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미국에 무엇을 약속했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이름을 올렸고, 한국은 왜 합의 이후에도 미국과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액화천연가스(LNG) 구매량이나 투자 금액을 비교하는 문제가 아니다. 동맹국이 합의한 약속을 어떻게 이행하고, 그 과정에서 자국의 국익을 어떻게 확보하는가에 관한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생산량의 30%를 대만이 20년간 구매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데 비해, 한국은 알래스카 사업의 상업성과 국내법 절차를 앞세워 최종 추진 여부에 선을 긋고 있다. 여기서부터 한미와 미·대만 관계의 미묘한 차이가 드러난다. 대만의 선택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로이터와 AP 보도에 따르면 대만의 국영 에너지 기업 CPC는 알래스카 LNG를 연간 600만t 구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프로젝트에 최대 44억 달러를 투자하는 계획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프로젝트 생산량의 30%에 해당하는 장기 구매 합의로 소개했다. 다만 최종 계약은 아직 협상 중이다. 따라서 대만이 모든 약속을 이미 완결했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대만은 구매 의향서에 기초한 협의를 진전시키고, 미국산 에너지 도입과 투자 참여를 통해 협력의 실체를 만들어 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만의 계산은 에너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미국산 LNG를 장기적으로 확보하면 에너지 공급원을 다변화할 수 있고, 미국과의 경제적 연결도 강화할 수 있다. 중국의 압박 속에서 대만에 미국과의 관계는 경제협력인 동시에 안보의 문제다.
미국이 대만의 안보를 어떤 방식으로 보장할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대만은 적어도 에너지 구매와 투자라는 경제적 수단으로 미국과의 이해관계를 구체화하려 한다. 미국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면서 자신이 필요한 협력의 기반도 넓히는 것이다. 이것이 대만이 약속을 지키는 이유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이다. 약속을 단순한 양보가 아니라 전략적 거래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 역시 지난해 한미 무역 합의에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텍사스 발전시설과 원전 건설, 알래스카 LNG 사업 등을 투자 계획으로 공개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알래스카 LNG 사업에 대해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법 절차를 전제로 검토에 착수하는 것이라며 투자 여부와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사업성이 확인돼야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투자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수익성이 불분명한 사업에 국민의 자금과 기업의 부담을 무조건 떠넘길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한국 정부가 합의 당시 제시한 약속과 현재의 이행 조건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가.
미국 대통령은 투자 계획을 성과로 발표하는데 한국 정부는 아직 검토 단계라고 설명한다면, 양국이 같은 합의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합의를 실행할 의지의 문제로 바라보고, 한국은 사업성을 다시 따져야 하는 협상의 문제로 바라보는 셈이다. 이 차이를 조기에 정리하지 못하면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 측 발표만으로 한국이 확정된 모든 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합의문에 명시된 의무와 조건부 사업 검토를 구분하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합의 이후에도 조건을 둘러싼 공개적 이견이 반복된다면, 그것 자체가 외교적 신뢰의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13일 국무회의에서 국익을 앞세우며 굴종적 외교를 배격하겠다고 밝힌 것은 예사롭지 않다. 대통령은 한미동맹이 외교의 중요한 축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국가 간 이해가 언제나 일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원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주권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며,…
미국의 요구라고 해서 모든 것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 원칙을 실제 외교에서 어떻게 구현하느냐다. 미국의 요구가 부당하다면 어떤 조항이 왜 부당한지, 한국이 지켜야 할 이익은 무엇인지, 대안은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 반대로 이미 합의한 약속이라면 이행 가능한 부분과 재협상이 필요한 부분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국익’이라는 말이 구체적인 협상 전략을 대신할 수는 없다. 혹시 이재명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미국의 압박을 견디며 시간을 벌려는 것인가. 현재 확인된 사실만으로 정부의 의도를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미 투자와 에너지 협력에서 조건을 둘러싼 이견이 이어지고, 한미 간 정보 공유와 고위급 소통에서도 마찰이 거론되는 상황이라면,…
그러한 추측이 나오는 것 자체는 정치적으로 무시하기 어렵다. 특히 미국이 동맹의 신뢰와 정보 관리 기준을 강조하는 가운데 한국이 국익과 자주성을 앞세운다면, 양국의 갈등은 단순한 투자 협상에서 경제안보와 안보경제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을 믿고 민감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가, 한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가,…
한국 정부의 약속을 미국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가가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외교적 자존심을 지키려다가 경제적·안보적 비용을 키우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결국 대만과 한국의 차이는 미국의 요구를 얼마나 많이 받아들이느냐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대만의 LNG 구매 계획도 아직 최종 계약이라는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한국 역시 사업성이 없는 투자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대만이 미국과의 거래에서 에너지와 전략적 이해를 결합하는 동안, 한국은 합의의 의미와 이행 조건을 둘러싼 해석 차이를 해소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이 진정으로 국익을 지키려면 미국에 무조건 굴복해서도 안 되지만, 이미 한 약속을 정치적 구호로 덮어서도 안 된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국익에 반한다면 처음부터 더 치열하게 협상했어야 하고,…
국익을 지키는 약속이라면 이제 실행으로 신뢰를 증명해야 한다.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외교 전략이 될 수는 없다. 대통령은 바뀌어도 동맹의 기억은 남는다. 미국과의 거래에서 한국이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산은 단기적인 양보의 면제가 아니라, 합의한 것은 지키고 부당한 것은 협상으로 바꾸는 국가라는 신뢰다.
Socko/Ghost

















