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무기로만 벌어지지 않는다.
기독교 수사, 십자군 이미지, 서구의 시선, 페르시아 자존심이 겹치는 순간
중동전은 안보 충돌을 넘어 문명·종교 충돌의 얼굴을 띠기 시작한다.
중동에서 전쟁은 늘 두 번 벌어진다. 한 번은 미사일과 폭격으로, 또 한 번은 그것이 어떤 전쟁으로 읽히는가를 둘러싼 상징의 전쟁으로. 그래서 지금 더 위험한 것은 폭탄의 파괴력만이 아니다. 미국의 군사력 위에 기독교 수사와 십자가 이미지가 겹쳐지는 순간, 이 전쟁은 단순한 안보 충돌이 아니라 ‘서구의 성전’처럼 읽힐 수 있다. 최근 AP에 따르면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펜타곤 월례 기독교 예배에서 적에게 “모든 탄환이 목표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워싱턴포스트·AP 계열 보도에서는 그가 적에게 “자비를 베풀 가치가 없는 자들”에 대한 “압도적 폭력”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다는 논란이 커졌다.
첫째 층은 미국 군사력과 기독교 수사의 결합이다.
문제는 개인의 신앙이 아니라, 국가의 무력 사용이 특정 종교의 언어로 포장되는 순간이다. AP는 헤그세스가 펜타곤에서 정기적인 기독교 예배를 열어 왔고, 그의 과거 행보와 저서 American Crusade 때문에 ‘십자군’ 이미지가 더 강하게 따라붙는다고 전했다. 그가 가진 예루살렘 십자가 문신과 “Deus Vult” 같은 상징도 논쟁의 일부다. 이 조합은 미국 내부 보수층에게는 결의로 보일 수 있지만, 중동에서는 전혀 다르게 읽힌다. 군사작전 위에 십자가가 얹히는 순간, 전쟁은 더 이상 세속적 국가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둘째 층은 중동인의 잠재의식 속 ‘오리엔탈리즘’ 기억이다.
중동에서 서구는 단순한 외부 세력이 아니다. 국경을 자르고, 정권을 흔들고, 석유 질서를 통제하고, 지역을 관리 대상으로 바라보던 오래된 기억의 총합이다. 그래서 서구 지도자가 무심코 쓰는 문명론적·종교적 언어도 현지에서는 “또 우리를 미개하고 교정 대상인 세계로 본다”는 신호로 번역되기 쉽다. 미국의 군사력에 기독교 수사와 십자가가 덧입혀지는 순간, 많은 중동인은 그것을 전략적 압박보다 서구 중심적 지배의 상징으로 읽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 전쟁은 현실보다 먼저 모욕의 서사가 된다. 이는 제가 여러 보도를 종합한 해석이지만, AP와 PBS 보도는 이미 헤그세스의 종교적 언어가 전쟁 국면에서 더 큰 검증과 불편함을 낳고 있다고 전한다.
셋째 층은 이스라엘·모사드·반시오니즘이 얹히는 지역 감정 구조다.
중동 대중 다수에게 이스라엘은 단지 한 국가가 아니라 점령, 정보전, 암살, 서구 후원을 상징하는 존재로 읽힌다. 이때 미국의 군사작전이 이스라엘과 함께 움직이고, 그 위에 다시 기독교 수사와 십자가 이미지가 얹히면, 현지에서는 그것이 ‘미국-이스라엘-서구 문명 블록의 전쟁’처럼 보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반감이 곧바로 모든 유대인을 향한 적대와 같지 않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동에서는 시오니즘과 정보권력, 서구 후원 구조에 대한 반발이 미국의 이미지와 쉽게 결합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군사행동은 안보작전이 아니라 종교·문명 충돌처럼 오해되기 쉬워진다. Al Jazeera는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 갈등을 종교전처럼 프레이밍한다는 비판을 조명했다.
넷째 층은 이란인의 페르시아 자존심이다.
이란은 단순히 현 체제를 지키는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를 오래된 문명국가로 기억하는 사회다. 그래서 외부의 압박은 정책 갈등을 넘어 문명적 체면의 문제로 번역되기 쉽다. 로이터는 이란이 최근에도 “침략자를 응징하고 억지력을 세우며 전쟁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강경한 메시지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로이터는 반체제 인사들조차 외부 폭격만으로는 체제가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내부 저항 없는 공습은 정권 붕괴로 직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이란이 단순히 군사적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모욕에 굴복하지 않는 저항으로 전쟁을 재해석할 여지가 크다는 뜻이다. 미국의 군사력 위에 기독교와 십자가가 얹히는 순간, 이란 내부 강경파는 더 쉽게 말할 수 있다. “이건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우리 문명과 존엄을 꺾으려는 전쟁”이라고. 그 명분이 생기면, 이란은 오히려 더 끝까지 싸우려 들 수 있다.
그래서 핵심은 이것이다.
이 전쟁이 실제로 종교전이 아니더라도, 십자가가 전장 위에 떠오르는 순간 이미 절반은 종교전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전쟁은 사실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포탄보다 먼저 상징을 본다. 그리고 상징이 잘못 얹히는 순간, 미국은 군사적 우위를 가질 수 있어도 서사적 우위는 잃는다. 바로 그때 이란은 패배의 전쟁이 아니라 굴욕을 거부하는 저항전으로 자신을 다시 세울 수 있다. 중동에서 끝까지 버티는 힘은 미사일만이 아니라, 상징이 부여하는 명분에서 나오기도 한다.
참고문헌
- AP, At Pentagon Christian service, Hegseth prays for violence ‘against those who deserve no mercy’, 2026-03-25.
- Reuters, Iran defiant as Israel strikes Tehran and drones fired at Israel from Yemen, 2026-03-30.
- Reuters, Bombing won’t overthrow ruling clerics, Iran dissidents say, 2026-03-12.
- Reuters, Iran hardliners ramp up calls for a nuclear bomb, sources say, 2026-03-26.
- Combating Terrorism Center at West Point, Image of Cross with American Flag, Militant Imagery Project.
- The Guardian, Pope seems to rebuke Hegseth in remarks about leaders with ‘hands full of blood’, 2026-03-29.
Socko/Gh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