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9명뿐”이라는 광기 – 김정은이 전쟁을 체제 연료로 쓰는 법
[논평]
9명은 각주였다. — 김정은의 쿠르스크 환영식, 전쟁을 체제 연료로 바꾸는 기술
북한은 쿠르스크에 파병한 공병부대의 귀국을 성대한 환영식으로 포장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비록 9명의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지만”이라는 문장을 남겼다. 이 문장은 위로가 아니다. 애도도 아니다. 전쟁을 성과로 세탁할 때 사용하는 체제의 문법이다. 사람의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숫자가 되고, 숫자는 곧 관리 대상이 된다.
이번 공개의 핵심은 ‘처음’이다. 북한은 그동안 부인하거나 흐려왔던 러시아 파병 사실을 스스로 드러냈다. 왜 지금인가. 전쟁의 국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공병의 지뢰 제거는 인도주의처럼 보이지만, 전쟁의 문맥에서는 다음 작전을 여는 군사 행위다. 안전지대는 곧 기동 공간이고, 기동 공간은 전투의 연장선이다. 북한은 “우리는 참전했다”를 인정하는 대신, “대가는 작다”는 서사를 함께 심었다. ‘9명’은 바로 그 통제 장치다.
김정은의 발언은 국내용과 대외용을 동시에 겨냥한다. 국내에겐 충성을 보상으로 바꾸는 신화를 제공한다. 해외에겐 북·러 군사협력이 단발이 아니라 구조화 단계에 들어섰다는 신호를 보낸다. 환영식은 끝이 아니라 서문이다. 공병은 명분이 좋고 확장도 쉽다. 오늘은 지뢰 제거, 내일은 공병 지원, 그다음은 무엇인가. 공개가 반복될수록 파병의 문턱은 낮아진다.
국제사회가 읽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이는 허세가 아니라 계산이다. 러시아는 인력과 기술을 보충하고, 북한은 실전 경험과 정치적·물질적 대가를 얻는다. 서로의 결핍이 서로의 명분이 된다. 유엔 제재 체계는 이 결합 앞에서 흔들린다. “비록 9명”이라는 문장은 제재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려는 정치적 수사다.
중국의 선택은 미묘하다. 공개적 거리두기는 유지하되, 판이 통제 불능으로 번지지 않는 선에서 관리하려 들 것이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혼돈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완충이다. 그러나 북·러의 결속이 노골화될수록 중국이 떠안는 외교 비용도 커진다. 관리의 한계가 다가온다는 뜻이다.
한미일의 선택지는 더 분명해진다. 첫째, 해상 환적과 군수 흐름, 금융 네트워크에 대한 차단을 촘촘히 묶는다. 둘째, 감시정찰(ISR)·미사일 방어·해양 협력을 실전화한다. 셋째, 러시아 변수까지 포함한 대북 억제 프레임을 재정렬한다. 북·러가 ‘공개 참전’의 언어를 키울수록, 한미일은 규범 전선과 군사 전선을 동시에 세울 수밖에 없다.
결국 이 환영식의 본질은 축제가 아니다. 전쟁이 체제 유지의 연료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의식이다. 김정은의 정치에서 죽음은 애도가 아니라 성과의 각주가 된다. “비록 9명”은 진실의 요약이 아니라, 진실을 축소하는 기술이다. 그리고 국제사회는 이 기술을 더 이상 선전으로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전략으로 취급할 것이다.
참고문헌 (References)
- 동아일보, 「김정은 ‘비록 9명 안타깝게 희생했지만’…러 파병부대 복귀 환영식」(2025-12-13).
- Reuters, North Korean leader Kim hails troops returning from Russia mission, state media says (2025-12-12).
- Reuters, Russia says North Korean troops help de-mine Kursk region (2025-11-14).
- UN Security Council 관련 브리핑/보도(북·러 군사협력 및 제재 위반 우려).
- CFR/SSI 등 정책 보고서: 북·러 협력과 우크라 전쟁의 영향(2025).
세상소리 ㅣ Master of Satire
Sock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