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홍수·허리케인에 돈 건다”… 미국의 ‘재난 도박’이 드러낸 섬뜩한 중독의 민낯
불타는 도시를 보며 베팅하는 사회… 미국식 재난 도박은 어디까지 갔나
폭풍이 오면 누군가는 대피하고, 누군가는 배팅한다… 재난마저 시장이 된 미국
미국인은 원래 도박을 좋아한다. 스포츠 경기, 대선 결과, 금리, 코인, 심지어 팝스타의 사생활까지 돈을 거는 문화가 이미 일상이 됐다. 그런데 이제 그 욕망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산불이 얼마나 번질지, 허리케인이 미국 본토에 상륙할지, 대홍수가 언제 터질지, 올해가 사상 최고 더위의 해가 될지까지 돈을 거는 시장이 열리고 있다. Aeon에 실린 제이미 L. 피에트루스카의 글은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찌른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타인의 재난을 실시간 수익 상품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형태의 냉혹함이라는 것이다.
실제 기사에 따르면 Kalshi와 Polymarket 같은 온라인 예측시장에는 정치, 스포츠, 암호화폐와 함께 ‘허리케인’, ‘자연재해’, ‘기후변화’ 항목이 나란히 배치돼 있다. “2027년 이전 미국에 카테고리 5 허리케인이 상륙할까”, “6월 30일까지 초대형 지진이 일어날까”, “2026년이 역대 가장 더운 해가 될까” 같은 질문이 거래 대상으로 제시된다. 이미 2025년 1월 로스앤젤레스 대형 산불 당시, 이용자들은 산불의 확산과 지속 기간, 정치적 후폭풍에까지 돈을 걸었고, Aeon은 당시 Polymarket 관련 베팅 규모가 120만 달러를 넘었다고 전한다. 같은 재난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와 수백억 달러대 재산 손실 추정이 나오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누군가의 비극이 ‘오르면 수익, 틀리면 손실’의 숫자로 계산됐던 셈이다.
이 글이 불편한 이유는, 재난 도박이 그저 취향 문제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집을 잃고, 누군가 가족을 잃고, 누군가 마을 전체를 잃는 순간에도 시장은 그것을 이벤트로 포장한다. 화면 속 질문은 중립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질문의 구조 자체가 이미 잔인하다. 산불이 더 커질까, 홍수가 더 오래 갈까, 피해가 더 클까를 두고 돈이 오가는 순간, 재난은 더 이상 구조와 복구의 대상이 아니라 관전과 베팅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고통이 공공의 문제에서 사적 투기의 대상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피에트루스카가 말하는 “도덕적·사회적 비용”은 바로 여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시장이 스스로를 늘 ‘정보’와 ‘예측의 자유’라는 말로 포장한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면 예측시장은 미래 확률을 반영하는 세련된 시스템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관심을 돈으로 증폭시키고, 돈을 다시 감정으로 증폭시킨다. 사람들이 재난을 줄이는 정책보다 재난의 규모를 맞히는 데 더 큰 흥미를 느끼게 된다면, 사회는 어느새 대응보다 관람, 연대보다 구경, 시민성보다 중독 쪽으로 기울게 된다. 기후위기가 모두의 불안이 된 시대에, 누군가는 방재 예산을 고민하고 누군가는 대피 계획을 세우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이번엔 어디가 얼마나 타오를까’를 배팅창에서 계산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시장 만능주의가 도달한 가장 음산한 풍경일지 모른다.
결국 이 문제는 미국만의 기괴한 풍경으로 넘길 수 없다. 무엇이든 시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고가 극단으로 가면, 인간의 재난조차 금융상품처럼 거래된다. 불길과 침수와 폭풍을 두고 누군가는 살기 위해 도망치고,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클릭한다. 기술은 더 정교해졌지만, 윤리는 더 얇아졌다. Aeon의 이 글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미래를 예측하는 자유가 정말 타인의 불행에 가격표를 붙일 권리까지 포함하는가. 시장은 늘 새로운 상품을 원하지만, 모든 것이 상품이 되는 순간 사회는 결국 스스로를 잃는다. 재난을 두고 돈을 거는 문명은 똑똑해 보일지 몰라도,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부르긴 어렵다.
참고문헌
- Jamie L Pietruska, “What is the real cost of betting on weather catastrophes?”, Aeon, 2026-03-27.
- Jamie L Pietruska author page,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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