운데에 ‘계엄 대 내란’이라는 두 단어가 놓여 있다. 여기서부터 한국 정치의 오래된 이분법이 다시 등장한다.
계엄은 우파의 역사이고 내란은 좌파의 역사라는 주장, 또는 그 반대편에서 계엄은 독재의 역사이고 내란은 민주화의 역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현대사를 조금만 넓게 보면 어느 쪽도 완전한 설명은 아니다.
계엄은 국가적 위기와 무장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비상수단으로 사용된 역사도 있지만, 군사정권 아래에서 정치적 반대세력을 억압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역사도 있다. 따라서 계엄이라는 제도 자체를 선악의 진영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누가, 어떤 헌법적 조건에서, 무엇을 목적으로 사용했느냐가 핵심이다. 내란도 마찬가지다. 내란이라는 법률적 개념은 좌파나 우파 어느 한쪽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헌법질서를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는지가 법적 판단의 기준이다.
그러므로 좌파의 혁명적 폭동이든 우파의 군사적 쿠데타든 같은 법적 잣대 위에 올라가야 한다. 반대로 국가가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행사한 계엄과 진압 역시 헌법과 법률이 정한 한계를 넘었는지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계엄과 내란을 서로 반대되는 진영의 전유물로 만드는 순간, 법률용어는 역사적 무기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사실 ‘우파’라는 명칭 자체가 역사의 출발점은 아니다. 좌와 우라는 정치적 분류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인간사회에는 기존의 국가와 질서를 유지하려는 힘과 그것을 뒤엎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려는 힘의 충돌이 있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이승만과 박정희의 시대도 단순히 ‘우파의 역사’로만 설명할 수 없고, 김구와 김대중 이후의 정치 역시 ‘좌파의 역사’라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
공산주의 혁명과 무장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러시아 혁명과 내전, 중국 공산혁명, 북한의 체제 형성은 각각 역사적 조건과 성격이 다르지만 기존 국가질서를 급격하게 전환하고 새로운 권력체제를 구축했다는 구조적 특징을 공유한다.
한국 현대사 역시 무장 반란, 정치적 충돌, 국가권력에 의한 진압, 민주화운동과 권위주의적 통치가 뒤엉킨 복합적인 역사였다. 따라서 내란의 공통분모를 좌파에서 찾는 것도, 계엄의 공통분모를 우파에서 찾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공통분모는 ‘헌정질서에 대한 태도’에 있다.
기존 국가질서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려는 행위와 국가권력이 질서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헌법적 한계를 넘어서는 행위는 모두 같은 기준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이 기준을 적용한다면 좌파의 혁명적 폭동도, 우파의 군사적 쿠데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동시에 국가권력의 계엄과 진압 역시 ‘질서를 지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역사가 던지는 질문은 누가 좌파이고 누가 우파인가가 아니라 누가 질서를 파괴했으며, 누가 국가권력을 이용해 질서를 지켰고, 또 누가 질서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헌법의 경계를 넘어섰는가가 된다.
이 지점에서 윤석열의 2024년 계엄 문제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당시 국회에 군과 경찰이 투입됐고 국회는 계엄 해제를 의결했으며, 이후 탄핵과 형사재판이 이어졌다.
현재까지의 사법적 판단을 놓고 볼 때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을 단순히 ‘정당한 국가질서 수호행위’라고 규정하는 것은 사실관계와 충돌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 역사에서 계엄이라는 국가비상권 전체를 우파의 범죄적 유산으로 규정하는 것도 역사적 사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윤석열의 계엄에 대한 법적 판단과 계엄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구별되어야 한다. 바로 이 구별이 사라질 때 ‘계엄’과 ‘내란’은 법적 개념이 아니라 서로의 진영을 공격하는 정치적 낙인이 된다. ‘암살자(들)’ 논쟁이 지금 이토록 뜨거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이제 자신들의 역사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반작용이 커지고 있고, 진보진영에서는 5·18을 비롯한 민주화의 역사적 의미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경계가 강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참을 만큼 참았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역사를 뒤집으려 한다’고 한다.
영화의 한 장면과 정치인의 한마디, SNS의 짧은 영상이 역사책보다 더 강력한 정치적 무기가 되는 순간이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에서 현재의 정치적 무기로 변하고 있다.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정치권의 충돌이 상영 문제를 넘어 5·18 역사왜곡처벌법의 형평성 문제까지 끌어올린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전두환의 5·18이 다시 소환되고, 김대중과 노무현의 역사적 평가가 다시 정치적 전선이 되고,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평가가 서로의 ‘역사적 원죄’를 증명하는 자료로 사용된다면 한국 정치는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를 호출하는 수준을 넘어 과거를 재판해 현재의 상대방을 처벌하는 정치로 이동할 수 있다.
이때 좌파는 계엄의 기억으로 우파를 규정하고, 우파는 폭동과 내란의 기억으로 좌파를 규정한다. 서로가 상대방의 과거를 현재의 죄목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적 사실의 복잡성은 사라지고 진영의 기억만 남는다.
바로 이 지점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전쟁이 위험해지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출발점과 현재의 헌정질서로 돌아간다.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는 무엇인가.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한다.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국가의 헌법적 방향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단순히 ‘우파’라고 부르는 것도, ‘좌파’라고 부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기본 틀은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헌법적 원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은 더욱 근본적이다. 이 헌정질서의 기본 틀을 누가 바꾸려 하는가. 그리고 그 변화는 헌법이 허용하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폭력과 강압을 통해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것인가.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든 혁명적 공산주의든, 군사적 쿠데타든, 또는 어떤 정치세력이 국가기관을 장악해 헌법적 절차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든 이름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국민주권과 민주적 절차, 자유와 기본권이라는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인정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다른 체제나 권력으로 대체하려 하는가다.
결국 오늘의 ‘계엄 대 내란’ 논쟁도 이 질문으로 돌아와야 한다.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지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전복하려는 힘은 과연 어느 한쪽 진영에만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서로를 좌파와 우파, 민주와 독재라는 이름으로만 재단한다면 역사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진영의 역사적 승리를 선언하는 일이 아니라, 좌우 모두에게 같은 헌법적 잣대를 적용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암살자(들)’에서 시작된 지금의 역사전쟁이 대한민국에 던지는 가장 무거운 질문이다.
참고문헌
- 대한민국헌법, 국가법령정보센터.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 / 제4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
- 형법 제87조~제91조, 국가법령정보센터. 내란죄의 구성요건과 ‘국헌문란’의 법적 정의를 확인하는 핵심 자료. 특히 제91조는 헌법·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거나 국가기관을 강압으로 전복·불능화하는 행위를 국헌문란의 범위로 규정하고 있음.
- 연합뉴스, 「국힘, ‘암살자(들)’ 연일 맹비난…”상영 중단·국감 불러야”」, 2026.09.29. 영화 논란을 둘러싼 국민의힘의 역사왜곡 주장과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 확인.
- 연합뉴스,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 영화 ‘암살자(들)’ 상영 중단 요구」, 2026.09.29. 영화의 역사적 설정을 둘러싼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의 반론과 법적 책임 주장.
- YTN, 「영화 ‘암살자(들)’ 정치권 공방…”역사 왜곡”·”공작 DNA”」, 2026.09.28. 영화가 제기한 의문과 여야의 상반된 역사 인식이 정치권 충돌로 번진 과정 확인.
- 연합뉴스, 「김태규, ‘전두환 내란 아니다’ 발언 논란에 “오해 빌미 유감”」, 2026.10.02. 김태규 의원의 발언과 이후 유감 표명,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논쟁의 현재 상황을 확인하는 자료.
- 연합뉴스, 「운영위, ‘전두환 내란 아냐’ 김태규 제명 촉구 결의안 의결」, 2026.10.02. 해당 발언이 국회 정치쟁점으로 확대된 과정과 운영위의 제명촉구 결의안 의결 내용.
- 연합뉴스, 「與법률위, ‘전두환 내란 부인’ 국힘 김태규 경찰 고발」, 2026.10.06. 논란이 정치적 공방을 넘어 5·18 관련 특별법 위반 고발로까지 이어진 최신 상황.
Socko/Gh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