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법에 맡기고 잊자?”…이명박의 한마디가 보수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
13년 만에 입을 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인터뷰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 보수 진영이 어디까지 무너졌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 문제를 두고 “법에 맡기고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로 가야 한다”는 취지의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선 원론일 수 있지만, 지금의 보수 지지층에게는 거의 절연 선언처럼 들렸을 것이다. 피를 흘리는 진영을 뒤로하고,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먼저 “이제 그만 잊자”고 말하는 순간, 정치는 조언이 아니라 선 긋기가 된다.
더 큰 충격은 그 다음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재명의 중도 실용 노선, 실용 외교 언급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보수 정권의 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라는 식의 해석까지 내놓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보수 진영 내부의 분노가 폭발한다. 상대 진영이 자기 언어를 빌려 쓰는 순간, 그것을 전략적 위장으로 보아야 할지, 진짜 변화로 보아야 할지는 극히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한때 보수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 너무 쉽게 “다행”과 “용기”를 말해버리면, 지지층은 묻게 된다. 도대체 누구 편에 서 있는 것이냐고.
보수 지지층이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히 윤석열 개인을 감싸서가 아니다. 그들 눈에 지금 상황은 한 사람의 정치적 부침이 아니라, 보수 전체가 공격받고 해체되는 국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전직 대통령이 “판단은 법에 맡기자”고 물러서는 모습은, 중립이 아니라 회피로 읽힌다. 원칙처럼 들리지만, 현실 정치에선 대개 가장 편한 자리로 물러나는 말이기 때문이다. 더 잔인한 건, 그 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맞는 말이어서 더 차갑게 들린다는 점이다. 불붙은 집 앞에서 “소방 절차를 기다리자”고 말하는 사람은 합리적일 수는 있어도, 절박한 사람들에겐 결코 동지가 아니다.
성창경TV식 비판이 날을 세우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과거 광우병 파동 당시에도 적극적으로 맞서기보다 한 발 물러서 있었고, 지금도 진영의 가장 뜨거운 전선에서 책임을 지기보다 상황을 정리하는 어른의 말만 남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번 인터뷰는 통합의 언어가 아니라, 위기 때마다 반복되는 보수 지도층의 자기보존 본능처럼 보인다. 싸움이 벌어지면 먼저 거리를 두고, 판이 정리되면 원로의 어조로 교통정리를 하는 방식 말이다.
여기에 더해 일부 보수층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현실적 계산까지 의심한다. 자신의 치적으로 남은 4대강 사업이나 각종 정책 유산이 현 체제에서도 일정 부분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이, 상대 진영에 대한 미묘한 우호 신호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해석의 영역이다. 하지만 정치에서 해석은 종종 사실만큼 강력하다. 특히 지지층이 이미 상처와 불신 속에 있을 때, 원로의 작은 뉘앙스 하나도 배신의 증거처럼 증폭된다.
결국 이번 논란의 본질은 이명박 개인의 한마디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보수가 처한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윤석열 문제를 놓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강경론, 법과 현실을 분리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정리론, 그리고 상대 진영의 실용 언어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느냐는 노선 혼란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마 자신이 현실적 조언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의 언어는 말한 사람의 의도보다, 듣는 사람의 상처 위에서 해석된다. 지금 보수 지지층이 듣고 있는 것은 “미래로 가자”가 아니라, “당신들은 이제 알아서 하라”는 냉정한 퇴장 통보다.
그래서 이 인터뷰가 충격적인 것이다. 보수가 무너지는 건 외부의 공격 때문만이 아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진영의 기억과 감정을 끌어안아야 할 인물들이 오히려 선을 긋고 정리하려 들 때, 지지층은 패배보다 더 깊은 허탈감을 느낀다. 보수의 위기는 노선의 위기이기 전에 정체성의 위기다. 그리고 정체성의 위기 앞에서 가장 위험한 말은 적의 공격이 아니라, 자기 편 원로가 건네는 너무 차분한 체념일지 모른다.
Socko/Gh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