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조 추경의 빈칸… 국민 통장 털리는 ‘피싱 공포’부터 막아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26조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밀어붙이고 있다. 명분은 선명하다. 중동 전쟁 장기화, 고유가 충격, 물류비 상승, 민생 불안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 설명대로라면 이번 추경은 고유가 부담 완화 10조1000억 원, 민생안정 2조8000억 원, 산업 피해 최소화 및 공급망 안정 2조6000억 원, 지방재정 보강 등으로 짜인 초대형 방어 예산이다. 그런데 국민이 체감하는 불안은 국제 유가 그래프보다 훨씬 더 가까운 데 있다. 휴대전화 문자 한 통, 통화 한 번, 링크 하나에 예금이 사라지는 세상이라면, 그 사회의 민생은 이미 다른 곳에서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4월 9일 아침 김어준의 방송이 다시 끄집어낸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이날 방송에는 박기태 변호사와 홍정민 변호사가 출연했고, 공개된 방송 안내문과 인터뷰 소개에서도 보이스피싱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자극적인 표현을 썼느냐가 아니다. 정치권이 수십 조 원 예산을 놓고 공방하는 사이, 시민들은 이미 “국가 경제가 어렵다”는 뉴스보다 “내 계좌가 오늘 털릴 수 있다”는 공포를 더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쯤 되면 묻게 된다. 추경이 정말 민생 예산이라면, 왜 가장 빠르게 무너지는 국민의 ‘디지털 안전망’은 중심 의제로 올라서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2월 1일부터 보이스피싱 통합 신고 대표번호 1394를 운영하고 있고, 4월 2일부터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 금융회사·통신사·수사기관의 선제 탐지와 차단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방향은 맞다. 하지만 속도가 문제다. 범죄 조직은 실시간으로 진화하는데, 행정은 늘 사건 뒤를 따라간다. 그 사이 피해자는 지원금보다 먼저 계좌 잔고를 잃는다.
더 날카로운 대목은 여기다. 국회에서는 원래 26조2000억 원 규모였던 이번 추경안에 3조5000억 원 안팎을 더 얹으려는 움직임까지 나왔다. 돈은 더 풀리는데, 국민이 체감하는 안전은 그만큼 커지지 않는다. 이 모순이야말로 지금 한국 정치의 민낯이다. 예산은 늘리기 쉽지만, 신뢰를 복구하기는 어렵다. 지원금 몇 만 원, 몇 십만 원보다 더 절박한 것은 “이 문자 눌러도 되는가”, “이 전화 받아도 되는가”, “내 부모님이 오늘 사기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일상의 공포를 줄여주는 국가다.
정치는 거대한 숫자를 좋아한다. 몇 조 원 투입, 몇 퍼센트 성장, 몇 만 명 지원. 그러나 시민은 숫자보다 감각으로 정부를 평가한다. 낯선 링크 하나가 즉시 차단되고, 수상한 통화가 빨리 경고되며, 피해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지급정지와 구제 절차가 작동하는 사회라면 사람들은 비로소 “국가가 나를 지켜준다”고 느낀다. 반대로 통장은 털리고, 신고는 복잡하고, 수사는 늦고, 피해 구제는 막막한데 추경 뉴스만 넘쳐난다면 민생이라는 단어는 공허한 정치 수사가 된다.
그래서 이번 추경의 진짜 시험대는 유가 안정이나 산업 지원만이 아니다. 수십 조 원을 푸는 국가가 과연 국민의 휴대전화 화면 하나, 문자 하나, 계좌 하나를 지켜낼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김어준 방송이 아침에 다시 건드린 피싱 문제는 단순한 범죄 뉴스가 아니라, 국가가 어디에 먼저 예산과 역량을 써야 하는지를 묻는 민생의 본질에 가깝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26조를 풀었다”는 발표보다 “이제는 정말 덜 속는다”는 체감이다. 그 체감이 없으면, 추경은 돈의 정치일 뿐 삶의 정치가 아니다.
References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6년 추가경정예산안 마련」, 2026.03.31.
- 뉴시스, 「[전문]이재명 대통령 2026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문」, 2026.04.02.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전쟁 추경’으로 산업 피해 최소화…공급망 안정 등에 2.6조 원 투입」, 2026.04.09.
- 한겨레, 「‘전쟁 추경’에 3조원 증액한 국회…박홍근 “국채 발행하자는 뜻인지 신중 검토”」, 2026.04.09.
- 금융위원회, 「당정,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 추진상황 점검」, 2025.12.30.
- K-공감/경찰청 인용, 「보이스피싱 31.6% 줄었다 통합대응단 출범 6개월」, 2026.04.02.
- 금융위원회, 「‘7대 비정상’ 중 하나인 보이스피싱 범죄 척결 가속화」, 2026.03.26.
- 금융위원회, 「정부의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강력 대응 결과」, 2026.04.09 확인.
- 유튜브/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2026.04.09 방송 목록 및 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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