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이라는 가면: 고든창이 던진 ‘중공 침투’와 이재명 정권의 침묵
[논평]
고든 창이 던진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중국공산당의 침투, 한국은 안전한가?”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는 불편한 이름 하나가 놓인다. 이재명 정권이다.
고든 창(Gordon G. Chang)은 음모론자가 아니다.
그는 20여 년간 중국공산당(CCP)의 구조와 전략을 추적해온 미국 내 대표적 중국 비판론자이며, “침투는 군함이 아니라 제도와 언어로 온다”는 경고를 반복해왔다. 그의 문제 제기는 늘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자유국가 내부에서 ‘자발적 협조자’가 등장하는 순간, 침투는 완성 단계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대외 전략은 명확하다.
무력 충돌 이전에 정치 엘리트, 사법 시스템, 언론 담론, 시민단체, 학계를 먼저 장악한다. ‘친중’이라는 말은 이 단계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대신 실용, 균형, 국익, 탈이념이라는 단어들이 포장지처럼 사용된다. 문제는 그 포장지를 벗기면 늘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 중국에 불리한 질문은 사라지고, 중국에 유리한 침묵만 남는다.
이 지점에서 이재명 정권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외교 노선 차이가 아니다.
중국 인권 문제에 대한 지속적 침묵, 대만·홍콩 사안에서의 모호한 태도, 안보 사안에서 반복되는 ‘전략적 애매성’. 이 모든 조각이 우연이라면 좋겠지만, 패턴은 우연을 가장한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
고든 창의 시각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는 중국과 직접 대치하는 국가가 아니다.
중국의 언어를 빌려 스스로를 설득하는 국가다.
“미국도 문제다”, “양쪽 다 거리를 둬야 한다”, “경제가 우선이다”라는 말은 균형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선택을 미루는 사이 중국의 시간표에 편입되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이재명 정권은 중국공산당의 피해자인가, 아니면 편의적 공존자인가.
혹은 더 나아가, 체제 경쟁의 국면에서 ‘부역’이라는 단어를 회피한 채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는 아닌가.
세상소리는 단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침투는 늘 “우린 그런 의도가 없다”는 말과 함께 시작되었고,
자유는 늘 “아직 증거가 없다”는 말 속에서 조금씩 사라졌다.
Socko/Gh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