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KOREA

[저질 논란] 누가 누구를 ‘저질’이라 부르나…이재명 SNS와 장동혁 역공, 피해자 정치의 민낯

이재명 대통령의 SNS 한 문장이 다시 정치권의 화약고가 됐다. 그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투표 참여를 독려하면서 플라톤의 격언으로 알려진 문구를 인용했다. “정치 무관심의 대가는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는 것.” 원문 여부와 번역의 정확성을 떠나, 이 문장은 한국 정치에서 너무 익숙한 무기가 됐다. 투표를 독려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상대 진영을 겨냥한 칼날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의도는 표면적으로는 투표 참여 호소였다. 주권자가 침묵하고 투표를 포기하면 권력을 남용하는 이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취지였다. 민주공화국에서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선출된 권력이 국민의 삶을 망치지 않게 하려면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는 논리다. 여기까지는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정석적인 메시지다.

그러나 문제는 “최악의 저질”이라는 표현이다. 이 단어는 중립적 경고로 머물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이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누가 저질인가를 둘러싼 즉각적인 해석전이 시작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직접 지목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 말이 불편한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극복해야 할 구태 기득권자”라는 취지의 문장까지 더해지면, 반대 진영은 당연히 자신들을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장동혁 국민의힘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의 반격은 그래서 빠르고 거칠었다. 그는 이 대통령의 글을 “자아비판”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야말로 국민이 심판해야 할 “최악의 저질”이라고 되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문장을 그대로 들어 올려, 다시 이재명 대통령에게 꽂은 셈이다.

Shop strapless bras in a variety of sizes like 32AA, 34DD, and more. Find stick on bras, bras with removable straps \& more to go with open back dresses.

이 장면의 핵심은 플라톤이 아니다. 사실 그 문구가 플라톤의 원문 그대로인지도 중요하지만, 오늘 정치권에서 벌어진 일의 본질은 고전 해석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같은 문장을 두고 양쪽이 서로를 향해 거울처럼 들이민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투표하지 않으면 나쁜 권력에게 지배당한다고 말했고, 국민의힘은 이미 그 나쁜 권력이 이재명 정권이라고 받아쳤다. 한쪽은 경고를 말하고, 다른 한쪽은 그 경고를 고발장으로 바꿔 되돌려준다.

한국 정치의 오래된 병이 여기서 다시 드러난다. 양쪽 모두 스스로를 피해자로 놓는다. 여권은 자신들이 국민의 삶을 지키려는 쪽이고, 과거의 구태 기득권이 여전히 국민을 속인다고 말한다. 야권은 자신들이 권력의 폭주를 막는 쪽이고, 집권 세력이 사법질서와 헌정질서를 흔든다고 말한다. 서로가 서로를 가해자로 부르고, 동시에 자신은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피해자 정치가 난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피해자의 자리에 서야 공격이 정당화되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해야 지지층이 결집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유권자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투표 독려의 주인공은 원래 유권자여야 한다. 그러나 논란이 커지는 순간 유권자는 배경으로 밀려나고, 정치인들의 언어 싸움만 전면에 선다. “정치 무관심을 경계하자”는 말은 “너희가 저질 아니냐”는 공격으로 바뀌고, “투표하자”는 메시지는 “상대를 심판하자”는 진영 동원 구호가 된다. 정치가 시민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시민을 빌려 상대를 때리는 형국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 문구가 이미 보수 진영에서도 자주 쓰였다는 점이다. “정치를 외면하면 저질에게 지배당한다”는 말은 전한길 강사 등 보수 성향 연설과 영상에서도 익숙하게 반복돼 온 표현이다. 같은 문장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보수 인사가 말하면 각성의 구호가 되고,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면 오만한 낙인처럼 들린다. 말 자체보다 말하는 사람의 위치가 먼저 재판받는 시대다.

결국 이 논란은 한국 정치의 거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치 무관심의 위험을 말했지만, 그 문장은 곧바로 야권의 역공을 불렀다. 장동혁 위원장은 자아비판이라고 되받았지만, 그 반격 역시 상대를 저질로 부르는 같은 언어의 반복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저질이라 부르며 자신은 국민 편이라고 말하는 정치. 이곳에서 피해자는 너무 많고, 책임지는 사람은 너무 적다.

정치 무관심이 위험한 것은 맞다. 그러나 정치 과몰입도 위험하다. 무관심은 나쁜 권력을 방치하게 만들고, 과몰입은 모든 상대를 악마로 보이게 만든다. 지금 한국 정치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사이의 비극이다. 시민을 투표장으로 부르는 언어가 시민을 더 피곤하게 만들고, 민주주의를 말하는 문장이 다시 증오의 탄환으로 바뀐다.

이재명 대통령의 플라톤 인용과 장동혁 위원장의 역공은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누가 정말 저질인가. 상대를 저질이라고 부르는 정치인가, 아니면 그런 말을 듣고도 더 나은 판단을 해야 하는 유권자인가. 선거는 정치인이 서로를 심판하는 자리가 아니다. 유권자가 정치인의 언어와 태도까지 함께 심판하는 자리다. 이번 논란이 남긴 가장 불편한 진실은 바로 그것이다.

참고문헌

SBS, 「이 대통령 “투표 포기는 내 삶 망치는 자들에게 기회주는 것”」, 2026년 5월 31일.
한겨레, 「이 대통령 ‘정치무관심의 대가는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는 것’…플라톤 인용」, 2026년 5월 31일.
동아일보, 「장동혁 ‘이 대통령 투표 독려는 자아비판…최악의 저질 심판해야’」, 2026년 5월 31일.
YTN, 「장동혁 ‘최악의 저질은 이 대통령·민주…투표로 심판해달라’」, 2026년 5월 31일.
경기일보, 「장동혁 ‘자아비판 참 잘 썼다…최악의 저질 심판할 것’」, 2026년 5월 31일.
뉴스톱, 「[가짜명언 팩트체크] 플라톤이 말한 ‘정치를 외면한 대가’의 진실」.

Socko/Ghost

📌 에디터 추천 장비
AI·영상·데이터 백업 환경에서 함께 참고할 만한 관련 장비입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newsvow

-한국을 세계로, 세계를 한국으로- Socko is a Korean editorial writer analyzing geopolitics, economics, and power structures with clarity, depth, and a touch of refined satire. From local politics to global shifts, Socko delivers commentary that informs, questions, and challenges. Socko는 국제정치·경제·권력 구조를 깊이 있게 해석하는 한국의 에디토리얼 라이터로, 정교한 풍자와 분석을 통해 세상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Related Article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