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엔 김부겸, 전남엔 이정현”… 동서 진영이 동시에 흔들리면 한국 정치판이 바뀌나
김부겸의 대구시장 출마 선언이 영남을 흔들었다면, 이정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의 전남·광주 통합특별시장 출마 시사는 곧바로 호남에 맞불을 놓는 장면이 됐다. 실제로 이정현은 3월 29일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고, 3월 30일엔 연합뉴스가 이를 사실상 전남광주특별시장 출마 시사로 해석했다. 매일경제도 “가능성 0% 지역 가겠다”는 표현으로 이정현의 험지행 의지를 전했다. 즉 지금 판은 단순한 지역 선거가 아니라, 민주당은 대구로, 국민의힘은 호남으로 서로 상대 진영 심장부를 찌르는 상징전으로 번지고 있다.
이 구도가 흥미로운 이유는 두 사람 모두 그냥 ‘차출된 후보’가 아니라는 점이다. 김부겸은 대구·경북 정치권에서 오랫동안 전국정치형 인물로 축적된 상징성이 있고, 이정현은 보수정당 역사에서 드물게 호남 기반 정치인으로 존재감을 보여온 인물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등판은 단순히 “험지 출마 미담”이 아니라, 각 당이 상대 진영에 보내는 정치적 선언문에 가깝다. 조선일보는 이를 두고 민주당의 영남 동진과 국민의힘의 호남 도전이 맞물린 장면으로 해석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장면이 우발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정현은 이미 3월 25일 공천 논란과 관련해 “이번 공천은 흔들린 것이 아니라 일부러 흔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존 기득권 구도를 깨는 충격을 감수하더라도 정치 지형을 흔들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대구에서의 컷오프 논란도, 호남으로의 험지행도 하나의 흐름 위에 있다. 국민의힘이 수세적으로 지역 방어만 하는 정당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호남에서도 상징적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김부겸과 이정현은 묘하게 거울처럼 마주 선다. 김부겸은 “대구가 국민의힘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며 영남 보수 독점 구조를 흔들려 한다. 반대로 이정현은 “기대거나 포기하는 정치로는 더 이상 국민 선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하며 호남에서 보수의 존재 자체를 복원하려 한다. 한쪽은 보수 텃밭 균열을, 다른 한쪽은 보수 불모지 돌파를 내세운다. 둘 다 자기 진영 지지층만 바라보는 선거가 아니라, 지역정치의 오래된 문법 자체를 공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물론 이것을 곧장 “동서 격변”이라고 단정하긴 이르다. 대구는 여전히 국민의힘의 핵심 기반이고, 호남은 여전히 민주당의 절대 우위 지역이다. 상징성이 크다고 곧바로 승패가 뒤집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거에서 진짜 변화는 종종 의석보다 먼저 프레임에서 시작된다. 예전 같으면 “대구는 원래 그렇고, 호남도 원래 그렇다”로 끝났을 선거가, 이제는 “누가 왜 그 금기를 깨려 하느냐”로 바뀌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판은 흔들리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이정현 카드가 단순한 출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지금 당은 대구 공천 과정에서도 잡음이 컸고, 험지 후보 구인난 문제까지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공관위원장 본인이 가장 어려운 지역으로 들어간다면, 최소한 “험지에는 남을 보내고 지도부는 안전지대에 숨는다”는 비판은 피할 수 있다. 반대로 민주당 역시 김부겸을 대구에 세운 이상, 이제는 영남에서 상징전만 하고 빠질 수 없게 됐다. 결국 양당 모두 자기 진영 핵심 지지층만 결집시키는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대의 성지에 균열을 내려는 전략을 공개적으로 꺼내든 셈이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의 진짜 관전 포인트는 개별 승패만이 아니다. 대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해볼 만한 선거”를 만들고, 호남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존재감 있는 득표”를 만든다면, 그것만으로도 한국 정치의 지역 고정관념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기느냐 지느냐 이전에, 유권자들이 “어차피 결과는 정해졌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이미 절반의 지각변동은 시작된 것이다. 대구의 김부겸과 전남·광주의 이정현이 동시에 던지는 메시지는 같다. 지역정치는 더 이상 자동재생되지 않는다는 것. 그 오래된 철옹성이 정말 무너질지까지는 더 봐야겠지만, 균열의 첫 금은 이미 갔다고 봐야 한다.
참고문헌
- 연합뉴스, 「국힘 ‘험지 구인난’ 현주소…이정현, 전남광주 ‘셀프공천’ 시사」, 2026-03-30.
- 연합뉴스, 「국힘 이정현 ‘공천 마무리되는대로 가장 어려운 곳서 역할할 것’」, 2026-03-29.
- 매일경제, 「이정현 ‘가능성 0% 지역 가겠다’」, 2026-03-29/30.
- 조선일보, 「與, 김부겸 앞세워 영남 동진…野 이정현은 호남 출마시사」, 2026-03-30.
- 연합뉴스, 「‘컷오프’ 갈등 최고조 치닫는 국힘…공관위 존중 속 분열 우려」, 2026-03-23.
- 연합뉴스, 「이정현 ‘지도부와 철저히 거리 유지…결과로 평가받겠다’」, 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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