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 망국의 서사 ‘고종–이재명’ 비유가 성립하지 않는 이유
[논평]
일부 논객은 오늘의 동북아 압박 국면을 들어 고종과 이재명을 겹쳐 읽는다. 위태로운 국제 환경, 외세의 중첩 압력, 국내 분열—표면만 보면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이 비유는 설득력보다 위험을 키운다. 이유는 간단하다. 망국의 논리는 개인의 선택보다 ‘조건의 붕괴’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1) 망국은 ‘의지의 실패’가 아니라 ‘조건의 급변’이다
국가는 의지로 건설되지만, 붕괴는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한다. 금융 경색, 전쟁의 비화, 동맹의 이탈, 기술·에너지 쇼크—이런 사건은 지도자의 성향과 무관하게 동시에 터진다. 고종의 시대가 무너진 결정적 계기는 개인의 판단 미스가 아니라, 주권·군사·재정·외교의 조건이 한꺼번에 붕괴한 순간이었다. 오늘의 한국은 그 조건을 보유한다. 이 차이를 무시한 비유는 원인과 결과를 뒤섞는다.
2) ‘비슷해 보임’은 경고가 아니라 오판의 지름길
역사는 닮은꼴을 보여주지만, 결과를 복제하지는 않는다. 고종기의 조선은 주권의 두께가 얇았고, 외교 네트워크는 느슨했으며, 군사·산업 기반은 취약했다. 현대 한국은 제도·동맹·군사·산업이 작동 중이다. 작동 중인 시스템을 ‘이미 무너진 시스템’의 비유로 설명하면, 정책 판단은 과잉 방어 또는 자기 포기의 극단으로 치닫기 쉽다.
3) 비유의 유혹은 책임 전가를 부른다
‘망국의 군주’ 비유는 복잡한 구조를 도덕 서사로 단순화한다. 그러면 질문은 “무엇을 고칠 것인가”에서 “누가 잘못인가”로 이동한다. 이는 가장 빠른 논쟁 방식이지만, 가장 느린 해결 방식이다. 이루기는 오래 걸리며 어렵다—제도 보강, 동맹 관리, 산업 전환은 시간이 필요하다. 망하기는 순간—그 순간을 부르는 것은 비난이 아니라 조건의 방치다.
4) 진짜 위험은 ‘패닉 프레임’이다
패닉은 정책의 시간을 압축한다. 압축된 시간에서 나오는 선택은 대개 비가역적이다. 고종 비유가 위험한 이유는, 현재의 선택지를 “이미 늦었다”는 정서로 봉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건이 순식간에 변해 망할 수 있다는 명제의 역도 참이다. 여건이 순식간에 변해 회복의 창이 열리기도 한다. 창을 여는 것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준비된 조건이다.
5) 반박의 결론: 인물 비교가 아니라 조건 관리다
지금 필요한 논쟁은 인물의 유사성 여부가 아니다.
- 동맹의 신뢰를 관리 비용이 아니라 전략 자산으로 키우는가
- 외교 메시지를 내정 정치에서 분리하는가
- 금융·에너지·기술의 동시 쇼크에 대비한 완충 장치를 갖췄는가
- 위기 때 봉합이 아니라 구조 보강을 선택하는가
이 네 가지가 유지되는 한, 망국의 서사는 성립하지 않는다.
맺음말
비유는 생각을 열어주지만, 잘못 쓰이면 생각을 닫는다. 이루기는 오래 걸리며 어렵다—그래서 조급함이 유혹한다. 망하기는 순간—그래서 공포가 팔린다. 그러나 국가는 공포로 무너지지 않는다. 조건이 무너질 때 무너진다. 오늘의 과제는 인물을 재단하는 일이 아니라, 조건을 지키고 두껍게 만드는 일이다.
Socko/Gh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